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우울증 환자야.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연애

by 박모씨

남자 친구에게 내가 우울증 환자임을 알렸다. 큰 고민은 없었다.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랑 헤어지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 내 질병이 버거웠나 보다. 하고 생각하면 되는 일이고, 나랑 계속 만나겠다고 한다면 그래도 내가 좋구나.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른 거 보다 내가 남자 친구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얼른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와 사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곧 완치될 거라고 믿었다. 일상생활하는데 힘이 났고,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나 내 증세는 완화되었다 악화되길 반복했고, 나는 아직도 항우울제와 진정제를 먹는다.

나는 그래서 사귄 지 8개월 만에 내가 우울증 환자임을 고백했다. 어떻게 말할까 하다가 그냥 내가 여태 적었던 브런치의 글들을 보여줬다. 입을 떼기는 많이 힘들 거 같았다. 남자 친구는 적잖이 놀랐다.


내가 정신과에 내원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가 우울증이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당황스럽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윽고 그는 '네가 잘못한 건 아니니까 괜찮다. 그렇지만 걱정이 된다.' 고 했다. 그가 나를 받아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많이 좋아하는데,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었다.


내가 그에게 우울증 환자임을 밝히고 나서 여러 가지를 노력했다. 그중에서도 내 감정을 그에게 이해시키지 않으려고 가장 많이 노력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울증을 치료받으면서 든 생각이다. 남들에게 내 생각을 이해시키지 말자. 다른 사람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어느 날 부모님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외가 식구들이 아빠를 싫어해서 나도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외삼촌이며 이모며 전부 우리 아빠를 싫어했다. 처자식을 때리고 매일매일 술만 마셨으니까. 그 사람들은 아빠를 똑 닮아 예쁜 구석이 덜 한 나와 언니도 싫어했다.


그러다 남자 친구가 이야기했다.

엄마는 호강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 네가 호강시켜 드리면 되지.

나는 저 말을 듣고 배신감을 느꼈다. 내 질병의 주요 원인이 가족임을 알고도 호강을 시켜주고 싶지 않느냐고 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서 이해도가 부족한 걸까. 날 좀 더 생각해주지 않는 걸까. 싶었다. 세상에 날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구나 싶어 헛헛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간 남자 친구에게 나는 말했다. '나는 나를 호강시켜주고 싶어. 다른 사람은 호강시켜 주고 싶지 않아.'라고 했다. 남자 친구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세상 어느 그 누구도 나처럼 살아보지 못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내가 나에 대해서 다 알아달라고, 내 감정을 느껴달라고 남자 친구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헛헛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다가 이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불안하고 불행한 감정을 남자 친구는 전혀 느낄 필요가 없는데. 나일 필요가 없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행복하면 좋겠는데. 나처럼 슬픈 걸 알아주길 바랐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지만, 이로 인해 감정이 태도가 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내 우울한 감정으로 다른 사람을 휘두르지 않게 조심하고 있다. 어쩌면 외로운 길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과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우울증 환자인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일지도 모른다.


내 우울을 무기 삼아 남자 친구에게 휘두르지 말 것.


그 이후로도 슬픈 일이 많았다. 견디지 못할 거 같은 밤이 찾아왔고, 깨어나고 싶지 않은 낮이 반복됐다.

남자 친구가 날 덜 사랑하는 거 같아 섭섭한 날도 있었다. 다투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으려고, 남자 친구를 탓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우울한 건 우울하다고 느끼는 나 때문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날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거고, 그 와중에도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남자 친구랑 만난 지도 일 년이 됐다. 아픈 나인데도 시랑 해주는 남자 친구가 대단하다. 나는 나 같은 사람이면 못 견딜 거 같은데, 남자 친구는 사랑을 주고 있다. 나는 그런 이 사람이 좋다.


내가 펑펑 우는 날에도 왜 우느냐고, 울지 말라고 하지 않고 내가 다 우는 걸 기다려주는 이 사람이 좋다. 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꽃을 선물해주는 이 사람이 좋다.


남자 친구는 앞으로도 같이 행복하자고 했다. 서로를 더욱 깊이 알아가더라도, 나도 나를 온전히 투영하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나는 우울증 환자고, 사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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