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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Dec 15. 2023

고통을 견뎌야 바른 지혜가 열립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입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미국 위산사와 여러 도량에서는 재가자들이 모여서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밉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사람들은 절에 와서 서로 선물을 나눠주고, 특별 요리도 합니다. 어떤 재가자들은 점심시간에 잔잔한 캐럴 음악도 틀어줍니다. 아마 한국인들에게 이런 모습이 좀 생소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에서 온 명절이니까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제일 큰 명절 중 하나이며, 문화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그러니 불교 사찰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즐거운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엽니다. 매년 크리스마스는 겨울 선칠 기간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꽤 많은 이들이 결가부좌와 단식 등의 집중 수행에 들어갑니다. 그건 참여한 수행자들이 괴로움을 많이 겪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와중에 평화와 사랑의 크리스마스는 수행자들에게 괴로운 중 단비와 같은 즐거운 날입니다. 


우리가 아직 노산사에서 있었을 때에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칠 수행하던 재가인들은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수행자들의 가족들이 절에 모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수행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가족과 친구들이 수행하는 사람들을 응원해 주게 되었습니다. 


매년 겨울이 되면 꽤나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으로 선칠 수행에 참여하러 갑니다. 올 겨울엔 특히 여러 젊은 수행자들이 미국으로 갔습니다. 선칠은 부처가 뽑히는 곳 즉 선불장이라 불리는 아주 힘든 정진기간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불자들은 어려움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연말을 편하고 즐겁게 보내는 대신 불편함과 괴로움을 견디는 수행을 택했습니다. 


왜 편하고 즐거움 대신 괴로움을 견디기로 했을까요?  '선칠은 깨달음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곧바른 길'이란 말이 있듯이, 선칠법은 불교 역사상 수천 년 간 많은 이들이 깨달은 장이 되어왔습니다. 선칠은 본래 고(苦)의 법(法)입니다. 괴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괴로움 속에서 이해를 얻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여러분에게 유익한 이유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여러분이 인내심을 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픔에 대처하고 견디면, 그 과정 속에서 효과적으로 인내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선칠에 참여하면 가장 먼저 앉는 자세에서 오는 다리의 아픔을 참아야 합니다. 결가부좌가 아닌 반가부좌나 평좌라 하더라도 그렇게 많이 앉으면 결국 아픕니다. 그때 우리에게 가능한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그만두거나 계속하는 겁니다. 만약 그만두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직면해서 견디기로 결심하면, 더는 아프지 않을 때까지 참고 또 참아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입니다. 하든 일단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아프다고 투덜거리는 것도 멈추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무엇이든 참을 있게 됩니다.


사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쉬워도 직접 해보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아상 즉 에고는 이렇게 하도록 그냥 용납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픔을 참는 일은 인내심을 키우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자진해서 자신에게 준 고통을 참아낸다면, 타인이 주는 고통 따위는 훨씬 더 쉽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과정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선칠을 통해 우리의 성격도 완전히 변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참을 수 있게 되고, 회복 탄력성이 향상됩니다. 힘도 키웁니다. 어떤 힘을 키울까요? 육체적, 정신적 힘 둘 모두를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더 참고 견딜 수 있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의 두려움도 줄어듭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다음 일상으로 돌아가면 놀라운 변화를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명상뿐 아니라 일상 속 모든 일에 더 인내하고, 잘 견디게 됩니다. 집중 수행에서 얻은 놀라운 변화를 자신의 일상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무작정 오래 앉는 것만이 우리의 목표는 아닙니다. 앉아서 아픈 걸 참는 과정에서 선생님은 여러분이 바른 지혜를 열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건 각자의 개인이 가진 수행의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지혜를 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는 수행은 선(善, Goodness)에 그 기반을 두고, 힘을 키웁니다. 물론 악(惡, Evil)에 기반을 두어도 힘은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여러분이 수행하고 있는 환경이 어떤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 명상을 배울지 잘 택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바른 지혜가 열립니다. 그리고 그런 힘과 지혜를 갖춰야만 진짜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가 거부한 그런 사람도 포용할 수 있으려면 그런 힘과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법문: 영화 선사의 선칠 법문(2012년 12월 25일)

https://youtu.be/kT5iULXUdi8?si=BWNpgzJujAgXcb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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