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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는 카페 투어가 다야

근데 저는 매일 한 곳만 가요

by Jane C

치앙마이는 카페의 성지다. 태국은 고품질의 아라비카 커피 생산국인데 해발 고도가 높은 치앙마이에서 전체 66%의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2023년 아세아 리포트에 의하면 치앙마이에만 천 개가 넘는 카페가 운영되고 있다고 하니 어디나 눈만 돌리면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치앙마이 카페에 더 열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분위기. 개성 넘치거나 감성 터지는 카페들이 대부분이라 어느 각도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림이 나오니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인생샷'도 건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즐겨 가는 카페는 그런 포토제닉 한 공간과는 동떨어진, 그렇다고 세계 라테 아트 대회에서 우승한 특출 난 주인이 운영하는 곳도 아니다.

그저 동네 허름하고 조용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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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여행객이라면 한번쯤 가봤을 감성 카페들. 위로부터 아카아마 왓프라싱, 더 테라코타, SS1254372, NO.39


처음 이곳은 그저 테니스장에서 가장 가깝고 구글 평점이 높다는 이유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하게 이끌렸던 건 바로 가성비. 예쁘고 유명한 카페들의 커피 가격이 대략 80~100밧, 그리고 유명한 시그니처 커피 같은 경우는 190밧까지도 하는 것에 비해 이곳의 커피는 모두 40밧이다. 게다가 맛있기까지 하니 자주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친절한 부자父子바리스타가 있다는 것. 먼저 아버지 바리스타는 보기엔 무뚝뚝하게 보일 수 있으나 진정한 츤데레다. 한 번은 카페에서 내어 준 물(포장인데도 덥다고 꼭 물을 주신다)을 내 물통으로 옮겨 담은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내가 카페에 물통을 들고 들어가면 눈을 맞춘 후(말이 안 통하니 눈으로 물어보시는 듯) 조용히 내 물통을 받아 들고 가 얼음을 함께 넣은 시원한 물로 채워 주신다. 아들 바리스타는 또 어떤가. 가끔 락토 프리 우유가 똑 떨어지는 날이 있는데 유당 불내증이 있으면서 라테를 좋아하는 남편은 대신 오트 밀크나 아몬드 밀크 중 선택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15밧이나 더 추가해야 하는 비싼 재료임에도 그는 자신이 되려 너무 미안해하며 매번 한사코 추가금을 받지 않는다. 이런 배려가 담긴 물통과 커피잔을 건네어 받을 때는 빛바래져 가던 인류애가 다시 풀충전되는 기분이다.


나는 이런 '다정한' 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이제는 누구나 나에게 친절한 것도, 친절을 베풀 의무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친절과 배려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아주 '불편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내가 신봉하는 속담이 하나 있는데 바로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것. 이것은 진짜 경제적 여유를 말할 때도 해당되지만 '마음의 여유'에 빗댈 때도 꼭 맞는 경우가 많다. 내 마음이 지옥 같으면 다른 사람의 존재 자체도 지옥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라 배려 '따위'가 나올 턱이 없다. 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지옥이지 않은 사람 혹은 지옥에 살아도 천국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들은 무척이나 귀하고 또한 매우 위대하다.



"치앙마이는 카페 투어가 다지 뭐."

옆 테이블 한국 여행객들의 말이다. 여행객들에게는 카페 투어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할 테지만 반半만 여행객인 나에게는 오직 한군 데면 족하다.

나는 치앙마이에 와서 카페 투어를 다니지 않는다. 대신 매일 친절한 눈 맞춤으로 나의 옥시토신을 증가시켜 주는 처방약 같은 카페를 찾는다(참조 1).

참고로...


나는 카페인 과민증이 있다.

오늘도 역시 나에겐 조금 긴 밤이다. 증가된 옥시토신 때문인지 카페인 때문인지 모를.


20250421_132936.jpg 치앙마이에만 있는 오렌지 커피. 오렌지 주스와 커피가 결합된 '아샷츄' 같은 거라 생각하면 된다.




알고 보니 이곳은 그저 허름한 카페가 아니라 SNS에서 '인생 오렌지 커피'로 엄청 유명한 곳이었다. 어쩐지 그랩을 타고 굳이 이 구석진 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더라니. 이렇게 유명하고 바쁜데 친절하기까지 하다니 이건 더 고맙잖아~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책도 있는데

이 다정한 카페여, 살아남아 오래오래 해 먹으라!





(참조 1) 우리는 공막이 하얀 유일한 영장류다. 우리는 하얀 공막을 선호하거나 눈 맞춤에 의존하는 유일한 종이다..... 눈 맞춤 빈도가 증가하면서 유대와 협력적 의사소통이 촉진되어 옥시토신이 훨씬 활발히 발현되었을 것이다. 브라이언 헤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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