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세상 어느 천지에 이렇게 이사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후다닥 결정하고 도장 찍고 우린 그렇게 이사를 왔다. 중학생 아이가 새로운 학교로 재배정을 받아야 했기에 무엇보다 주소 이전이 빨리 이루어져야만 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이사할 생각 1도 없이 잘만 살고 있었는데... 방학 동안 여느 때와 다름없이 띵가띵가 놀고 있는 아들. 재미 삼아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대치동 학원이나 다녀보라며 방특 넣었다가 이리도 후다닥 이사를 결정하게 될 줄이야. 이사를 결정하며 강남서초 교육 지원청을 방문 했을때 '반드시 이사 완료 후 서류를 제출하시오'라는 알림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이게 뭐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이삿짐을 옮기고 있는데 딩동~ 초인종이 울리더니 '안녕하세요. 교육지원청에서 나왔습니다.'며 직원분들이 방문하셨다. 아이들 방이며 교과서와 책들.. 가족사진까지 꼼꼼하게 확인하시는 걸 보며 무서운 동네다 싶었다. "하루라도 늦었으면 입학 못하는 거였어요?" 아이는 눈이 동그래져 물었고 가족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입학하고 보니 한 반에 1/3 가까이가 전학생이었다. 우리 학교가 아닌 대치동에서도 나름 인기 학교로 입학하기 위해서는 전날 저녁부터 교육지원청 앞에서 날밤을 새고 대기해야 한다는 말이 사실이겠구나 싶었다. 이런 동네에 우리 가족도 드디어 첫 발을 디디게 되었다.
대치동의 첫 느낌..
아이들은 어릴 적 살아온 동네를 떠나는 게 아쉬우면서도 새로운 변화가 설렜는지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오자마자 학급 반장도 하고 아이들과 신나게 어울려 농구를 하는 모습에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사교적인 아이들이었나.. 훌쩍 자란 모습에 고마웠다. 확실히 이전 동네에 비해 아이들이 대체적으로 모범적이고 순했다. 놀아봤자 삼삼오오 모여 학원 가기 전 농구하고 게임하는 정도랄까? 그마저도 학원 시간이 되면 알아서들 잘 가는 게 신기했다. 예전 동네에서는 우리 아이 학년이 특히 문제가 많아 수십 명의 일진들이 몰려다니며 학교 분위기를 흐려 학폭도 여러 번 열리고 경찰도 오고 가는 등 문제가 좀 많았다. 선생님들까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들 하시니.. 그곳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분명 쉽지 않았을 터이다.
이곳은 어떤가.. 도서관 같은 진풍경이 벌어지는 대치동의 스타벅스. 조용히 공부하는 아이들 속 어른들도 노트북을 켜고 일하는 어른뿐. 이곳에는 놀고 있는 아이들과 수다 떠는 아줌마들이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 교육이 1순위로 돌아가는 동네라는 게 실감 났다. 엄마와 함께 학원자투리 시간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어가며 공부하는 건 다반사요. 꼬맹이와 심오한 대화를 나누는 아빠들도 자주 발견되는 이 동네. 금요일밤 동네에 흔히 보일법한 부모들의 치맥모임이며 술 한잔 기울이는 아저씨들도 보기 쉽지 않은 동네. 이 동네 어른들은 놀지를 않나?? 의아했는데, 생각해 보니 밤늦은 시간까지 아이들 공부를 봐주고 라이드를 해야 하니 마음 놓고 퍼질 수도 없겠다 싶었다.
사교육의 온상. 무시무시하게 공부시키는 동네라지만, 학원빌딩과 아파트 집집마다 꺼지지 않는 불빛은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해 주고 지나가는 아이들의 무심한 표정은 묵묵히 자신의 미래를 위해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는 집념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동네 은근 정이 간다...
양재천의 선선한 밤공기와 반짝이는 높은 빌딩의 야경을 지나치며 오늘 하루도 대치동에서의 하루가 끝나간다. 학원들이 끝나는 10시쯔음 아이들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는 차량들로 복잡하게 뒤얽힌 대치동 한복판에서 경적소리가 별로 울리지 않는 건 내가 급하지 않을 땐 다른 차에서 내리는 아이의 모습을 잠시 기다려줄 수 있는 '다 같은 부모의 마음'이 통해서가 아닐까 한다. 누구보다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 때론 그 방법이 지나치게 넘치고 과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서로의 모습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들이 있어 생각보다 괜찮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얘들아~ 우리 이사 오길 잘한 거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