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의 미스터리 3
오늘 아침에도 눈 떠서 바로 1층 거실 창틀을 확인한다. 정확히 34마리다. 모래만큼 작은 것까지 모조리 관찰하여 추려내면 아마 그 숫자는 더 어마어마할 것임에 분명하다. 이것은 바로 죽어있는 벌레들의 숫자! 34마리는 모두 같은 종으로 딱정벌레 비슷하게 생겼는데 손톱만 한 것부터 쌀알만 한 것까지 그 크기도 다양하다.
우리 집 창틀을 부수기 위한 카미가제 특공대도 아닐진대 왜 이리 맹렬히 들어와 스스로 죽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빛 때문에 그런가 싶어 밤에 빛 하나 없이 핸드폰 손전등으로만 버텨본 적도 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자신이 죽을 때를 직감하면 혼자만의 무덤을 찾아 떠난다는 코끼리의 옛 전설처럼, 죽을 때가 되어 편안히 쉴 곳을 찾았는데 마침 다른 벌레들에게도 요람같이 포근한 곳이어서 우리 집 창틀은 녀석들은 공동묘지가 되어 버린 걸까.
처음에는 뭔지 몰라 버벅거렸고 그것이 누군가의 배설물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땐 한두 번은 우연이라 생각했다. 영역 표시는 포유류만의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3달이 지난 지금도 매일 아침 일어나면 늘 같은 곳, 대게는 부엌 개수대 옆이나 창 아래 물받이 근처에 쌀알보다도 조금 큰 까만 '똥'이 떨어져 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부엌 입구 정중앙에 매일 떡하니 놓여있는 덩어리 하나. 지금 짐작하는 바로 범인은 여기 말로는 찡쪽, 즉 하우스 게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도마뱀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마 동남아를 여행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텐데 벽이나 천장 아무 곳에나 붙어 있다 사사삭하고 빠르게 움직여 놀라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손가락 크기 하나인 녀석부터 이제 막 부화해서 손 한 마디 남짓 되는 작은 녀석까지 각색이다. 크기도 활동지도 다양한 만큼 녀석들의 '물건'을 볼 수 있는 곳도 집안 곳곳이다. 아침마다 물티슈를 들고 청소에 들어가지만 매번 좌절한다. 뭐 이런 게코 같은! 이 녀석들 개개인의 비밀 화장실을 도저히 다 알아낼 재간이 없다. 공중 화장실이라도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는 통에 얼른 2층 화장실로 갔다. 세상에! 환공포증이 있는 나는 수백 마리의 개미가 떼 지어 욕실 안으로 행군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팔에 한가득 소름이 돋는다. 밖에는 대형 나무가 휘청거릴 만큼 비가 퍼붓고 있어 개미들은 욕실 창틀 틈을 통해 집 안으로 피신하고 있는 중인가 보다. 아이가 개미 분비물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에 얼른 처리해야 한다. 남편이 액상 개미퇴치제를 쭉 짜 보지만 개미들은 보란 듯 비웃으며 그 부분만 쏙쏙 비껴간다. 영리한 놈들!! 어쩔 수 없이 단순 무식한 방법을 쓴다. 샤워기 폭격을 퍼부어 수백 마리의 개미를 수장시킨다. 다음 생에도 천국 가기는 글렀다.
새침한 아가씨처럼 벌레 수십 마리를 보거나 도마뱀 똥을 봤을 때 소리나 꽥 지르며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나는 아이의 알레르기가 올라오기 전에 막아야 하고 똥을 얼른 치우고 밥을 해야 하는 사회적 위치, 즉 애미다. 은희경 소설 <새의 선물>에 나오는 주인공 여자아이처럼 스스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송충이가 발등까지 올라오는 걸 내버려 두며 지켜보기까지는 못하겠지만 환공포증을 이겨내고 수백 마리 개미떼와 마주한다. 딱정벌레의 엔딩 맛집이 되어 버린 창틀을 닦으며 미물의 마음을 잠시 상상해 보다 이내 수십 마리 벌레를 지우개 가루 치우듯 모아 버린다.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보이지 않는 벌레들을 행여나 밟아 해칠까 봐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비질을 하던 미얀마의 스님들을 본 적이 있다. 오늘도 이런 범애주의를 실천할 길은 점점 더 요원해지고 나의 비위는 점점 더 강해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