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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Nov 17. 2021

첼리스트 예지현의 기록

차분한 떨림의 협주곡, Op.27


#I’m_나라는 사람



87년생 예지현

저는 어릴 때부터 수줍음이 많아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어요. 친한 친구들은 제가 수다쟁이인 걸 알고 있지만, 대다수는 저를 얌전했던 아이로 기억할지도 몰라요. 고등학교 때 활발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조금 달라졌어요. 단단하게 우정을 다지며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법, 어울리는 법을 배웠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외향적인 사람이라는 됐다는 건 아니에요. 지금도 친하지 않은 사람과 대화가 끊어지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할 때도 있어요. 다만 나이를 먹으면서 낯가림을 어느 정도 감출 수 있게 됐어요. 그렇다고 제가 소극적인 면으로 가득한 사람은 아니에요. 제 안에는 명랑한 기질도 많아 절제해야 할 때도 있거든요. 다양한 음악을 소화해야 하는 연주자로서 여러 기질을 가진 건 좋은 점이에요. 대신 첼로 앞에서는 자아를 드러내기보다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심취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좌) 1995년 스즈키 학원 향상 음악회에서 (좌) 1997년 인천청소년 교향악단 실내악 연주


첼리스트 예지현

7살 때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녔어요. 어머니께선 제가 왕복 40분이나 되는 거리를 싫단 소리도 없이 다니는 걸 보고 ‘음악을 시켜야겠다’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피아노를 배운 지 2년쯤 됐을 때, 첼로도 배우게 됐어요. 첼로를 선택한 건 묵직하고 차분한 소리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취향 때문이었어요. 피아노의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점점 어렵게 느껴졌어요. 자연스럽게 첼로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됐고, 결국 피아노는 그만뒀죠. 하지만 중학생 때까진 첼로 연주가 제 길이라는 확신이 없었어요. 친구들은 “너는 길이 정해져 있어서 좋겠다”라고 했지만, 사실 확고한 꿈을 향해 달리는 중은 아니었으니 그럴 때마다 애매한 답변으로 둘러댔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서야 진로를 제대로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첼로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없더라고요. 인천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끼가 넘치는 다섯 명의 친구와 빠르게 가까워져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면서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어느 날은 연습하다가 반주에 맞춰 아카펠라를 했는데, 재미로 한 일이 커져서 다른 반과 교무실을 돌며 공연하기도 했어요. 음악과 추억으로 가득한 시절이에요.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은 첼로가 제 길이라고 생각해요. 확신이라는 게 다른 누군가가 줄 수 있는 게 아니라 제 마음에서 자라는 거니까 제가 잘 키우고 가꾸려고요.



#Music_개인적 취향


 여행 다니면서 직접 찍은 사진


87년생 예지현

지금은 육아 하느라 새로운 취미를 가질 여력이 별로 없어요. 꾸준히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면 사진 찍는 거예요. 전문가처럼 잘 찍진 못하기에 ‘최대한 많이 찍어 한 장이라도 건지자’라는 주의죠.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푸른 들판이나 탁 트인 바다처럼 자연을 보면서 여유를 갖는 시간을 좋아해요. 찍어둔 사진을 꺼내 보면 다시 그날의 기분에 잠길 수 있어 힐링이 되는 느낌이 들어요. 일상의 순간들도 사진으로 남겨 두려고 해요. 늘 주변 사람들에게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말해요. 매해 추억을 모아서 앨범을 만드는 게 저의 일 년 루틴이었는데, 요즘은 25개월 된 아이에게 집중하고 있어서 그렇게까지는 못 해요. 그래도 이미 휴대전화 사진 앨범에는 아이 사진이 수두룩해요. 아이가 저를 닮았는지 사진 찍어달라는 말을 자주 해요. 음악은 들떠있는 기분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장르를 선호해요. 주로 발라드를 듣는데, 특히 폴킴이나 잔나비의 음악을 많이 들어요. 잔나비의 노래는 지금처럼 쌀쌀한 날씨와도 잘 어울리죠. ‘가을밤에 든 생각’, ‘She’,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이 세 곡을 가장 좋아해요.


2021년 봄, 강원도 여행에서 다함께


첼리스트 예지현

제 음악 취향은 서정적인 분위기를 잘 표현한 곡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클래식 중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3악장’을 좋아해요. 서정성 짙은 선율을 듣다 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날 것 같거든요. 멜로디 자체도 좋지만, 어느 순간 아득해지는 느낌이 드는데 이 기분을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어요. 첼로 연주곡 중에서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즐겨들어요. 사실 작은 첼로라고 불리는 ‘아르페지오네’를 위해 쓴 곡이지만, 지금은 이 악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첼로가 이를 대신해요. 슈베르트의 짙은 감성과 더불어 사랑과 이별의 서사가 담겨있는 이 곡은 모든 악장이 훌륭해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존경하는 아티스트는 정말 많지만, 그때그때 달라요. 지난 6월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푸르른 낭만’ 무대에 함께한 ‘요나단 루제만(Jonathan Roozeman)’이라는 첼리스트가 있어요. 2015년에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입상한 분이에요. 공연에서 그가 연주하는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직접 듣고 굉장히 놀랐어요. 어려운 곡을 쉽게 해내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까지 훌륭하게 소화하더라고요. 모든 면에서 본보기로 삼을 만한 완벽한 첼로 연주자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연주를 보면 저도 더 좋은 연주자가 돼야겠다는 욕망(?)을 품게 되는데, 아주 기분 좋은 자극이죠.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2015 파이널 라운드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요나단 루제만




#Outlook_세계관

첼리스트 예지현

흔히 첼로의 음역이 사람의 목소리와 흡사하다고 해요. 첼로 연주를 듣기에 편안한 음색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죠. 첼로는 오케스트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악기에요. 물론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악기가 없지만, 첼로는 멜로디가 중요한 파트에서는 멜로디를, 저음으로 받쳐줘야 할 부분에서는 저음을 소화하죠. 첼리스트끼리 “우리는 왜 이렇게 쉬는 구간이 없냐”라는 이야기를 나눌 만큼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는 악기에요. 현악 4중주 같은 앙상블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건 그만큼 책임감도 따르는 일이에요. 그래서 어려울 때도 많지만, 첼리스트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 음악이 뭔지 모를 때부터 쭉 음악만 했으니 외길인생을 걸어온 셈이에요. 다만 ‘이것 말고 아무것도 못 한다’라는 불안감은 있죠. 악기를 일찍 다룬 사람들은 아마 다들 비슷한 고충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제가 연주하는 음악이 곧 저인 것 같아요. 첼로는 언제나 저와 함께였고, 연주를 중간에 그만둔 적도 없어서 제 몸, 제 시간의 일부나 다름없거든요. 여느 학생들처럼 치열하게 공부한 기억보다는 늘 첼로를 지고 다닌 기억이 더 선명해요. 그 무게는 때때로 철근보다 무겁고, 때때로 솜털보다 가벼워요.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8번의 현악단을 위한 신포니아’(20:55~)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코심 단원 예지현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교회 수련회에 갔는데 강해근 교수님께 전화로 “네가 지금 그런 데서 놀 때냐!”라고 불호령을 들었어요. 뭘 잘못했나 싶던 차에 문자가 와서 보니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오디션을 보라는 내용이었죠. 당시 저는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주어진 시간이 보름 정도밖에 없는 상황에서 오디션을 준비했는데 운 좋게 합격했어요. 지금도 교수님을 뵐 때면 이야기해요. 그날의 문자 한 통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다고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 지 13년이 됐지만, 무대가 소중하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어요.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으로 9개월을 쉬게 됐는데, 처음엔 휴식다운 휴식이 처음이라 마냥 좋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무대와 떨어져 있다는 것, 음악을 하지 못한다는 것만으로도 슬퍼지더라고요. 동료의 무대를 바라보며 무대를 그리워하다가 복귀하고 나니 무대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애틋해지더라고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도 정말 행복하지만, 음악을 하는 모습이야말로 ‘온전한 나’라는 걸 느꼈어요. 긴 휴식 후에 느낀 무대의 희열 덕분에 연주자로 살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감사함을 깨닫게 된 것 같아요.



#Stage_무대 위 순간들


첼리스트 예지현

저는 솔로로 공연한 경험은 많지 않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의 가장 큰 연례행사였던 연주회에서 첼로 대표로 무대에 선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자신감이 충만해서 긴장하기보다는 제가 연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 또래 전공생들의 실력과 높은 경쟁률을 체감하게 됐어요. 충격이 컸죠. 지금 생각해보면 솔리스트로서 선 그 무대가 참 감사한 경험이었구나 싶어요. 첼로를 시작한 이후로는 항상 오케스트라에 속해 있었어요. 처음 첼로 학원에 다닐 때는 앙상블 수업을 받으면서 오케스트라를 접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부터는 인천청소년교향악단에서 활동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교내 오케스트라의 첼로 연주자였고, 대학에 다니면서도 서울청소년교향악단에서 연주했죠. 지금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첼로 연주자이고요. 저는 혼자 서는 무대보다 누군가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게 좀 더 매력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했던 실내악 공연도 좋았어요. 실내악은 솔리스트로서의 역량과 더불어 앙상블도 신경 써야 해요. 음악의 다양한 면모를 경험할 수 있고, 저를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도 되는 것 같아요. 실내악 무대에 설 기회가 더 자주 마련됐으면 해요.



코심 단원 예지현

지난 10월,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공연에서 제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있었어요. 무대에 올랐는데 갑자기 속이 답답하고 울렁거리더라고요. 시계를 봤더니 튜닝 2분 전이었어요. 동료 한 분에게만 제 몸 상태를 살짝 귀띔해 둔 채로 공연이 시작됐어요. 그러다 1부 중간에 도저히 참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무대를 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오페라 공연이라 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피트 안에서 연주했다는 거였죠. 이번 일을 통해 컨디션 조절도 연주의 일부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함께하는 단원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 일인지도 새삼 느꼈고요. 지금까지 많은 무대를 해왔지만, 가장 아찔한 순간이었어요. 그동안 오케스트라에 몸담으면서 ‘믿음직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는데, 이번 일로 그 다짐을 더 깊이 새기게 됐어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해요. 앞으로도 오케스트라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서 무대에 계속 설 수 있기를 바라요.



글쓴이 이리 (공공문화 칼럼니스트)

단거리보다는 장거리에 능한데 끈기가 부족하다. 일 처리를 해놔야 속 편한데 게으른 편이다. 결단이 빠르고 성미가 급한데 만든 회사 이름이 '슬로우모어'다. 완벽한 문과 체질인데 뼛속부터 이과 체질인 남자와 살고 있다. 잘하는 건 없는데 시키면 다 한다. 부캐는 순수한 예술세계를 지향하는데 본캐는 철저히 상업 예술로 벌어먹고 산다. 한 마디로 일관성 없는 것이 일관적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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