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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랄라 Feb 06. 2021

7. 말 못하는 학부모는 웁니다

잡초처럼 뿌리내린 인종차별과 대면하기

3시 53분. 평소 같으면 4시 정각에 맞춰 도착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닫힌 교문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담임 선생님한테 이야기할 내용들을 곱씹었다. 어제 오후부터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들었다 놓기를 수만번. 아이가 얼마나 놀라고 아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다 못해 아렸고, 손이 떨리도록 화가 치밀었다.


'이것들, 가만 안 둘거야.'




초등학교 입학 후 두달 여. 아들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여전히 단어 몇개에 불과하지만 나름 학교 생활에 잘 적응 중이다. 가장 걱정했던 프랑스어 수업은 ABCD를 쓰고 읽는 것부터 배우는 교과 과정 덕분에 오히려 프랑스어를 기초부터 제대로 배우는 기회가 됐다.


매일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그날 배운 것들을 바로 들려준다. 선생님이 설명하던 모습을 그대로 흉내내며 조잘대는데 얼핏 들어도 그럴싸한 발음들을 제법 만들어낸다. 알파벳 하나 써본 적 없는 아들의 노트에 매일 필기체 알파벳들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학교생활에 대한 아들의 두려움도 조금씩 지워지고 있다.


물론 친구들과 소통은 또 다른 영역이다. 한창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아들로선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그나마 8살 아이들이 뛰어노는 데엔 여전히 "슈욱~", "피융피융" 하는 의성어, 의태어가 유효하단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며칠 전 하교길에는 반에서 가장 친한 친구와 열심히 뛰다가 친구가 넘어졌다. 그러자 친구에게 다가가더니 "싸바?(괜찮아?)"하며 벗겨진 신발을 신겨주는 아들의 모습에 친구 엄마가 아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게 뭐라고. 비록 짧은 한두마디지만 프랑스어를 이렇게 내뱉는 것도, 친구에게 마음을 전할 줄 아는 모습도 대견하고 감사해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


그렇게 몸으로 말하고 눈치로 따라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아들에게 어제 오후 일이 일어났다.


점심식사 후 쉬는 시간에 공터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아들이 서 있던 곳에 외투가 떨어져 있던 게 화근이었다. 떨어진 외투를 집어 든 아들은 자연스럽게 주인을 찾아보려고 두리번거렸단다. 그런데 그 순간, 몇몇 아이들이 뛰어와서는 다짜고짜 아들을 때린 것이다.


상대의 얼굴도 확인할 틈도 없었단다. 무릎과 발로 가슴 부위를 수차례 맞는 바람에 숨이 막혔다고. 갑자기 일어난 당황스런 상황과 통증도 충격이었지만 많은 아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을 향해 "시누아(중국인)", "꺼져"라고 했던 말은 아들의 몸보다 깊은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이곳에 온지 반년도 되지 않은 우리가 "봉쥬흐", "멕씨" 다음으로 먼저 배운 단어가 있다면 바로 '시누아'다. 지저분하고 못 사는 나라라는 중국에 대한 차별적이고도 비하적 발언을 어쩜 그렇게 스스름없이 하는지 놀라울 정도다. 유럽의 인종차별에 대해 어느 정도 각오는 었지만 동양인에게 꽂히는 인종 차별적 시선은 생각보다 따갑고 틈틈이 자리한 잡초처럼 끝없이 자라나온다. 트램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시누아" 소리가 심심치 않게 우리 곁을 스친다.


여름 동안 아들이 다녔던 서머스쿨에서도 비슷했다. 엄마아빠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머스쿨에서 하루를 보내던 아들은 어느날 서머스쿨을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힘들어서 그러려니 하고 몇차례 다독였는데 결국 아들의 입에서는 "시누아"라는 단어가 나왔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자꾸 시누아라고 놀린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기 전 아들에게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며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거든 그 말을 한 사람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라고, 너의 잘못 혹은 실수가 아닌 것에 대해 상대가 하는 행동은 의미가 없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엄마가 늘어놓는 뻔한 이론일 뿐. 길거리를 지나가다 들어도 기분 나쁘고 불쾌한 시선이건만 하루 종일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과 한 공간에 있어야 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속이 상했을까.


성질같아선 쫓아가서 뭐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관리하느냐고 삿대질이라도 하며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맘만 앞세워 될 일이 아니었다. 첫째, 그마저도 무식한 시누아로 보일 수 있고 둘째, 내가 감당하면 끝나는 나의 일이 아닌 아이에 대한 일이었으며 셋째, 결정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빌어먹을)


아이를 보내놓고 끙끙대다가 결국 서머스쿨에 이메일을 보냈다. 메일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누군가에게는 끔찍할 수 있는 이런 일이 당연히 관리 보호돼야 할 당신들의 기관 내에서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 그들의 행동은 단순한 무지에 의함이 아닌 인종차별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했다. 기관에서의 단호한 조치를 통해 재발되지 않기를, 그래서 아이들에게 안전한 곳이 되기를 강력히 건의한다.


흥분된 내 마음과는 달리 너무나 이성적으로 다듬어진 이메일을 다시 읽고 있자니 문득 새삼 이국에서의 삶이 참 녹록치 않단 생각에 울컥했다. 


한시간 쯤 지났을까. 서머스쿨에서는 해당 일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면서 사과와 함께 이미 해당 학생들의 부모에게는 경고를 보냈다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을 해왔다. 내 눈길을 끈 건 "이 일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알면서도 피해 학생 부모한테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니. 이 무슨 상황인지. 혈압이 다시 솟구치는 듯했다. 결국 난 또다시 '유감'을 재발송했다.


종일 끙끙대며 시계만 바라보다가 평소보다 서둘러 아들을 데리러 갔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나는 혼자 한 문장을 수없이 되뇌였다. 


바깥 놀이 공간에서 놀고 있다가 나를 보자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아들.

 

"현아, 너 놀렸다는 아이도 혹시 여기 있어?" 

공교롭게도 아들이 가리킨 아이는 바로 내 앞에 서 있는 작은 남자 아이였다.


"이 아이 중국인 아니야. 다시는 그렇게 부르지마."  

수없이 혼자 중얼대던 말을 나는 그 아이에게 내뱉었다. 


그랬다. 그렇게 종일 끙끙댔던 내가 그 아이에게 뱉은 문장은 고작 그 한 마디였다. 길게 말할 능력도 안 됐고 길어질수록 뭉그러질 내 발음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까봐 차떼고 포떼고 보니 남은 건 그 한마디였다. 뒤돌아서면서부터 다시 분했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 뿐이었다.




다음날, 담임 선생님은 급식을 했던 학생들 사진 목록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해당 아이들(한 학년 위인 형들이었다)을 찾아냈다. 아들 말에 따르면 해당 학생들은 그날 종일 담임과 급식 담당 선생님들로부터 훈계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사과한 뒤 접근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고. 


"그래서 기분은 좀 나아졌어?"


"어. 괜찮아 엄마. 그 형들 엄청 혼났으니까 이제 안 그러겠지."


다행히도 이런 일에 즉각 단호하게 대처해주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마음은 한결 놓였다. 벙어리인 내가 못한 말들이 부디 그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됐기를 바라며. 


하지만 이미 아이가 받은 상처와 충격을 씻어내는 데에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이번 일 뿐 아니라 이곳에 사는 동안 언제든 아이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단 생각이 들자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졌다. 이 곳에 깊게 뿌리내린 인종차별주의자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바로 잡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는 더 많은 한계와 마주하게 된다는데 하물며 물도 땅도 설고 심지어 말까지 설은 이 곳에서 부모로 살아가야한다니 두럽고 겁나는 걸 숨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녹슬어 버린 머리를 부여잡고 밤마다 프랑스어 단어를 꾸역꾸역 집어넣어보는 것 말고는 딱히 보이지 않는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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