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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 구두를 단돈 3만 원에 판 사연

살 땐 금값이오 팔 땐 똥값이다

by Jane C

"더 이상 뭘 사고 싶지도 갖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깨끗이 정리하고만 싶었다."



일년살이 짐은 얼만큼 가지고 와야 할까? 우리는 트렁크 딱 5개에 넣어 왔다. 가장 큰 트렁크 한 개는 오롯이 식자재만 가지고 온 것이니 4명의 살림살이를 모두 크고 작은 4개의 가방에 담아 온 셈이다. 연살이 짐은 보통 해운으로 부쳤다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 얼마나 단출하게 꾸려온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짐의 대부분은 옷인데 내 평상복은 원피스와 티셔츠 각각 3벌씩, 반바지와 탱크톱 그리고 카디건 각각 2벌씩이 전부다. 가방으로는 에코백 하나 덜렁.


이런 내가 소싯적 패션 에디터로 세계 4대 패션쇼장을 다 누벼 보았노라고 하면 다들 거짓말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더 쉽게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 역 비슷한 노릇을 해보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명품 브랜드의 최신 상품을 가장 먼저 만나 보았고 화려한 론칭 파티에 초대되었으며 숱한 셀러브리티들을 만나보았다. 한 번은 디자이너 토리 버치가 한국 대행사를 거치지도 않고 나에게 편지와 가방을 미국에서 직접 개인적으로 보내준 적도 있었다. (아... 지금 쓰면서도 무슨 세계 최강 뻥쟁이가 된 느낌이다.)


하지만 소심하고 불안감이 높은 나에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이 직업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이 일은 생각보다 높은 예술성과 세련됨을 필요로 했는데 시골에서 공부만 하다 상경한 내게 실재 그런 능력도, 그런 척할 당돌함도 있기는 만무했다. 그래서 결혼하며 일을 그만둘 때 주변에서 다들 아쉽지 않냐 했지만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나의 대답은 'No'였다.


처음엔 각종 명품 옷과 가방, 신발들을 이고 지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다신 하지도 않을 물건들이 나보다도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날부터 하나씩 처분해 나가기 시작했다.


비싼 물건을 처분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게 된다.

'살 땐 금값이오 팔 땐 똥값이라는 것'을.


그 때는 구구스도 활성화되지 않았던 터라 당근으로 하나씩 처분해 나갔는데, 딱 2번 신은 2백만 원이 넘는 한정판 '주세페 자노티' 슈즈는 꼴랑 20만 원에, 백만 원이 넘는 '버버리' 셔츠는 3만 원, 남은 평생 신지 않을 나머지 명품 슈즈들도 모두 헐값에 처분했다. 명품을 싸게 살 수 있다니 '여기요 여기요' 손을 드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심지어 다음 물건 팔 때는 먼저 자기에게 따로 연락을 해달라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그랬다. 그 시절 당근의 호구가 바로 나였다! 하지만 그땐 나에겐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라 생각하니 아쉬운 줄도 몰랐다.


그렇게 클래식한 아이템만 단출하게 남겼다. 더 이상 뭘 사고 싶지도 갖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깨끗이 정리하고만 싶었다. 돌이켜보니 우울증이었다. 어떤 이는 과소비의 형태로 증상이 오기도 한다는데 나에게는 '욕망'의 스위치를 모조리 꺼버리는 형태로 온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강제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비워진 집을 보면 내 마음도 더 이상 산만하지 않아 좋았다. 여행을 갈 때도 아이들의 짐이 워낙 많다 보니 자동으로 내 짐부터 덜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예쁘게 단장한 사진은 별로 없었지만 짐의 노예가 되는 일 또한 없었다.

이런 습관이 지속된 덕에 여기 와서도 딱히 과소비를 하는 일은 없다. 그 흔한 치앙마이풍 원피스나 팬츠 하나 구입하지 않았다. 이제는 하나를 사면 하나는 버려야 하는 <+,->의 법칙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의 중심에서 지냈던 10년의 세월이 훈련 시킨 '좋은 안목'만은 아직도 비싼 값으로 남았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라고 혼자 조금 착각은 해봅니다만)



딱 저렇게 생긴 프라다 슈즈를 단돈 3만 원에 팔았다!


얼마 전 우연히 <보그>에서 프라다의 빈티지 슈즈가 유행이라는 기사를 보게 됐다. 딱 내가 당근에 3만 원에 팔아넘겼던 그 슈즈였다! 그동안 한 번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배알이 베베 꼬이는 듯했다. 내가 떠나보냈던 많은 명품들이 앞으로도 수없이 '빈티지'의 이름을 달고 '핫템'이 되어 돌아올 거라 생각하니 도무지 잠이 올 거 같지 않았다.


남편한테 얘기하니 역시나 해맑은 대답이 돌아온다.

"여보~새로 또 사면되죠~."

응?? (역시 너는 나의 분노 버튼)

그래! 까짓껏 사고 싶음 다시 사지 뭐! (...과연??)


이럴 땐 정신승리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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