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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여행(2025.07.05~07.12)

003 여행은 호기심으로 시작하여 만남으로 끝맺음된다.

by 장형

여행은 호기심으로 시작하여 만남으로 끝맺음된다.


가이드 뚜까씨와 운전기사 미스터 바


울란바토르에서 에어비엔비를 통해 얻은 숙소는 기대이상이었다. 방 하나와 거실, 주방으로 구성되어 둘이서 생활하기에 적당했다. 유난히 깔끔떠는 아들녀석 때문에 숙소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다행히 숙소는 깨끗했고 식당과 마트가 즐비한 Seoul street과도 가까워서 편리했다. 아파트 창문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울란바토르의 야경도 이 숙소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사실 야경은 서울이나 내가 살고 있는 평촌도 울란바토르 못지않겠지만 여행지라는 시, 공간적 변화는 여행자의 눈과 마음을 평소보다 예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울란바토르의 세 번째 날, 현지투어가 시작된다. 이른 아침 어제 준비해 둔 컵라면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고대하던 투어를 시작한다는 설레임에 마음이 급하다. 약속 시간보다 10분쯤 일찍 아파트 주차장에서 투어차량을 기다린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현지투어를 신청하고 아침에 투어차량을 기다리면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제대로 의사소통은 된 것인지, 엉뚱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짧은 여정에서 투어를 망치는 것은 아닌지…. 가끔 가이드와 여행자가 엇갈려 엉뚱한 일이 벌이지기도 하지만 경험상 대부분 가이드는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정상적인 투어가 진행되곤 한다. 역시나 이번 투어도 조금 늦어질 모양이다. 메시지를 보내도 응답이 없더니 15분쯤 지나서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도착했다.


가이드 그리고 운전기사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오른다. 가이드는 뚜까라는 이름의 몽골여성이다. 뚜까씨는 언듯 보면 몽골인이 아니라 러시아계 사람처럼 보인다. 본인 말에 따르면 확실한 몽골인이지만 고향이 몽골과 러시아 접경지대 근처여서 조상 중에 러시아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여행동안 아들녀석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이 가이드 뚜까씨이다. 뚜까는 한국에서 4년 동안 강남의 호텔 룸메이드로 일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한국어를 배워서 몽골에 돌아온 뒤 한국인 상대 가이드를 하게 되었다. 한국말은 4년 동안 한국에서 일했을 때보다 몽골에서 여행 온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며 더 많이 늘었다고 한다. 13살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뚜까는 언제나 미소 띤 얼굴로 여행자들을 대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어려워하는 한국 젊은 친구들과는 달리 뚜까는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해 줬다. 먹고 싶은 몽골음식은 없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는가 하면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는 것을 좋았는지 멋진 경치가 나오면 가이드임을 잊고 본인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친구다. 가이드 역할에 요리사 역할까지 힘든 일정이지만 본인의 일을 즐기는 모습에 보는 이마저 덩달아 즐겁다. 뚜까는 이번 몽골여행에서 쌀국수의 고수 같은 존재였다. 쌀국수 자체로도 맛있는 음식이지만 고수가 있어 맛이 배가되는 음식이다. 뚜까씨가 있어 몽골여행이 훨씬 즐거웠다.


뚜까는 여행 내내 몽골의 음식, 경제, 자연환경에 대해 설명해 줬고, 산책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 물가와 경제 상황에 대한 어려움들을 이야기했다. 아이와 돈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던 것을 보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이 느끼는 어려움들은 비슷한 모양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나는 아저씨를 <삼촌, 삼촌> 하며 이끌어 주고 허물없이 대해주는 모습에 감사했다. 더불어, 여름의 몽골 모습도 아름답지만 겨울의 몽골모습은 여름과는 다른 혹한 속 아름다움이 있으니 본인이 소속된 회사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라는 깨알 홍보를 할 때는 귀엽기까지 했다.


뚜까씨가 몽골에서 만난 조카뻘 친구라면 운전기사 미스터 바는 동생뻘 쯤되는 몽골여행의 친구이다. 언제나 즐겁고 다소 수다스러운 뚜까와는 달리 미스터 바는 말수가 적은 친구였다. 첫인사를 나눌 때 몽골 이름을 이야기해 줬지만 내가 정확히 발음을 못하자, “Just call me Mr Ba”라고 말한다. 첫 번째 날 저녁식사를 하며 뚜까씨의 수다로 미스터 바에 대해 몇 가지 알게 되었다. 미스터 바는 75년생으로 나보다 4살이 어리고(나보다 나이가 많은 줄 알았다) 한국어는 못하지만 수준급의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놀랐던 사실은 미스터 바가 울란바토르 사립대학교의 법과대학 교수라는 것이다. 학기 중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방학중에는 여행객들의 운전기사를 한다. 결혼을 늦게 했는지 어린 아들이 있고 돈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저녁식사에 보드카를 한 잔 하며 미스터 바와 몽골과 청년들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 때문에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느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학생들은 돈 생각밖에 없다는 둥, 마치 한국 50대 아저씨의 대화처럼 느껴졌다. 전세계 사람들이 근본적으로는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지만 뚜까씨나 미스터 바와 이야기를 나누며 몽골사람들은 얼굴 뿐 아니라 생활이나 사고도 한국인들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말수가 많지 않은 친구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식사 때마다 20대 초반의 여행객들이 어색한 50대 아저씨들은 마주 앉아 식사를 하였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심심치 않은 여행친구가 되었다.

ㅇ 투어를 함께한 친구들


이번 여행에서 함께 투어에 참가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몽골 현지투어의 신청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나는 해외에 여행을 가면 현지에 도착해서 필요한 투어를 예약한다. 투어는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불편한 곳만을 골라서 현지 여행사를 찾아 설명을 듣고 예약한다. 몽골의 경우는 초원이나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현지에서 저렴한 투어예약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1인당 투어비용이 많이 증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경비를 줄이고 여행 스케줄도 자유롭게 짜보려고 현지여행사에 e-mail을 보냈지만 투어 멤버 6명을 모아야 하고 비용관련해서는 Naver 몽골 카페와 대동소이했다.(이전 여행에서 호텔이나 여행사에 e-mail을 보내면 비용이 저렴하던지 별도 혜택이 있었다.)


Naver 몽골여행 카페를 이용해서 그룹을 만들던지, 그룹에 참여하여 5-6명의 모둠을 만들어야 여행사 예약이 가능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에 이쪽 저쪽을 기웃거려 봤지만 50대 아저씨와 아들을 멤버로 받아들여주는 그룹은 없었다. (사실 50대 아저씨가 있어서 안 된 것인지 상황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10번 정도 거절을 당하고 나니 50대 아저씨를 거절한 것으로 믿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여행일자가 다가올수록 곤혹스러웠다. 10여 번 퇴자를 맞았고 안되면 현지에서 어떻게든 해 볼 요량으로 마지막 시도를 한다. 조삼모사이지만 <20대 대학생 아들과 50대 아버지>로.


마지막 시도에 연락이 왔다. 성공이다. 그렇게 나와 아들 그리고 4명의 투어멤버가 더해져 6명이 함께 몽골투어를 하게 되었다. 01년생 여대생 2명, 04년생 남학생 2명, 02년생 아들과 71년생 아버지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이 차이가 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한 것은 다른 여행에서도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아들녀석이 있었기 때문에 더 쉽지 않았던 것 같고 숙소와 비용을 나눠야 한다는 점에서도 쉽지 않았다. 비용의 경우, 내가 많이 부담할 수도 있었지만 이전 여행 경험을 통해 비용을 많이 부담한다고 해서 젊은 친구들이 마냥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친구들의 의사결정을 따르는 쪽을 택했다.


운전기사인 Mr 바는 나를 Mr Lee라고 불렀고, 가이드 뚜까씨는 기가 막힌 호칭인 삼촌이라는 호칭으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젊은 4명의 친구들은 나름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결국 어떤 호칭도 쓰지 못했다. 혼자 여행을 가서 한국인 여행자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언젠가부터 내 영어식 이름인 ‘Jeff’라는 호칭으로 불러달라고 한다. 친구들은 Jeff 아저씨, 형, 오빠라고 부르며 한국식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는 나이에 대한 속박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곤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뚜까씨의 ’ 삼촌‘이라는 호칭도 생소하기는 했지만 일행 중 04년생 대학생 서준씨가 얼떨결에 부른 ’장원님‘이라는 호칭에는 두고두고 피식피식 실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 또래의 아저씨가 부르기도 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행을 통해 이 친구들에게 배운점이 있다면 요즘 젊은 친구들 특유의 공평에 대한 부분이다. 여행 중 2명이서 한 게르를 사용했는데 쳉헤르 온천에서는 게르가 2개만 예약이 되었다. 내 생각에 남자 4명이 한 게르를 쓰고 여자 2명이 한 게르를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상의 끝에 숙소의 사용은 그렇게 사용하기로 했지만 숙소의 비용은 여자 2명이 절반을 감당하고 남자 4명이 절반을 감당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 결정은 02년생 여대생 2명의 의견을 나머지가 받아들여 결정되었다. 나는 젊은 친구들의 결정에 맞기 기로 한 터라 조용히 결정을 따랐지만 나로서는 조금 생소한 결정이었다. 무척이나 합리적인 결정이지만 우리 세대였다면 이런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지불한 비용과 상관없이 숙소를 남녀로 배분하고 남는 돈은 1/n 하거나 간식 혹은 식사비용으로 지불했을 것 같다. 최소한 여자들에게 돈을 더 지불하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르지만 공평했다.


나를 제외하고 아들녀석을 포함한 5명의 젊은 친구들은 4일 동안 각자 맥주 1캔 혹은 술을 전혀 마지시 않았다. 그렇다고 즐기지 않는 것은 전혀 아니다.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신나게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여행을 하는 저녁이면 언제나 불콰하게 취하는 아버지 세대와는 조금 다르게 여행을 즐기는 듯하다. 결국 준비한 몽골의 보드카는 3일 내내 나와 Mr 바의 차지가 되었다. 이제껏 여행을 하면서 가장 어린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나름 재미있는 여행이기는 했지만 왠지 보호자 노릇을 하는 것 같아 이왕이면 또래들과 즐기는 여행이라면 좀 더 재미있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ㅇ 마트에서 만난 노르웨이 친구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마지막 날 오후 아내와 딸아이 선물을 사기 위해 울란바토르 국영백화점의 대형마트에 갔다. 한국에 가지고 갈 서너 가지 먹거리를 고르고 계산대에 줄을 서 있는데 유럽의 젊은 친구들 4명이 카트에 먹거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계산중이다. 계산중에도 계속해서 매대를 오가며 물건을 추가하고 있다. 바로 뒤에 나와 눈빛이 마주치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한 달 동안 초원에서 캠핑을 할 예정이기 때문이라고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국적을 물으니, 노르웨이라고 답한다. 산더미 같던 물건들의 계산을 마치고 서로 즐거운 여행이 되라는 인사를 나누며 헤어진다. 그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 달 동안 몽골의 초원에서 캠핑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그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내가 20대 시절이라면 그 친구들의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부러워했겠지만 이제 한국도 노르웨이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해 있다. 하지만 시간적, 정신적 여유에서는 아직 미치지 못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런 여유를 갖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저 노르웨이 친구들이 갖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몽골의 초원에서 한 달 동안 캠핑하고 동남아의 해변에서 한 달 동안 서핑을 즐기며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여유를 갖었으면 좋겠다. 나와 같이 여행한 아들녀석과 몽골 투어를 같이한 한국의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 우리에게 그런 여유는 부족한 것 같다. 커다란 짐을 들고 마트를 빠져나가는 노르웨이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저런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행은 문화와 역사, 자연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하여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끝맺음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역사적 유적지를 방문하더라도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에 따라 여행은 달라진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여행도 결국 사람이다. 여행 속에서 내가 여는 마음의 크기만큼 상대방의 마음도 열린다. 국적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면, 그 다른 정도의 크기에 비례해 내 마음을 열어야만 상대방의 마음이 보인다. 특히, 이번 몽골여행에서는 아들녀석의 마음을 조금 들여다 보고 내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서로 노력한 것만으로 충분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


몽골, 정말 아름다운 자연과 친절한 사람들의 나라다. 다시 기회가 있다면 노르웨이 친구들처럼 이번 여행에서 가보지 못한 흡수골 호수 자락에서 긴 캠핑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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