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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여행, 살아보는거야 - 맹선아

단순하게 느리게 에티오피아

by 장형

# 에티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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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제목 : 여행, 살아보는거야

ㅇ 저자 : 맹선아

ㅇ 여행지 : 에티오피아

ㅇ 3줄개요

-. 단순하게 느리게 에티오피아 살기

-. 에티오피아 커피

-. 따뜻한 사람들, 결국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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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자가 에티오피아에서 코이카 단원으로 활동하며 지냈던 14개월을 일기 형식으로 작성한 글이다. 에티오피아의 이국적 풍경, 커피와 아프리카의 음식, 따뜻한 이웃들, 이방인이 겪어야 하는 외로움 등에 대해서 소녀적 감성으로 서술했다. 배낭을 메고 다니는 본격적인 여행기와는 달리 이국에서의 생활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곳에서 몇 달 혹은 몇 년쯤 살아보는 건 어떨까라고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짧게 머물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살아본다는 것이다. 이웃이 생기고 시간은 여행지의 속살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작자에게 에티오피아가 그런 곳이었다. 2번의 에티오피아 여행에 이어 코이카 단원으로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 이국적인 풍경, 이국적인 소리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며 나뭇잎들끼리 부딪히며 내는 소리, 사람들의 걸음 소리, 드문드문 들려오는 당나귀 울음소리, 양과 염소, 소의 울음소리, 마차를 끄는 말의 말굽 소리, 옆집의 앞집에서 커피 빻는 소리, 멀리서 들여오는 무슬림 또는 정교회에서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기도 소리, 때를 맞춰 울리는 학교 종소리.


풍경만 이국적인 것이 아니라 소리도 이국적인 소리가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당나귀 울음소리, 양과 염소, 소의 울음소리, 커피 빻는 소리와 기도소리가 이국적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옆집의 앞집에서 커피 빻는 소리는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서 에티오피아에 가 보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생각나는 이국적인 소리가 있다.


인도네시아의 새벽을 가르며 울려 퍼지는 이슬람 기도소리. 이른 새벽 기도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미얀마 인레 호수 변두리 호텔의 자명종은 닭의 꼬끼오 소리이다. 어찌나 우렁찬 소리를 내는지 일어나지 않고는 버틸 재간이 없다. 이곳에는 절박한 울음소리가 하나 더 있다. 어둠이 짙어지고 깊은 밤이 되면 인적이 드문 거리의 주인공은 동네의 개들이다. 낮에도 패거리를 지어 돌아다니는데 밤이 되면 이 놈들이 패싸움을 벌인다. 내가 머문 3일 밤만의 일인지 모르겠으나 깨갱거리는 소리에 창문 밖을 쳐다보니 전쟁도 그런 전쟁이 없다. 혈투다. 미국을 여행했을 때는 두 번이나 총소리를 들어야 했다. 싸구려 호텔 침대 위에서 들은 총소리는 모골을 송연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음이라고는 거리가 먼 옆방의 신음소리가 총소리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억이 나는 소리는 첫 번째 홍콩여행에서 들었던 시장의 소음이었다. 노천 시장이고 규모가 꽤 큰 시장이었음에도 길을 그득 채운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성조 섞인 삐죽한 소음은 옆 사람의 말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처음 접한 광둥어여서 였을까, 어린시절 한국의 재래시장도 어지간히 번잡하고 시끄러운 곳이었지만 96년 홍콩의 재래시장은 잊혀지지 않는다.


# 프로펠러 비행기 타 봤니?


“아씨 이 프로펠러 내가 이럴 줄 알았다고” 국내선(에티오피아) 비행기를 탔는데 이대로 추락하는 건 아닌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웬만해선 비행기 멀미를 하지 않는 내가 팔받침 대를 꽉 붙잡으며 악으로 버텼다. 옆에 앉은 에티오피아 사람도 두려웠는지 연신 받침대를 쥐락펴락하고 읔 읔 거리며 한숨을 내쉰다. 처음이었다. 이런 상황, 그래도 무사히 착륙했다.

에티오피아에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작가는 어지간히 놀랐던 모양이다. 나에게도 프로펠러기를 탄 경험이 몇 번 있었다. 미얀마 국내선은 양곤과 바간 그리고 만달레이를 순환버스처럼 운행하는데 이 비행기가 프로펠러기이다. 하지만, 이 비행기는 약 100여 명 정도의 승객을 태울 정도로 큰 비행기여서 타기 전 프로펠러를 보고 좀 놀라긴 하지만 일반 비행기와 특별한 차이가 없을 만큼 안정적 비행을 한다.


하지만 나도 작자만큼이나 겁을 먹었던 비행이 있었다.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에서 이웃 섬과 본토인 다르에살람을 운항하는 비행기가 그것이다. 업무차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과 인근의 섬들을 답사하기 위해 탄자니아에 갔었다. 2번의 경유와 20시간이 넘는 비행을 거치고 나서야 잔지바르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잔지바르 공항에서는 탄자니아 본토에서 현장소장으로 근무하는 입사동기가 마중 나와 있었다. 악수를 주고 받은 뒤 대화를 나눈다.


<이 팀장, 비행장에서 쪼그만 비행기 몇 대 못 봤니?>

<응 봤어, 정말 작은 비행기가 몇 대 있던데…. 꼭 장난감 같더라>

<그래, 니가 그 장남감 타고 내일 인근 섬을 돌아볼거야. ㅋㅋㅋ>


다음날 우리는 그 장난감을 타고 현장답사를 수행했다. 비행사와 조수석을 제외하면 12명이 탈 수 있는 소형 프로펠러기였다. 비행기도 어찌나 오래돼 보이는지 제대로 날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워 보였다. 불안해하는 나를 보고 웃음 짓던 친구는 프로펠러기는 고장이 나더라도 활강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하다고 한다. 물론 그 이야기는 안심되기는 커녕 더 불안하기만 했다. 드디어 사람들이 비행기에 탑승했다. 장난기 어린 미소와 함께 기장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쳐다보며 말한다. "안전벨트 잘 매고 기내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은 뒤쪽에 생수가 있으니 가져다 마셔!!!” 그리고 출발한다. 다행히 바람이 크게 불지 않았고 날씨도 좋아서 멋진 비행을 즐길 수 있었다. 큰 항공기에 비해 비행고도도 낮아서 아프리카 섬과 바다, 그리고 적도의 정글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 에티오피아 커피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란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식사 후에 마시고,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고, 특별한 행사에서, 혹은 우정의 표시로 세리머니를 한다. 생두를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긴 후 로스팅 전용 팬에 넣고 작은 화로에서 로스팅 한다. 초콜릿색으로 잘 볶아진 원두를 사람들에게 향을 맡아보라며 시향을 해주기도 한다. 로스팅 한 원두를 작은 절구에 빻고, ‘제배나‘라는 전통 주전자에 가루를 넣고 물을 넣어 가루가 가라앉을 때까지 끓인다. 커피 세리머니를 할 때는 ’은딴‘이라는 향을 피우는데, 신성한 행위라는 의식이다. 이렇게 다 된 커피를 석 잔 권하는데, 첫 번째 잔은 ’맛‘을, 두 번째 잔은 ’행운‘을, 세 번째 잔은 ’축복’을 의미한다.

이 책 내용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 에티오피아 커피에 대한 부분이었다. 생두를 씻어서 껍질을 벗기고 화로에 로스팅 하여 향을 즐긴다. 그리고 절구에 직접 빻아서 물에 끓여 먹는 커피. 어떤 맛일까?커피를 마실 때 피운다는 향인 ‘은딴’은 어떤 냄새일까? 커피를 무척이나 즐기는 나는 에티오피아를 여행하고 싶은 충분한 동기를 이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만들어 줬다.


나에게도 기억에 남는 맛과 향의 커피가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10여 전 업무차 탄자니아 잔지바르에 출장을 갔었다. 잔지바르의 다운타운인 스톤타운에 숙소를 정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사실 해외 출장은 정해진 현장답사를 제외하고는 호텔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미팅과 보고서 작성으로 채우게 된다. 그렇게 호텔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가장 큰 즐거움은 그 호텔 루프탑 카페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었다. 호텔 루프탑 카페의 커피는 계피향과 맛이 났다. 달큼하면서도 맵싸한 진한 계피향 커피였다. 커피를 먹고 나면 커피가루가 남는 것으로 봐서는 커피가루와 물을 같이 끓여 낸 듯 보였다. 커피 맛이 특이하고 입맛에 맞아서 시간 날 때마다 옥상으로 올라가 자주 마시곤 했다. 잔지바르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탄자니아 본토로 들어와서 커피콩 전문 상점에 가서 같은 종류의 커피를 사기 위해 알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잔지바르에서 알아보지 못하고 온 것이 안타까웠다. 몇 년 뒤 잔지바르에 현장이 생기고 현장 근무하는 후배에게 부탁해서 알아봤지만 같은 커피는 찾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카페에 가면 가끔 계피향 커피가 있는 곳이 있었지만, 잔지바르에서 마셨던 그 맛과 향의 커피는 찾을 수 없었다.


여러 나라의 커피나 차 혹은 음료수를 소재로 여행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생각된다. 커피는 아마도 아프리카와 남미 그리고 유럽을 여행하며 즐기면 될 것 같다. 차를 소재로 여행한다면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시아와 인도, 스리랑카, 태국, 인도네시아 등 남아시아 쪽을 구분하여 여행한다면 좋은 테마여행이 될 성싶다.


# 결국 사람이다.


오늘도 “Suna! Suna Wouters~”라며 나를 찾는 가족들이 있다. 이 집에서 지내면서 내 이름은 Suna Wouters였다. 요하네스의 8번째 딸, 요하네스에겐 네덜란드에 있을 때 입양한 한국인 딸 Kim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동네에서 처음으로 한국 여자인 나를 만나고, 아빠의 마음으로 딸같이 생각해 주고, 아껴주고, 사랑해 주셨다. 그런 요하네스와 나의 관계를 보면서 요하네스 가족들은 요하네스의 성 Wouter을 따서 ‘선아 바우터~‘라고 불러주었다.


20대 초반 여성이 혼자서 아프리카에서 그것도 대도시가 아닌 지방의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작자가 바우터 가족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네덜란드인 바우터씨는 에티오피아인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이웃이다. 작자는 바우터 가족과 정을 나누고 많은 일들을 의논하며 에티오피아의 일상을 꾸려나간다. 이외에도 먼 타국에서 홀로 지내는 작자를 위해 많은 현지인들이 보살핌을 준다.


지쳐서 변화가 필요해 여행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사람이다. 사람에 지치고 할퀴어져 여행길을 나선다. 하지만, 그 여행길에서 위로와 위안을 주는 것 역시 사람이다. 결국 사람이다.



에티오피아 지방 소도시에서 머나먼 타국 대한민국의 어린 여성이 경험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써 내려간 글이다. 특별한 사건없이 조용한 일상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코이카 활동에 대한 궁금증으로 나오기를 기대하며 책을 읽었지만 끝내 이야기가 없어서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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