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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Mar 31. 2024

나는 나는 자라서 웡카랑 결혼할래요.

정신없이 변하는 요즘 세상 속에 내가 가장 발 빠르게 못 따라가고 있는 트렌드가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연예 소식이다. 더구나 그것이 글로벌 스타의 이야기라면, 더더욱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다. 어차피 그들도 나를 모를 건데 내가 굳이 알아야 할 필요를 크게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겨울방학이 끝나가던 무렵 우리 집에 '티모시 샬라메'가 들어왔다. 무슨 소리냐고? 이제부터 자칫 일방적으로 글로벌 사돈을 보게 생긴 나와 내 딸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러니까 그 시작은 바로 영화 '웡카'였다. 그런 영화가 개봉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가 아는 분이 아이를 데리고 보고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침 할 일을 만들어 채워가야 하던 방학 끝자락에 올타구나 이거다 하며 아이를 데리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웡카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이란 정도의 정보만 아는 상태에서 보러 들어갔는데, 사실은 그 영화도 보질 않았기 때문에 내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머리를 굴려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처음 만나는 스토리이니까.


원래 사전 정보가 별로 없고, 그렇기 때문에 큰 기대가 없는 상태에서 만나보니 의외의 수확이 큰 영화들이 있다.

웡카는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영화인데 노래가 다 좋았고, 스토리가 무척 재미있는 데다가 '미스터 빈'이 부패한 신부님으로 찰떡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한때 댄디의 대명사이던 '휴 그란트'가 주황색 피부에 초록색 머리를 한 채 대략 3등신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난쟁이 꼬마로 등장해 나의 동공을 확장시켰으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던 '티모시 샬라메'라는 배우가 '쏘 서윗'해서 깜짝 놀랐다는 사실까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였다.




오페라나 뮤지컬은 같은 작품을 보고 또 보고 닳고 닳도록 보더라도 영화는 웬만해선 한번 보면 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 딸은 누구의 습성을 닮은 건지 모르겠지만 한번 본 영화가 마음에 들면 화면이 닳아 펑크가 날 지경까지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본다. 그러니, 영화관에 다녀온 이후 우리 집에서 웡카 영화가 돌아가고 있는 날이 잦아진 건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자연스레 나도 함께 넋을 놓고 보곤 하는데, 이 서윗한 웡카 청년을 보며 살짝 마음이 살랑대려 하는 찰나에 더 기가매킨건(??) 지가 뭘 안다고 고작 9세 꼬마가 티모시 샬라메에게 홀딱 빠져버렸다.


"엄마 저 오빠 너무 잘생긴 거 같아..."

"응 그러게 되게 멋지지? (너보다 거의 스무 살 많으면 아저씨 아니냐)"

"나 저 오빠랑 결혼할래"

"(동공확장) 응? 저 오빠도 그러고 싶어 할까?"

"내가 어른되면 저분은(??) 몇 살이야?"

"지금 27살이래.. 네가 대략 25살이 되면 저 아저씨는 43살쯤 되겠네.. 근데 하긴 뭐 네 아빠도 그즈음에 결혼했으니 아주 안될 나이는 아니긴 하다.."

"아빠도 그때 했구나.. 그럼 잘됐다 나도 웡카랑 결혼해야지~"

"..............(끄응) 그 얘기 아빠한테 좀 해볼래?"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확장되어 뒷목 잡는 남편의 모습이 떠오른다. 눈에 넣으면 아프지만 그저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게 하는 그 소중한 따님이 다른 남자랑 결혼하겠다는데 어쩔 텐가.




아이의 침대 머리맡에 이렇게 커다란 웡카 씨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나도 한창 연예인에 열광하기 시작하던 초등 고학년 때 좋아하는 연예인 포스터를 방안에 붙여놓고 매일 설레어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가 5학년쯤인가 됐던 거 같은데 요즘 애들이 진짜 빠르긴 빠른 건가...


잠자리에 들 시간. 남편이 살그머니 아이의 방안을 들여다보다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아이와 크게 웃고 나온다. 왜 그러냐 물어보니 돌아오는 답변이,

"하도 조용해서 들여다봤더니만 이놈이 저 종이 쪼가리에다가 뽀뽀하고 있네? 아빠는 뽀뽀해달래도 도망 다니는 자식이... 어휴~"


나는 그저 박장대소했다. 세상에.. 이제는 멋진 남자가 눈에도 들어오고 좋아하는 마음도 그렇게 표현하고 싶은 거구나.. 아이의 성장에 그저 웃음이 나왔다.

'웡서방 자네 이제 내 딸 책임지게!'라며 누군가는 기겁할 시대착오적인 발언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달려가버리는 게 새삼 아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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