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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Dec 18. 2023

보시행과 자선사업

벌써 겨울입니다. 연말이 되면 미국에서 지냈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미국에서는 11월 추수감사절, 12월 크리스마스 그리고 섣달그믐 즉 새해 전야가 1년 중 가장 큰 명절입니다. 그리고 이맘때면 어김없이 많은 기업과 단체에서 세계적인 자선 활동을 펼칩니다. 이런 활동으로 기업은 좋은 이미지를 홍보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자선을 가장 조직적이고 활발하게 하는 곳이 천주교와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 단체들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미국은 개신교 즉 기독교와 관련이 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선의 규모도 엄청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자선 활동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듭니까? 마음이 뭉클한가요? 우린 보통 이런 자선 활동에 관한 뉴스를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내 마음속에 있던 질투, 미움, 탐심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기독교인은 사랑,  용서, 포용과 같은 가치관과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실수를 하거나 혼란스러워도 곁에서 힘이 돼주려 노력합니다. 제가 어릴 때 유치원 선생님도 교회 목사님이셨고, 중학교 때 우울하고 마음이 힘들 때 가장 힘이 되어준 친구도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었는데, 아직도 그분이 기억납니다. 그 목사님은 저를 보고는, "사람은 종교에 상관없이 믿음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세상에 비관적이고, 저항심이 큰 저를 달래주고, 따뜻하게 품어주셨던 분도 기독교인 국어교사였습니다. 이런 번뇌로운 시절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게 되지만, 이들의 따뜻함과 배려는 아직도 제 마음속 깊이 좋은 씨앗이 되어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종교에 상관없이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서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언론은 흔히 종교의 혐오 사건을 다루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게 시청률을 올리니까요. 하지만 사실 그런 혐오 사건보다 마음이 뭉클한 좋은 일이 더 많을 겁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자선 사업이 늘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언론에서 언급하는 소수의 혐오 사건만 보고 우리 마음속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퍼뜨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차라리 우리는 종교를 넘어서 타인의 선행을 격려하고 공경하는 게 좋습니다.


기독교에서 자선을 강조하듯 불교는 '보시바라밀'을 수행의 가장 기본으로 배웁니다. 사실 불교 보시행보다 기독교의 자선 사업이 더 활발하고 조직적일 것입니다. 자선에 대해서는 우리 불교보다 기독교가 훨씬 월등합니다. 불교는 전통적으로 자선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불교의 초점은 뭔가요? 불교는 이번 생에 대해서만 고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러 생을 고려합니다. 단순히 1년, 10년, 30년 또는 이번 생만 같은 좁은 시간 범위만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기독교가 하는 자선 사업이 훨씬 잘하는 겁니다. 하지만 일천만 번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불교의 정신입니다.


우리 불교는 훨씬 더 멀리까지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렇듯 기독교와 불교는 서로 전문분야가 다릅니다. 불교에는 윤회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현생만 살 거라면 모든 자원과 노력을 이번 생에 집중하면 됩니다. 계획 기간이 상당히 짧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하지만 불교는 훨씬 더 길게 내다봅니다. 윤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 문화와 교육의 영향을 받은 현시대에는 자선과 같은 가시적인 프로젝트가 있어야 불교도 다시 꽃필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요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이 불교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마음을 울리고 따뜻한 감동적인 이야기만큼 괜찮은 게 없으니까요. 불교 수행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고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고, 지혜를 얻어 생사에 끝을 낼 수 있지만 모두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이들은 자선 사업에 참여하면 좋습니다. 그렇게 복을 짓는 겁니다. 기독교는 자선 사업을 하고, 우리 불교는 보시행 즉 'Giving'을 합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이 대승에 대한 호의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불교도 세상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흔히 불교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고, '외부와 연루하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대승은 그렇지 않습니다. 절 담벼락 속에 숨어있으면 안 됩니다. 국가 인종 간의 경계를 허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스리랑카 불교, 베트남 불교, 중국 불교, 한국 불교로 나눕니다. 불교는 글로벌 불교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인터넷에 보면 사람들은 '일본 불교', '티베트 불교', '한국 불교'라고 말하며 스스로 너무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이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보통 국적이나 언어로 인해 시야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승은 다릅니다. 


만약 영화 스님이 베트남 출신 미국인이라고 해서, 베트남인과 미국인을 먼저 도와주고 한국인과 유럽인은 나중에라고 생각했다면, 저는 대승의 큰 혜택을 누릴 수 없었을 겁니다. 영화 스님은 저에게 한국인만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두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어야 한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왜 우리는 국적, 언어, 종교에 연연할까요? 불교는 누구든 다 포용해야 합니다. 한국적인 불교를 좋아하면 더 이뻐하고, 한국적인 불교의 모습을 갖춰야만 가르쳐줄 수 있으면 안 됩니다. 다른 나라의 불교를 보고서, '역시 한국 불교가 수준이 높아'라고 생각하나요? 그건 대승과 거리가 멉니다. 


저도 대승을 만나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언어, 국경, 믿음을 초월해야 합니다. 인종, 문화, 나이의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불교에 대한 마음가짐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대의를 위해 진정으로 헌신하는 마음이 대승의 핵심입니다. 그러니 오늘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를 도우려 노력해 보십시오. 자기 자신만 돕지 마십시오. 자신을 도와줄 시간은 늘 많습니다.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선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한 일을 해보십시오.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의 종교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대승의 첫걸음입니다. 


*참고법문: 영화 선사의 법문(2013년 2월 24일) ‘기독교의 자선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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