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공황장애 약물치료 2년 차 현황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치료일지 10

by 박모씨

내가 우울증 치료를 받은 지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내 인생엔 많은 전환점들이 지나갔다. 지난 포스팅들은 내가 작년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려두었다가 비공개로 전환한 포스팅들이다. 브런치가 글을 쓰기에 더 적합한 플랫폼인 건 알고 있었지만, 활용해 볼 생각을 못하다가 며칠 전에 글 하나를 저장해 두고 작가 신청을 했다. 그랬더니 바로 작가 전환이 승인되어서 본격적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중에서야 브런치 작가 승인 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작년에 쓴 글은 거의 다 포스팅이 완료되었다. 이제는 현재 내가 어떤지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할 때인 것 같다.


2년 동안 총 일곱 군데의 정신과를 방문했다. 그중 세 군데는 꾸준하게 치료를 받고 있는 곳이고, 한 군데는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곳이고, 또 다른 한 곳에선 의료사고를 당했으며, 죽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을 때 방문한 곳이 한 곳 있고, 맨 처음 방문한 병원이 있다.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구석이 있다는 점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된다.

치료를 받으면서 내 우울증이 많이 나아졌느냐, 하면 꼭 그렇진 않다. 잘 지내는 날이 분명히 많아지긴 했다. 창문 밖을 보면서 단풍이 지는 풍경을 볼 줄 알게 되었다. 예전엔 창문을 보면 그냥 저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 충만해지고 의욕이 넘치느냐, 그것도 아니다. 아직도 나는 내가 갈등의 연속인 이 삶을 왜 견뎌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가끔가다 안 좋은 날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단순히 ‘기분이 안 좋은’ 날이 아니다. 내 안에 모든 걸 내려놓고 싶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이 돌아가기 때문에 내가 죽어버리는 것 밖엔 방법이 없겠구나 싶은 날들이 있다.


올해 봄에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싶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 먹던 약을 이틀에 한 번으로 줄이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치료 종료에 대한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그랬다가 올여름이 지나면서 당장에 죽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매일 밤 울면서 잠드는 날이 찾아왔다. 나는 약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구나. 나는 약이 없으면 이렇게 안 좋아지는구나 싶어서 더 우울했다.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슬픈 삶을 살고 있는지 나의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웠다. 약이 없으면 안 되는 나 자신이 싫다고 병원에 이야기를 했다. 기분의 사이클이 있는데 그 사이클의 크기를 줄여나가는 과정인 거라고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바뀐 점이 없느냐, 그것도 아니다.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참 비교를 많이 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게 부러웠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부끄러워했다. 갖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 감정의 기복이 많이 줄어들었고 오히려 감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요즘에는 전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당장 전셋집을 구할 형편도 안되고, 더 돈을 잘 벌 수 있는 길이 있고, 새 옷을 사는 것도 아니지만, 이 정도면 됐다고 느낀다. 지금 내 모습을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었다. 하고 싶은걸 못한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분노와 절망감이 없으니 생활이 많이 단조로워졌고, 평화로워졌다.

두 번째는 내 탓을 많이 안 하게 됐다. 탓할 질병을 진단받았으니,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내 질병을 탓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나약해서도 아니고, 내가 못나서도 아닌 내 질병을 탓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든 것도, 밤에 잠들기 힘든 것도, 활기차게 사회생활을 잘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내 질병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세 번째는 가위에 안 눌린다. 항상 자면서 매일같이 의식은 있는 채로 온몸이 경직되는 현상이 반복되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수면 유도제를 먹고 취침을 하니까 그렇겠지만. 나는 한창 잠에 드는 게 무서웠다. 자면서 꾸는 생생한 꿈들이 무서웠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깨어있을 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반면에 꿈은 점점 더 현실같이 바뀌었다. 최고조로 달했을 땐 꿈에서 냄새도 맡고, 온도나 촉감도 느낄 수 있었다. 일상도 악몽 같았기 때문에 잠들기 전에 깨어나질 않길 바라며 울며 잠들었고 다시 깨어났음을 자책하며 울며 일어났다. 요즘은 그런 일이 드물어졌다.


네 번째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우울증이 극에 달한 학부시절에 공부를 거의 못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진 않았는데, 공부마저 못하면 나 자신을 너무 쓸모없게 여길 것 같아서 꾸역꾸역 해냈다. 나는 그래서 학과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공부를 해야만 하는 회사에 입사하고, 매일마다 일정량의 책을 읽고 공부를 해가야 하는데, 그걸 이젠 할 수 있다. 글도 읽을 수 있고, 읽은걸 기억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가 즐거운 것은 아니다. 공부는 항상 하기 싫다.) 이제 더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번 주에 병원에 내원을 했는데, 원장님이 표정이 많이 편안해 보인다고 하셨다. 진짜로 많이 편안해졌다. 힘을 안내도 괜찮은 날들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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