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7할의 삶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모씨 Apr 24. 2024

하루 하나, 착한 일

어두컴컴하게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나는 안국역에서 강남까지 3호선 지하철을 탔다. 물기를 머금은 흙냄새가 지하철 차량 안까지 스며들어 모두가 축 가라앉아 있었다. 두세 정거장 갔을까,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한 분이 탑승했다. 노약좌석까지 가기 힘들어 보이는 백발의 노인은 어쩔 줄 몰라하며 임산부석에 앉았다. 그 뒤로 할아버지는 가는귀가 약해지셨는지, 연신 지하철의 스크린을 훔쳐보셨다. 한강을 건너자, 더욱 불안한 듯 기둥을 붙잡고 일어서셔서 연신 스크린을 훑어보셨다.


어디까지 가시는 걸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내렸다. 솔직히 다른 역에서 내리셨다면 모른 척하고 지나갔을 것 같다. 같은 역에 내린 나는 할아버지께 여쭤봤다.


"어르신, 어디까지 가세요? 제가 도와드려도 괜찮을까요?"


"아가씨, 7호선 타고 내방역으로 가야 되는데, 알아요?"


"네, 저랑 같이 가요."


내가 내민 손을 할아버지는 꼭 붙잡으셨다. 날이 쌀쌀했는지 손은 조금 차가웠고 세월을 맞아 두꺼운 듯, 하지만 수분이 빠져 얇은 듯했다.


할아버지는 내심 미안하셨는지 가시는 내내 아가씨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거 맞냐고 확인하셨다. 나는 터미널에 내려서 상가로 가야 했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손을 잡고 걸었다. 에스컬레이터가 편하세요? 엘리베이터 탈까요? 물어보며 할아버지 손을 잡고 같이 걸었다.


할아버지의 나이는 여든여섯, 내방역에는 아는 사람이 있다고 만나러 가신다고 하셨다. 돌아오실 때는 탈 차가 있다고 갈 때만 지하철을 타면 된다고 하셨다. 종종걸음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7호선 플랫폼에 들어서서 말씀드렸다.


"3분 뒤에 온대요. 이거 타고 한 개만 가면 돼요. 한 정거장만 가시고 만나실 분한테 전화 꼭 하세요."


할아버지는 정말 고맙다고, 조심히 가라고 해주셨다.

남자친구의 손 말고 다른 사람 손을 잡은 게 오랜만이어서 그런가, 그 서늘한 감촉이 하루종일 계속 따라왔다.


터미널 상가로 급하게 가서 꽃시장에 들렀다. 바자회에 내보낼 꽃을 조금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만들어둔 꽃바구니들을 박스에 싣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3층에 멈춰 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어린이집 가방을 멘 남매가 서있었다.

아이들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지만 내 눈치만 실컷 보고 타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랑 같이 어린이집 가니? 엄마 기다리고 있어?"

하고 물어봤다.


5살쯤 된 큰아이가 대답하길

"아니에요."


설마 요 쪼그만 애들끼리 어린이집에 가는 거야?


"아빠랑 같이 갈 거예요."


다행이다. 그리고 양갈래의 대담한 아이가 귀여웠다. 3층이니까, 조금 기다려줘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그러면 이모가 조금 기다릴게. 같이 가자."

하고 조금 지나자, 종량제 봉투를 양손에 네 개나 들고 아이들 아버지가 뛰어오셨다.


"감사합니다. 와 꽃이네! 참 예쁘다. 그렇지"


큰 아이는 연신 꽃들을 쳐다봤다. 1층에 내려 아빠가 쓰레기를 버릴 때까지 내 꽃을 보고 있길래 아이가 들고 갈 수 있는 주먹만 한 작은 꽃바구니를 들고 갔다.


"이거 들고 어린이집 갈까? 선생님께 드리면 좋아하실 거야. 꽃은 원래 선물할 때 제일 예쁘거든. 원래는 이모가 이 꽃바구니를 팔아서 배가 고픈데 밥을 못 먹는 친구들한테 밥 사주려고 만든 거예요."


하니 쭈뼛쭈뼛 아빠의 눈치를 봤다.


"애기들 이거 들고 어린이집 가도 될까요? 바자회에 내 보낼 거였어서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괜찮을까요?"

하니 아버지는 감사합니다. 얘들아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지, 하셨다.


혹시나 누가 가지고 싶다고 싸울까 싶어 예쁘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면 더 좋아할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회사로 왔다.


바자회가 다 끝나고, 짐을 정리한 뒤 천막과 의자 등을 정리하려고 짐을 들고 내려가고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는 찰나, 길을 건너려던 고양이가 차에 부딪혔다.


둔탁하지만 명확하게 큰 소리와 함께 고양이는 튕겨나갔다.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차들이 연이어 지나갔다.


충격도 잠시, 아직 움직일 수 있었는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고양이는 길가에 세워진 덤프트럭 밑으로 들어갔다.


어쩌냐고 모두가 발을 동동 굴렸고, 나는 비닐장갑을 하나 끼고 천막을 고정했던 봉을 들고 덤프트럭 가까이 다가갔다. 의식은 있어 보였지만, 플래시를 비춰도 동공은 좁혀지지 않았다. 많이 아프겠구나, 잠깐만 기다려하고 봉을 넣어 밖으로 나오도록 했다. 앞다리만 겨우 움직였던 고양이는 살금살금 기어 나왔고, 나는 박스 하나를 비워 그 친구를 넣었다.


"저는 동물병원으로 갈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제가 잘 보내고 올게요."


그렇게 나는 그 아이를 무지개별로 보냈다. 수의사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처치실로 들어가서 카테터를 잡은 고양이에게 말했다. 다음번엔 좀 더 행복하려고 그런가 봐. 하고. 고양이 알레르기가 심한 나는, 병원문을 나서서야 눈물인지 콧물인지, 퐁퐁 샘솟는 걸 깨달았다.


이 세 가지 일들이 일주일 사이에 연달아 일어났다.



나의 우울함에 대한 원인을 찾으려고 애썼던 적이 있었다. 내가 잘못한 건지, 다른 사람들이 잘못한 건지, 내가 처한 환경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건지,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걸까, 무엇을 탓해야 하는 걸까 계속 생각했다.


결론은 그거였다. 내가 처한 환경과 나의 생각, 나의 어려움, 나의 슬픔, 그걸 이해해주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해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은 나를 평가하는 것만 같았다. 부족한 점을 찾아내서 개선해야 한다고 했고, 나는 그 부족한 점에 대해서 너무 비참해했다. 나는 해결하고 싶은 것이 아닌데, 보듬어지고 싶었을 뿐인데, 무조건적인 사랑과 응원을 받고 싶었지만, 그런 걸 받기에는 나는 너무 초라했다.


깊고 어두운 나의 우울함이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나를 진정 가치 있게 여겨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다들 날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내가 살아있어서 얻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더 이상 살면서 경험하고 싶은 것이 없는데, 내가 살아있어서 얻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래서 나는 주변의 모든 것들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려 노력했다. 내가 곤란할 때 도와줬던 공항 직원에게 칭찬의 편지를 썼고, 누군가의 전화를 받을 때는 좋은 하루를 보내시라고 말씀드렸다. 나 같은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대가 없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나보다 나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활한 인간관계는 6:4의 비율로 주고받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서로 자기가 6을 받는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감사하는 마음이 클수록, 관계가 건강하게 지속되는 것 일터이다.


나는 친절과, 마음을 주고, 그걸 받아주는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껴야 하는 것이겠지. 모두가 나를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 서른, 성형외과 수술대에 눕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