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모씨 Dec 17. 2021

만 27세의 육아일기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치료일지

내가 어렸을 때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게임이 유행했다. 게임 플레이어는 아빠 역할을 맡게 되어 그에게 입양된 딸을 키우는 게임이었다. 딸에게 교육도 시키고, 여행도 보내주고, 일도 시키면서 각종 능력치를 올려 딸의 창창한 장래를 만들어가는 게임이었다. 교육을 많이 받고 좋은 능력치를 많이 올리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고, 매력도를 많이 올리면 왕자님과 결혼할 수 있었다. 나는 한동안 이 게임에 푹 빠졌다.


예쁜 의상을 입은 '게임 속 내 딸'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교육을 받고 각종 능력치가 올라가면 멋진 직업과 멋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해 줬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좋은 교육과 훈육을 받으면서 능력치를 키우지 못했다. '국가에서 정해둔 중등교육'을 마치고 나서 나는 곧장 재화를 벌기 위한 전선에 투입되었다. 밥 한 끼 먹고사는 데 급급했던 유년시절 부모님은 내 교육과 양육에 큰 신경을 써주시지 못했다.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힘이 없는 나를 올바르게 양육해주는 것은 부모님의 의무였다. 엄마도 아빠도 부모의 역할이 처음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인 처음인 나에게 해줬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면 응당 그들이 했어야 하는 일들이었다. 프린세스 메이커의 아빠처럼 세상을 헤쳐나갈 교육을 시켜주고, 좋은 능력치를 키워주고,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경험을 만들어줬어야 했다. 어른이었던 그 사람들이 해주지 못한 것을 갓 어른이 된 내가 나에게 해주기는 더 어려웠다.


세상에는 부모님과 행복하고 유복하게 자라난 친구들이 많았고, 유복하지 않더라도 부모님의 사랑과 걱정을 받으며 자라난 친구도 많았다. 단단한 콘크리트 위를 걸어가는 친구들에 비해 내 발은 진창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능력치를 키우기 힘들고, 앞서 내가 겪었던 구렁텅이 같은 과거를 잊을 수 없었다. 절망스러웠다.


대학을 다니면서 내 우울증은 더 심해져 갔고, 내가 처음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부풀어 터졌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우울증이 찾아왔다. 매일 아침 숨을 쉬며 일어났다는 것에 절망했고 매일 저녁 이번에는 꼭 숨통이 끊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들었다. 누워서 천장을 쳐다보는 것이 내 하루 일과였다.


모든 것을 저주하면서 살아가다가 병원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물론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이나 약물에 도움을 받긴 했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가장 크게 변한 건 내 마음가짐이었다. 잘못 자고 일어나면 목이나 어깨가 아프듯이, 나는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 시간을 겪고 지금의 아픈 내가 되었을 뿐이었다. 이제 나는 나 혼자서 돈을 벌고 생활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삶은 이제 너무 피곤했다. 다 놓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삶을 흘러가는 대로 조금씩 놓아보기 시작했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놓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놓았다. 나는 아주 미숙한 사람이고 완성되지 않은 사람임을 인정했다. 그제야 나는 엄마 아빠의 하룻밤 실수로 인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나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키우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직장을 구했고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고, 손을 놓았던 전공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그 뒤부터는 배움의 연속이었다. 돈을 모으고 세금을 내는 방법도 배웠고, 꽃꽂이하는 법도 배웠다. 운전을 하는 방법도 배웠다. 외국어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항상 쓰레기 더미 위에서 지내다가 청소하는 법도 배웠고, 나 자신이 예뻐 보이도록 머리를 매만지는 법도 배웠다.


세상을 30년 정도 살았지만 나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았다. 아니,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중 제일 모자란 부분은 나에게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은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배워야 했다. 아직까지 이게 올바른 방법이진 모르겠지만, 적당히 잘 해내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아직 모르는 게 많고 미숙한 것이 많은 만 27세, 나는 나를 육아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먼 가족보다 가까운 세븐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