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이후 넉 달 여만에 다시 찾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프렌치 오리지널 팀 내한공연 소식이 전해진 직후 바로 티켓을 예매하고 학수고대하며 기다렸건만, 최근 뜻하지 않게 다시 찾아온 어지럼증으로 인해 예매해둔 몇 가지 공연을 모두 취소해야 하는 건 아닌가 내심 노심초사하며 상태를 살펴왔다.
미세먼지가 최악이라던 지난 일요일, 절대 나가지 말라는 미세먼지 알림 서비스의 무서운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의 컨디션만큼은 모처럼 최악과는 거리가 먼 괜찮은 상태의 아침을 맞이해 나는 주저 없이 현관문을 박차고 낮 공연 시간에 맞춰 극장을 찾았다. 내가 온 맘을 다해 진심으로 임하는 소중한 취미 생활일 뿐만 아니라,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절대 놓칠 수 없는 나만의 오티움을 어지럼증 따위로 인해 놔버리고 싶지 않은 결연한 의지와 욕심이었다.
프랑스는 예전 출장으로 잠시 가봤던 터라 사실 그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은 보지 못했다. 몇 년 전 이 성당이 화재로 인해 손실되는 모습을 전 세계인들이 무척이나 안타까워하며 지켜봤더랬는데, 지금은 얼마나 복원이 되었을지 문득 궁금함만을 안은 채 일단 뮤지컬로 그 성당을 만나보기로 하였다.
이 작품은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1998년에 프랑스에서 초연되었는데, 국내에는 2008년 처음 소개되었다. 당시 SES 출신 '바다'씨가 에스메랄다로 캐스팅되어 화제를 불러왔었는데, 그 후 다섯 차례에 걸쳐 재연(再演)이 올려졌고 2012년과 2020년 두 번의 오리지널 팀 내한이 이루어졌다. 다만, 지난해 코로나로 인해 아쉽게도 조기 종료를 피해 갈 수 없었고 그 아쉬움을 해소하려 올해 단 3주간의 내한이 다시금 성사되었다고 한다.
처음 오디토리움에 들어가 마주한 아주 파랗고 청명한 무대 세팅은 심플함의 극치였다. 얼추 포스터 등을 통해 어떤 소품들이 등장하는지 정도는 알고 갔지만, 그냥 봐도 아주 대단한 무대 장치나 신기술의 집약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실제 극이 진행되는 내내 동원되는 무대 장치들은 아주 심플했는데, 그 대신 근육질 장신의 댄서(dancer) 연기자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해 상당히 역동적인 군무를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무대장치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더라도 그들이 에너지 넘치게 채워내는 가득 찬 무대를 지켜보는 것 만으로 충분히 볼거리는 가득했다. 이들은 말 그대로 현대무용을 하는 댄서들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역시나 그래서 이들은 노래를 부르는 앙상블 연기자들은 아니고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과 상황을 연출하는 다양한 군무를 선보인다.
바로 그 점에서 궁금한 점이 몰려왔다. 저들이 노래를 하는 앙상블이 아니라면, 극의 중간에 등장했던 코러스는 어떻게 동원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백스테이지에서 노래하는 앙상블 코러스가 따로 있는 건지, 아니면 MR로 사전 녹음을 따내서 공연 실황에 트는 건지, 궁금함이 쌓이다 보니 문득 나중에 프랑스 현지에 이 공연을 보러 가야겠단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 MR- Music Recorded라는 뜻으로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콩글리쉬이다.
(출처: 위키백과)
사실 이 공연은 오케스트라/밴드의 라이브 반주가 아닌 MR을 활용한 공연이다. 단순히 해외 공연이라는 특성상 비용 감축 차원에서 의도된 대체 방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작품은 프랑스 현지에서조차도 라이브 반주가 아닌 MR을 활용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공연을 보며 내리 느꼈던 점인데, 들려오는 악기의 소리가 어찌나 다양하고 많은지 오케스트라를 기본 세팅으로 일렉트릭 밴드 사운드에 어쿠스틱 기타로부터 파이프 오르간까지, 아무리 신시사이저를 활용한다 쳐도 동원되는 악기의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었다. 어떤 전문가께서 알려주신 내용인데, 프랑스 뮤지컬은 워낙에 동원되는 악기가 많아서 현지에서조차도 공연 시 사전에 녹음된 MR을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라이브 반주를 한다면 과연 무대 밑 피트에 모두 들어갈 수나 있을까 라는 나의 의문점이 해소되는 부분이었다.그러니 무대 위에는 댄서들이 연기하고 간간히 등장하는 코러스 정도는 사전 녹음을 통해 채우는 걸로 추정할 수 있겠다.
* 신시사이저(Synthesiser)- 사운드로 변환될 수 있는 오디오 신호를 생성하는 전자 악기로서 각종 악기의 음색을 전자적으로 발생시키고 변경, 합성하여 연주할 수 있는 기계적 장치이다.
(출처: 위키백과)
음악은 듣는 내내 너무나도 프렌치다. 전형적인 샹송(Chanson)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작품 전반에 걸쳐 오롯이 음악으로부터 얻는 희열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 한국에선 일반적으로 샹송이라 하면 콧소리를 내며 부르는 노래를 떠올리지만, 샹송이란 원래 프랑스 대중음악을 일컫는 말로 이 작품의 음악을 흔히들 알고 있는 오래전 '에디트 삐아프'의 '라비앙 로제'의 느낌을 떠올리면 조금 곤란하다.그저 프렌치 느낌이 진하게 묻어 있는 현대 팝뮤직장르에 가깝다고 정의하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언어마다 소리가 나오는 발성의 위치가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그 나라 사람들만이 내는 특유의 사운드가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음악 장르 자체도 프렌치임을 거부할 수 없는 전형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프랑스 뮤지컬 배우들의 보이스와 창법 역시 한국의 배우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배우들의 소리는 상당히 날카롭고 센 느낌이 강한데 반해 프랑스 배우들의 소리는 언어 자체로부터 비롯되는 부드러움이 전반에 깔려 있었고, 심지어 '플뢰르 드 리스'역을 맡은 여배우는 고음을 강하게 내지르지 못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참고적으로 더하자면, 듣기에 부드럽고 예쁜 소리보다 다소 날카롭고 센 느낌의 소리가 큰 무대에서는 멀리까지 소리를 프로젝션 할 수 있기에 더 좋은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뮤지컬의 특성상 배우들이 모두 마이크를 착용하기에, 창법과 성량의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하겠다.
전체적으로 성스루(Sung-through) 작품이라 대사를 말로 하는 부분은 없다. 다만 대화가 중심이 되는 부분은 옛날 바로크 시대로부터 비롯된 레치타티보(Recitative)의 포맷을 차용했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레치타티보란 복잡한 멜로디가 아닌 아주 심플한 음의 오르내림에 대사를 올렸다고 보면 되는데, 이는 노래보다는 좀 더 대사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한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프랑스 내음이 진한 전체적인 음악 속에 집시 여인인 에스메랄다를 표현하는 넘버에는 스페니쉬 음악의 색깔이 잘 묻어 들어갔으며, 이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어쿠스틱 기타의 멜로디가 약방의 감초 노릇을 톡톡히 한다. 전체적으로 듣기 좋은 넘버가 연이어지는 작품이지만, 그중 가장 하이라이트를 뽑으라 한다면 단연코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의 연출 부분 중 아마도 노트르담 성당의 종 3개가 상당히 큰 의미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마지막 에스메랄다의 주검을 안고 절규하는 콰지모도의 넘버에서 그의 절망을 이 종 3개와 연계시켜 묘사해주고 있다. 절절한 음악과 어우러지는 아주 스마트한 연출이었다고 생각된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딱 한 곡을 뽑으라 한다면 누구도 망설이지 않고 그랭구와르의 '대성당들의 시대'를 선택할 것이다. 유일하게 촬영이 허용된 마지막 커튼콜에서 그가 다시금 불러준 감동의 순간을 담아봤다.
11/21 마티네 공연 커튼콜, 그랭구와르의 '대성당들의 시대' 앙코르
위드 코로나 상황이라 그런지 예전 대비 대극장에도 이제 띄어 앉기 좌석 수가 상당수 줄어들어 그만큼 극장을 찾은 사람들의 수도 많이 늘었음을 체감할 정도였다. 서로 기본 방역 수칙만 잘 지켜줘도 이렇게 사람이 모인 공연장에서 비롯된 N차 감염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데, 요즘 확진자수가 점점 늘어나고만 있으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여인을 두고 각자의 동상이몽 가득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또 한 번 인간의 이기심과 본능을 들여다보며, 그리 오래지 않아 자유롭게 노트르담 성당을 눈앞에서 마주할 날을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