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너무 모른다
치앙마이 생활의 가장 큰 수혜자는 뭐니 뭐니 해도 아이들이 아닐까 한다. 우선 한국에서는 매일 학원 뺑뺑이를 하느라 10시가 넘어 집에 들어왔지만 여기서는 학원에 다니질 않으니 3시 하교 이후는 자유다. 물론 자유가 아니라 자율학습을 해야 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학교 숙제만 잘 해가도 다행이다. 그러다 보니 자칫 휴대폰에만 빠질 수 있어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함께 드라마 보기. 숙제가 없는 주중이나 주말 저녁이면 함께 넷플렉스에서 드라마를 하나 정해 함께 보는데 이번에 선정한 드라마가 바로 <선재 업고 튀어>다.
작년에 나왔던 작품인데 이제야 보는 이유는 한국에 있을 때 원체 티브이를 잘 보지 않기도 했거니와 결혼 후 극심한 로맨스 알레르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간질간질한 로맨스 장면이 나오면 내 몸도 어딘가 간질간질해져 오는 것만 같고 특히 키스신이 있으면 속까지 좀 울렁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로맨스 드라마는 꺼리게 됐고 대신 추리물이나 액션, 좀비물 등을 선호하게 됐다.
내가 예전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결혼 전 나는 누구보다도 사랑이 넘쳤던 사람이다. 매번 연애 때마다 혼자 로맨스물은 다 찍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남편이 좋았던 점은 담백하고 웃겼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남편과의 연애는 애틋한 로맨스보다는 편안한 드라마나 재미진 시트콤에 가까웠다. 한 번은 화이트 데이 때 회사로 꽃바구니가 왔는데 동봉된 카드에는 '사랑한다''보고 싶다' 등의 멘트가 아닌 '니 내 맘 알제!'였다. 그 흔한 밀땅 한번 없이 결혼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 로맨스 드라마를 보는데 나도 몰래 가장 먼저 튀어나온 멘트가 '왜 저래~~'였다.
그때 알았다. 나는 더 이상 로맨스를 이해하지도, 보지도 못하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러다 뒷북으로 보게 된 드라마가 바로 <선재 업고 튀어>다. 그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주연이었던 변우석을 졸지에 톱스타로 만들었는데도 보지 않았다. 게다가 왜 변우석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왜 변우석이 잘생겼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등등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랬던 내가 드라마에 빨려 들어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고 여주인공에게 빙의되어 부러워하고 좋아한다. 물론 몇몇 키스신들은 끝내 보지 못하고 빨리 감기를 하기도 했지만 불치병이 확연히 완화된 것만은 확실하다.
여기에 일등공신은 바로 류선재 역할인 변우석! 나는 요즘 인기가 많은 이재욱이나 황인엽, 김재영 스타일보다는 공유나 이동욱, 원빈 스타일을 선호한다.(맞다. 그냥 옛날 사람 좋아하는 거다.) 변우석은 전자에 가까운 스타일로 분류했기에 방영 당시 더욱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뒤늦게 보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눈빛은 얼마나 다정하며 옷빨은 어찌나 때깔 나는지! 한 때 남편은 변우석이 입었던 프라다 데님에 무척이나 눈독을 들였는데 드라마를 보니 '프라다'여서가 아니라 그냥 치앙마이 야시장 청바지를 입어도 멋있게 보였을 거였다.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 변우석을 검색하고 자기 전에 변우석을 검색해 본다.
나는 나를 몰랐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어 갈수록 좋은 것보다는 싫은 게 많아졌다. 어쩌면 맘이 나날이 옹색해져 가는 과정이었을 텐데 나만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취향이 확실해져 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좋은 게 보인다. 예쁜 게 보인다. 오늘 아침에도 길가에 핀 꽃을 보고 몇 번이나 감탄했던지!
'절대 싫어'나 '내 취향 아니야'라는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내가 갖고 있었던 편견과 부정에 대해 찬찬히 되짚으며 맑은 안목으로 다시 보려 노력한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 순간까지 '발현'되거나 '발견'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돌이켜 보니 나는 쌍꺼풀 있는 남자를 질색팔색했고 책 안 읽는 남자는 상종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 남편은 정말 진한 쌍꺼풀이 있고 독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무협지가 끝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나를 너~~어무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