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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chungr Feb 06. 2022

오! 나는 강사 체질인가?

첫 영어 요가 수업을 하다

드디어 첫 수업을 마쳤다. 생각보다 떨리지 않았고 시간은 굉장히 빨리 흘렀고 재밌었다.


요가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서 배운 것을 묵히고 싶지 않아서 요가 나눔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어느 날 친구와 저녁 먹으며 이야기 나누다 뜻이 맞아 2주에 한 번씩 친구에게 요가를 가르쳐주게 되었다.  


친구에게 하는 것이고 무료이기 때문에 부담이 적고 많이 떨리지 않았던 것이 분명히 있었을 테지만, 실제로 처음 하는 수업이고, 1시간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영어로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친구가 호주인이기 때문에 영어로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수업 준비하면서 왜 한다고 해가지고 사서 고생일까라는 생각을 안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한국어로도 버벅거리는데 영어로는 더욱 어려웠고 특히 평소에 쓰지 않는 해부학과 근육 용어와 동작에 대한 설명을 영어로 준비하는데 애먹었다. 그동안 배운 것을 영어로 옮기기도 하였지만, 한국어와 영어는 같은 말이라도 표현 방식이 다른 것이 많기 때문에 유튜브와 구글링을 통해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준비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드디어 오늘, 첫 수업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매트 챙기고, 인센스도 몇 개 챙기고, 보이차도 챙겨서 집을 나섰다. 입춘 마지막 추위를 뚫고 40분이 걸려 친구 집에 도착하여 근황 토크 살짝 하고 거실에 매트를 깔고 앉았다.


어색했다.

친구니깐 어색한 나를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 들며 약간의 변명이랄까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곧 '이건 수업이야 티처로써의 시간이지 집중하자'라고 되뇌며 마음을 다스렸다.


아쉬탕가 기초 수업을 준비하였는데, 수업을 준비하며 수업의 의도와 전체적 흐름, 그에 필요한 설명만 준비하였고 나머지 것들은 상황에 맡기자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오프닝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어색한 침묵이 살짝 흘렀고 갑자기 때아닌 자기소개를 했다.


'오늘부터 요가를 가르칠 티처야. 그렇지만 나는 너를 가르치지 않아. 너의 요가 여정을 가이드하고 돕는 사람이야.


'걱정하지 마. 잘하고 못하고 아무것도 없어. 그냥 너의 상태를 받아들이며 수련하면 돼. 무겁지 않고 가볍게'라고 말했다.


경험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나의 선생님의 가르침과 마음가짐을 나도 갖게 되었다. 티처의 욕심으로 수련자 동작과 상태를 무리해서 바꾸고 싶지 않았다.  요가를 하다 보면 잘하고 싶고  되는 동작에 집착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받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임 속에서 성장이 이루어졌기에 이러한 말을 했다.


아쉬탕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호흡 수련, 수리아 나마스카라 A, B 수련이 1시간 조금 넘게 이어졌다.

설명이 버벅거리기도 하고, 단어가 생각이 안나기도 하고, 구령도 조금 틀리기도 하였지만 전반적으로 스무스하게 진행되었다.


문제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핸즈온 하면 불편할까? 나는 수업 중에 티쳐에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 왜 갑자기 나한테 말을 하지? 집중을 안 하고 있나? 등 나의 경험과 다른 경험들을 겪으면서 다양한 생각들이 들었다.


수업시간에는 별생각 없이 넘어갔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핸즈온을 하면 내가 불편할 것 같았고, 내가 수련자로 임하는 방식대로 친구도 임하길 바라는 나의 마음이고 에고였다.


핸즈온을 해도 되고, 수업시간에 말을 좀 하면 어떠한가. 결국 내 마음이 이러해야 해. 이러면 안 될 것 같아라고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고 있었다. 사실 수업 후 어땠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물어봤는데, 그중 핸즈온을 해주면 좋겠다는 피드백도 있었다.


티처로써 수업 시간과 공간을 유지하고 이끄는 역할은 있지만 나 또한 formless, borderless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참 신기한 것은, 수업에 그동안 나를 가르친 티처들이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구성, 티칭, 구령, 카운팅 구석구석 그들이 있다. 나의 수업이지만 결국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수업이며, 나의 몸과 목소리지만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 또한 있다. 완전한 나는 없으며, 내가 가져야 하는 성격, 생각, 집착해야 하는 어떤 것도 없다.


수업이 끝나고 보이차를 함께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선부터 사회적 이슈들, 인생, 명상, 에고, 마음에 대한 이야기 등. 그중에서 생각나는 대화가 있다.


친구: 나는 한번 명상하면 2시간 3시간씩 깊게 하는데 그 깊음 속에서 알아차려지는 생각과 감정들이 좋아서 깊게 하는 게 좋아. 나도 너처럼 매일 하고 싶은데 깊게 명상하는 게 좋아서 저번에 딱 한번 하고 안 했어.

나:  깊게 할 때 느껴지는 그 감정에 중독된 것 아닐까? 명상하면 그 깊은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놓아봐. 깊게 안 될 수도 있고, 깊게 될 수 도 있고. 무엇을 느끼기 위해 명상을 하는 게 아닌 그냥 가볍게 루틴화 시키면 매일 할 수 있는 것 같아.


이렇게 요가 수련으로 시작해서 마음에 대한 대화로 첫 수업이 마무리되었다.

이 프로젝트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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