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요즘 날씨가 부쩍 춥다. 영하로 떨어지는 건 진작 다가온 일이고, 이젠 밖에서 핸드폰을 꺼내고 있는 것조차 손이 거부하는 날씨가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유독 겨울을 좋아한다. 겨울철에 내리는 눈, 코 끝에 머무르는 겨울 향기,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이불 안이 좋았다. 특히, 겨울철엔 고양이가 특히나 내 옆에 달라붙어 있다. 우리 집은 고양이를 들이고 나서부터 너무 덥거나 너무 춥지 않게 항상 온화한 온도를 유지 중인데도 가끔 창틀 사이로 넘어오는 시린 바람이 싫은지 잘 때도, 쉴 때도 내 옆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이렇듯 사람이 계절에 따라 생활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듯이, 후추도 미묘하게 달라지는데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봄의 후추는 유독 분주하다.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춥지 않아 베란다를 자주 열어놓아서인지 하루 종일 베란다에서 날아다니는 벌레를 보거나 집 안에 들어온 벌레들을 쫓아다니는 데 온 시간을 쏟는다. 이 계절만큼은 후추가 집 안보다 베란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덕분에 봄철이나 가을철엔 베란다가 고양이 놀이터로 변모하는 경우가 많았다. 베란다에 캣타워와 캣 터널, 스크래쳐 등을 잘 배치해 놓고 나면 후추의 완벽한 쉼터가 된다. 봄에 고양이가 조용하다면 조심히 베란다로 나가보라. 그러면 캣타워 위에서 만족스럽게 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철엔 늘어져 있는 고양이를 자주 볼 수 있다. 집 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발에 차이는 게 고양이일 정도로 온갖 곳에서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본다. 특히 해가 길어져 집 안까지 오래도록 햇살이 들어오면 햇살이 들어오는 그 위치를 따라서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며 누워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나른해 보이기 그지없다. 후추는 바닥에서 늘어져 있는 시간이 특히 길다. 고양이 별로 높은 곳을 좋아하는 유형, 적당히 바닥과의 떨어짐을 원하는 유형, 바닥의 생활이 익숙한 유형이 있는데 분명히 높은 곳을 선호하면서도 바닥에서 잘 자는 걸 보면 태생이 위기감이 없는 것 같다.
여름은 내가 고양이에게 유독 신경 쓰는 계절인데, 모기도 많아지는 계절인 데다가 음수량도 대폭 느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또한 후추의 경우 이중 모여서 여름을 나기에 최악일 테니, 집사인 내가 더 신경 써 줄 수밖에 없다. 실내 온도를 항상 적당히 시원하게 해 주고, 후추가 다니는 길목의 물그릇을 자주 확인하고 갈아준다. 여름은 딱 집사가 분주해지고 고양인 게을러지는 계절임이 분명하다.
가을은 어떨까? 후추의 가을은 봄과 엇비슷하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코끝에 맴돌면 잠자리들이 슬슬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후추는 봄엔 벌을 구경하는 것에 시간을 다 썼다면 이젠 잠자리다. 집이 높은 위치라 새들도 종종 다녀가는데, 고양이의 커지는 동공과 흥분한 채터링 소리는 집사 입장에선 흐뭇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가을철의 벌레를 특히나 싫어한다. 유독 봄철의 벌레들보다 징그럽고 다리가 많아서 일반 날벌레도 겁내는 나한텐 너무 높은 난이도다. 그럴 때 후추가 진가를 발휘한다. 아마 후추가 같이 살면서 해주는 역할은 벌레 잡기 아닐까. 후추가 집에서 갑자기 채터링을 하거나 어떤 곳을 응시하며 안절부절못한다면 조심스레 시선을 같이한다. 그러면 그곳에 늘, 정확히 벌레가 있다. 난 그 크기나 형태에 따라 슬금슬금 거리를 두면 고양이가 냉큼 달려가 잡는다. 그럼 나는 그 사체만 조심스럽게 처리해주면 되는 것이다. 가을은 후추와 나의 완벽한 공생관계가 드러나는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철은 후추의 애교가 특히 많아진다. 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꾸물꾸물 헤매는 여정을 다니는데, 보통 그곳이 내 옆이나 침대 속이다. 후추는 시야가 차단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이불속을 잘 파고들지 않는 편인데, 겨울철엔 취향보단 추위가 더 컸던지 이불속에서 나오질 않는다. 내가 자려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면 자기도 냉큼 올라와 나에게 이불을 들추라고 야옹거린다.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주고 이불을 들어 올리면 잠시 고개를 쭉 내밀어 둘러보고는 금세 안으로 들어와 내 다리 사이에 동그랗게 몸을 말곤 한다. 나 또한 추운 겨울철의 고양이의 높은 온도는 마치 커다란 핫팩이라도 들고 다니는 기분이라 후추의 치댐이 싫지 않다. 눈이 오는 날은 추운 베란다로 잠시 나가 눈을 한참을 구경하다가 들어오곤 하는데 차갑게 식은 몸을 나한테 부비적거릴 때엔 맘 속에 따뜻한 기운이 부드럽게 퍼지는 느낌이다. 나는 여전히 눈 오는 겨울이 좋고, 작업 내내 무릎에서 동글게 몸을 말고 내 손길을 맘껏 느끼는 이 녀석 덕분에 겨울이 더욱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