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있어야 문을 여는 우리 집 미용실

by su

작년 9월 말 독일로 오기 전 남편이 한국에서 두 딸의 머리를 단발로 잘라줬다. 어릴 때는 아이들의 머리를 잘라도 별 말을 하지 않았는데 아이들도 커가면서 머리를 자르려면 아이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더구나 12살, 9살이니 자기의 의사가 확실하다.

우리가 독일에 온 지 벌써 9개월이 다 되어가니 아이들 머리가 많이 길었다. 아이들은 더워도 절대 자르지 않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굳이 자르지 않겠다면 그냥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나중에 본인들이 더워서라도 이야기할 게 뻔하다.

그 시간이 되었는지 어제 퇴근하고 온 남편이 보자 둘째가 나에게 오더니 엄마 오늘 아빠한테 머리나 잘라달라고 할까?라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좋지라고 이야기를 하고 이때다 싶어 얼른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둘째는 기대에 찬 목소리를 하며 오랜만에 머리를 자른다며 기대가 조금 된다고 이야기를 하더니 흔쾌히 화장실 의자에 앉았다.

남편은 유쾌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다. 미용사처럼 둘째에게 원하는 머리를 골라보라고 여러 사진을 보여 주자 둘째는 자기는 스타일은 없고 그냥 어깨까지만 잘라달라고 했다. 나는 둘째가 머리를 자르는 걸 보고 세탁실로 빨래를 돌리러 갔다.



세탁실에서 올라와보니 둘째는 울고 큰 애는 머리를 자르는 걸 보면서 잘 자르고 있는데 왜 우냐며 나도 아빠한테 잘라 달라고 할까?라는 말을 하며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둘째는 만져보니 자기의 머리카락이 어깨보다 짧은 거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렇게 짧지 않은데라고 하자 짧다며 앞으로 머리가 언제 기냐고 이야기를 했다.

둘째는 서럽게 울고 남편은 머리를 잘 잘라야 하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나는 둘째를 겨우 달래고 잘리는 머리카락을 휴지로 계속 정리를 했다. 정리하지 않고 계속 자르다가 신발에 머리카락이 붙어 집안 곳곳이 머리카락으로 도배될 게 뻔한다. 그렇게 둘째의 머리가 완성되고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니 둘째도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더니 머리를 자르려고 화장실 의자에 앉은 큰 애를 보더니 언니도 자기와 같은 길이로 잘라야 한단고 몇 번을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큰 애도 남편이 원하는 스타일을 물어봤고 어깨보다 긴 길이로 잘라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가위로 자르고 숱도 쳐줬다. 독일 온 지 9개월 만에 아이들이 여름을 맞이하여 머리를 잘랐다.

잘린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내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동안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길어 머리를 감을 때나 수영모자를 쓸 때 많이 힘들어했다. 이제 둘째는 머리를 묶지 않아도 좋다며 어느새 자기 머리에 만족했다.


아이들이 머리를 다 자르고 나니 나도 머리가 자르고 싶었다. 나는 머리 길이가 짧아 남편이 시원하게 숱만 쳐줬다. 언제 또 우리 집 미용실이 문을 열지 모른다. 유일한 손님인 아이들이 원해야 머리를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빠가 아이들 머리를 직접 잘라주고 자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머리를 자르니 아이들과 또 하나의 추억거리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