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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리 Dec 28. 2020

미용실 정착기

두 번째 방문을 할 것인가


이제 진짜 연말이고 머리도 마침 거지존이라고 불리는 어정쩡한 길이여서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파마를 하기로 마음먹고 네이버를 켰다.

10년 넘게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이곳에 정착한 지도 어엿한 3년 찬데, 미용실은 아직도 정착 못 했다.


미용실의 수가 포화상태임에 틀림없었다. 손님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여전히 치열하고 아직도 '첫 방문' 이벤트를 하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3년 동안 여기서 머리 자르고, 저기서 염색하고. 나는 이리저리 새로운 미용실의 첫 방문 혜택을 누리며 이곳저곳 전전했다.


이번엔 어느 미용실을 갈지 매번 검색하는 것도 사실 귀찮은 일이다. 조금 지치기도 했고, 이제 나도 진짜 한 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고 있던 차, 언제나처럼 나는 또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갔다.


저희 미용실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디자이너님이 질문했다. 나는 늘 그렇듯 "검색을 하다가 괜찮아 보여서요."라는 뻔한 대답을 꺼냈다.


인터넷 속 사진으로는 차가워 보이는 디자이너님을 직접 마주하니 아주 상냥하고 친절하셔서 내 마음이 풀린 걸까? 아, 그것보다도 평소엔 컬이 잘 안 나오는 늘어지는 머리카락인데 이번에는 너무 예쁘게 잘 나와서 그랬던 것 같다. 머리가 내 맘에 쏙 들어서. 그러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은 쉽고 동시에 어렵다.


각종 이벤트로 '첫'손님을 불러오는 건 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처음을 두 번째로 이어지게 만들기 위해선 특별한 뭔가가 더 있어야 한다. 이벤트로 혹 해서 방문한 사람들이 더 혹 할 기대를 줘야 한다.


두 번째 방문을 이끄느냐, 아니냐.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이벤트 때문에 다양한 미용실을 다녔던 건 사실이지만 마음 한편엔 꾸준히 다니고 싶은 미용실을 찾고 싶은 꿈이 있었다.


매번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 가지만, 항상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던 이유. 또 가고 싶은 특별한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다.


그러다 문득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건 어떨까? 한 번으로 모든 걸 평가하기엔 너무 야박하지 않은가.' 마음이 약해졌다.


그날따라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했었을지도.

그날따라 진상 손님을 만나 기분이 안 좋았을지도.

그날따라 유독 몸 컨디션이 별로였을지도.


하지만 나의 지갑을 여는 일이기에,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것을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서글퍼지지만, 이 모든 건 인생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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