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이해 적당한 오해가 주는 친밀감
남편과 나는 둘 다 낯가림이 있다. (조금 내성적인 나는 그렇다 쳐도 친구도 많고 나이도 많은 남편은 대체 왜 새침한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러하다) 그래서 새로운 곳에서 친구를 사귀는 일은 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치앙마이에 와 주택에 살면서 옆집 혹은 앞집과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흐뭇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일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옆집은 사람 구경하기 어렵고 앞집은 내가 단전에서부터 용기를 끌어올려 먼저 인사를 건네어도 뚱한 표정으로 대꾸하는, 미소의 나라 태국에서 매우 보기 힘든 시니컬한 이웃이다. 물론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 따위도 전혀 없으니 나의 상상은 일찌감치 끝이 났다.
어딜 가나 외딴섬처럼 생활하던 우리에게 교류 비슷한 감정을 나누는 타인이 생겼다. 바로 테니스장에서 만난 에릭과 리디아 부부가 주인공이다. 부부가 함께 운동을 하는 데다 실력도 비슷해서 코치는 우리를 짝지어 수업을 할 때가 많다. 남편과 에릭, 나와 리디아가 각각 한 팀이 되어 한 시간 동안 함께 운동을 한다. 둘은 중국인으로 치앙마이에서 3,7살 배기 아이들을 데리고 산지 4년 차나 된다.
리디아는 매일 필라테스를 하고 주 3회 테니스를 치는 몸짱이다. 배에 복근이 선명한 것이 체지방률이 10% 이하일 것이 분명하다. 6개월 전까지는 무에타이까지 배우러 다녔다니 부지런한 자기 관리면에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 게다가 언제나 대충 아무 운동복이나 주워 입고 나가는 나와는 달리 모자부터 신발까지 '깔' 맞춰 스타일링해오는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다.
에릭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에너제틱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다. 잠시 쉬는 시간에 우리 부부는 숨 고르기도 바쁜데 혼자 이런저런 농담을 잘도 건넨다. 송크란 휴일에 중국을 가냐고 물으면 자기를 기다리는 여자들이 너무 많아 꼭 가야 한다는 대답을 1초 만에 천연덕스럽게 하고, 운동하다 숨차냐고 물으면 리디아를 사랑하는 마음에 심장이 많이 닳아 그렇다고 대답한다. 언제나 싹싹하고 싱글벙글한 에릭 덕에 함께 테니스를 치는 날은 하루 종일 힘이 나고 즐겁다.
우리 테니스장은 특히 중국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곳이라 80% 이상이 중국인 수강생이다. 3개월간 봐온 바로는 매너가 좋지 않은 중국인들이 종종 있다. 자기가 친 테니스공을 줍지 않는 수강생은 정말 흔하고 태국인 코치에게 영어 실력이 그게 뭐냐고 대놓고 꼽을 주는 수강생도 왕왕 있다. 그리고 둘 모두에 해당되는 '최진상' 중국인 수강생 또한 있다. 물론 에릭과 리디아 부부는 이 두 가지 진상 사례에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 오히려 얼마 전 코치님 생일이라고 선물을 준비해 오는 살가운 수강생이다.
오늘도 함께 짝지어 운동을 마치고 난 후 헤어지기 전에 에릭이 말한다.
"내가 여기를 자주 오는 이유는 테니스를 좋아해서 이지만 사실은 너희들이 정말 좋기 때문이야."
역시 테니스장 최고의 플러팅남 다운 아름다운 멘트다. 우리의 대화는 주로 여기서 영어 수업도 하고 있는 에릭의 유창한 영어와 나의 짧은 영어로 이뤄진다. 그리고 나의 짧은 영어는 리디아의 조금 더 짧은 영어로 이어지고 할 줄 아는 언어는 '경상어'가 다인 남편의 미소로 끝이 난다. 벽이 많은 우리들의 대화는 대부분 쉽고 착한 말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비하나 멸시, 악담 등은 다소 어렵고 매우 불필요한 영어 표현이기 때문이다. 플러팅남 에릭은 이 사람 저 사람 모두를 과장되게 치켜세우고 나는 리디아의 복근에 엄지 척을 날리며 리디아는 남편의 동안을 칭찬한다. 나에게 에릭은 유쾌한 사람, 리디아는 진득한 사람처럼 '이해'되듯이 그들에게 나는 잘 들어주는 사람, 남편은 다만 미소 짓는 푸근한 사람 정도로 '오해'되고 있지 않을까. 이렇듯 너른 '이해'와 적당한 '오해'로 적정 선을 지키며 유지되는 우리들의 관계는 그래서 더 평온하고 기분 좋게 친밀하다. 언어가 미처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선 그럭저럭 얼기설기 엮어진 따뜻한 마음이 돋아나고 있다.
얼마 전 에릭이 카페를 오픈한다고 하길래 가겠다고 했더니 되려 놀라며 "진짜?"하고 되묻는다. 마침 지난주에 'squid game'얘기를 하길래 센스 있게 "우린 깐부잖아"라고 대답하고 싶은데 탁 막힌다.
깐부인데 깐부라 말할 수 없고, 깐부를 말하기 위해선 장황한 해설이 이어져야 하는
우리 둘 사이의 언어가 저기 바람 빠진 풍선마냥 힘없이 휘휘 허공을 휘젓고 다닌다.
이럴 땐 그냥 어진 미소로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