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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씨 Nov 19. 2021

감은 네모나다.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과거

나에겐 이맘때 나타나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달짝지근한 감이 시장에 나올 때쯤이면 사지도 않을 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감이 네모난지 확인한다. '감이 네모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세히 보면 네 쪽의 과육이 합쳐져서 하나의 과일이 되는 감은 정말 희한하게도 네모나게 생겼다. 씨가 없는 반시도 네모나게 생겼고, 뾰족한 대봉시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면 네모난 모양을 볼 수 있다. 나는 그걸 꼭 한 번씩은 확인해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어렸을 때부터 우울증을 앓아왔다. 내가 처음 죽고 싶었던 것은 초등학교 3학년 여름날, 집에 돌아오는 하굣길이었다. 나는 집에 가기가 싫었고, 한여름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루드베키아 옆의 울타리에 목을 걸어버리면 죽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물론 나 자신의 문제가 가장 크겠지만, 그 어린 나이에 내 주변에 있었던 어른들의 영향도 적지는 않았다.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했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가난한 우리 집 사정 상 내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활동은 적었고 크레파스와 물감을 이용한 그림 그리기 정도였다. 그 마저도 12색 물감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야 했다. 바깥에서 하는 모든 활동에는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나는 그림과 책으로 상상을 해야만 했다. 예쁜 꽃과 나무가 있는 산도 상상했고, 언젠가 티브이에서 본 외국 풍경도 상상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던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을 지나오면서 손을 놓았다. 그리고 잘한다 못한다를 왈가왈부할 수 없는 독서에 매진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계기가 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미술 시간에는 담임 선생님이 아닌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런데 그 시간에 그림을 그리면 항상 혼이 났고, 내 그림을 들고 이렇게 그리면 안 된다며 본보기로 삼으셨다.


여름 방학을 지내고 와서 있었던 미술시간이었다. 여름방학 때 무엇을 했는지 그려보라고 하셨다. 나는 아빠가 날 때리는 걸 피해서 엄마랑 같이 칠월칠석에 절에 다녀왔다. 절 앞에는 개울가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발을 담그고 놀았다. 나는 개울가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렸다. 개울의 물은 투명했기 때문에 물아래는 색칠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속의 내 발은 더 커 보였으니까 더 크게 그렸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 크게 혼내셨다. 내가 색칠하기가 싫어서 물속을 비워뒀다고 생각하셨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고 하셨고, 나는 투명했던 물을 하늘색으로 칠했다. 물속에서 커 보였던 내 발도 괴물 같다며 하늘색으로 덮어버릴 것을 요구하셨다. 어른이니까, 나는 선생님 말을 들었다.


추석 명절을 쇠고 온 다음에 미술 시간에 추석 때 무엇을 했는지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셨다. 나는 우리 집 차례상을 그렸다. 맛있고 예쁜 과일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이어서 나는 도화지 가득 먹을 걸 그렸다. 그런데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감을 네모나게 그린 것이었다. 왜 감이 네모나냐고 물어보신 선생님께 나는 '감이 네모였어요.'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기가 차셨나 보다. 어떻게 감이 네모일 수 있느냐고 동그랗게 고쳐라고 했다. '얘들아. 감은 동그랗단다. 얘처럼 네모로 그리면 안 되지.'라고 말하셨다. 나는 순식간에 비웃음거리가 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온 다음 주, 무엇을 했는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밤에 동네에 있던 크리스마스트리를 봤던 풍경을 그렸다. 트리는 반짝반짝 빛나게 그리고, 밤하늘에는 달과 별과 구름을 그렸다. 이번 문제는 내가 밤하늘에 구름을 하얗게 그렸기 때문에 발생했다. 어떻게 밤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다닐 수 있느냐고, 선생님은 빨리 검은색으로 칠하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구름이 떠있었던 하늘을 까맣게 만들었다.


엄마에게 가서 말했다. 감을 네모나게 그렸다고 혼이 났다고 했다. 엄마는 '감은 동그랗잖아. 왜 네모로 그렸어?' 하고 물어보셨다. 나는 감이 네모나게 생겼다고 말했다. 엄마도 이해할 수 없는 눈치였다. 밤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그렸을 때도 이야기했다. 하얗게 구름을 그렸더니 혼났다고 했다. 엄마는 '밤하늘은 깜깜한데 어떻게 구름이 보이니?'라고 했다.


일련의 사건이 있고 나서부터 나는 그림 그리는 것에 의기소침해졌다. 나는 내가 본 대로 그린 것뿐인데, 혼이 났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고 칭찬받고 싶었다. 예쁨 받고 싶었고 눈에 띄고 싶었다. 자꾸 나쁜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일을 하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도화지를 찾지 않았다.


어렸을 때 겪은 이 찰나의 기억들은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친구들과 놀러 간 계곡에서도, 퇴근 후 저녁에 하는 산책길에서도 생각이 난다. 맑은 계곡물은 하늘색이 아니라 투명했고, 밤하늘에도 구름은 유유히 떠다니고 있는 걸 보면서 나는 틀리지 않았다 생각한다. 그중 가장 심각한 건 감이다. 감을 볼 때마다, 감을 먹을 때마다 나는 그때 날 보고 웃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올랐다. 마냥 부끄럽고 화가 났던 기억들이었다.


우울증 약물치료 3년 차, 많이 나아진 지금에서야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얼마 전에 장을 보러 들른 마트에서 집어 든 감을 보고 '그때 걔네들은 아직도 감이 동그랗다고 생각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애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네모난 감을 꼭 보여줘야겠다고, 보면 신기해하려나 싶었다.


얼마 전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뭐 먹을 거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감을 조금 사 왔다고 하셨다. '엄마 감 자세히 보면 조금 네모나지 않아?'라고 물어봤더니 '그러고 보니 그렇네' 하셨다. 엄마는 당연하게도 15년도 더 전에 나에게 감이 동그랗다고 했던걸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를 탓하진 않았다. '어떻게 과일이 네모날 수 있을까 신기하지 않아?'라고 하니 신기하다고, 본인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도 아직도 신기한 일이 있다니 신기하다고 하셨다. 나는 깔깔 웃으며 전화를 내려놓았다.


만약 다시 그때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감을 네모나게 그릴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네모니까. 다만 달라질 것이 있다면 내가 믿는 것에 대해 그 누가 무어라 해도 흔들리지 않고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생겼다는 점이다. 선생님이 나를 다시 혼내더라도 '그래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그렇지만 나는 달라요.'라고 말할 용기가 삶을 시작한 지 30여 년이 지나서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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