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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재 Dec 18. 2020

말 많은 고양이와 산다는 건(2)

그 고양이가 말이 많아진 사연


나는 기존에 키우던 생물들에게 말을 자주 거는 버릇이 있었다. 뭐, 동물을 키우는 사람 치고 말 안 시켜 본 사람이 있겠냐마는. 성인이 되어 고양이를 기르기 전, 어린 시절 키웠던 금붕어나 심지어 굼벵이까지 끌어안고 말을 시켰으니 그 역사가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금붕어나 굼벵이와는 다르게 고양이는 말을 시키면 정확한 피드백이 있었다. 오늘은 그 피드백에 대해 말하려 한다.



대답하는 고양이

고양이가 반응해 줄 수 있는 가장 후한 리액션. 후추는 10번을 말을 시키면 두세 번은 대답해준다. 이 마저도 이전의 어린 시절보다는 많이 대답해 주는 것이니 집사의 입장으로선 감사히 받아야 한다. 물론 고양이의 대답을 이끌어내는 좋은 수단도 있긴 한데, 바로 간식이다. 간식을 들고 후추에게 말을 시키면 대부분 100%에 달하는 반응을 이끌어 내긴 하지만 단점은 소통의 느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 이렇지 않을까.


집사 : 후추야!

후추 : 간식!

집사 : 먹고 싶었어요~?

후추 : 간식 내놔!

집사 : 어구 그랬어~

후추 : 내놔!


여기에 고양이의 말에 짜증이 더 섞였으면 섞였지, 더 부드러울 일은 없을 것이라 본다. 먹을 걸 눈 앞에 두고 주진 않고 애만 태우고 있으니 소통이라기 보단 일방적인 애원과 일방적인 소통의 충돌이다. 이런 억지로 만드는 소통을 제외하곤 고양이가 대답을 해주는 경우는 아주 기분이 좋거나, 마침 아이가 애정을 바라는 순간과 내가 애정을 주려는 순간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을 때뿐이다.



눈 마주치기

후추는 반응이 후한 편이다. 대부분 나의 부름이나 말에 눈을 꼬박꼬박 마주쳐 주는 편인데, 대답하긴 귀찮지만 너의 말을 듣고 있긴 하다 정도의 표시이다. 내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눈을 점점 피하기는 하지만, 틈틈이 눈을 마주쳐 주는 것으로 내 말을 듣고 있다는 표현을 정확히 해준다. 대답을 해주는 것에 비해 새침하긴 하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표현임에는 틀림없다.



꼬리 흔들기

듣고는 있지만 앞의 두 경우에 비해 반응이 아주 미약하다. 고양이가 아주 만족스럽게 쉬고 있는 중이거나 다른 것에 신경을 쏟고 있을 때 주로 나타난다. 시선도 영 딴 데에 있고,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느낌이지만 귀가 내 쪽으로 돌아가 있고 꼬리가 파닥파닥 거린다. 후추를 부를 때 귀가 내 쪽으로 삭 돌아가면서 고개가 약간 내 쪽으로 기우는 것이 특징인데 그 모습이 귀엽고 나른해 보이기 그지없다. 후추는 보통 낮잠을 자기 위해 자리를 잘 잡았을 때 이런 반응을 가장 많이 보인다. 앞의 두 행동에 비해 심심한 반응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집사의 말을 듣고 있다는 증거이니, 그다지 서운 해 할 이유는 없다.






잘 놀다가 자꾸 부르니까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후추


하여튼 내가 말을 이렇게 많이 시키다 보니 고양이도 자연스레 집사를 닮았는지 온갖 것들에 말을 시키기 시작했다. 단순히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관심을 받고 싶을 때뿐만이 아니라 내 옆에 잘 누워있다가도, 자기가 잘 자고 일어났을 때도, 밥을 잘 먹고 났을 때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말을 천천히 늘렸을 땐 내가 해준 것 중 부족한 게 있나 싶어 더 열심히 관찰했는데 의미 없는 야옹거림도 늘었다는 걸 깨닫고는 나와 닮아간다고 느꼈다.

후추는 또 개냥이답게 요구 사항도 많은 편이라 자기가 졸릴 때나 쉬고 싶을 때, 내 무릎 위에 올라오고 싶을 때에도 자주 말을 시킨다. 한 번은 무릎 위에 올라오려고 뛰어올랐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내 허벅지가 크게 다친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행동으로 올라오지 않고 올려달라고 찡찡거리는 법을 익혔다. 내가 집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의 대부분은 후추가 무릎 위에서 내 작업을 실컷 방해하고 자기가 만족할 만큼 쓰다듬을 받은 후에 잠자리로 이동해서 달콤한 낮잠을 잔다.

이렇듯 고양이는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람과 대화하며 집사가 그 반응을 잘 이해하고 정확한 피드백을 해줄수록 유대감이 쌓여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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