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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body Dec 07. 2020

태국에서 입을 비키니를 인천 공항에 두고 떠난 날

3년 전 일이다. 열심히 고생한 나를 위해 한국에서는 근처에 가 본 적도 없고 가 볼 생각도 안 했던 하얏트 호텔을 큰 마음먹고 예약했다. 강아지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있듯이, 휴가를 누구보다 잘 보내기 위해 호텔에서 입을 비키니 2벌을 인터넷 면세점에서 사면서 향수, 선글라스까지 알차게 담았다.




방콕행 비행기 탑승구는 10번. 탑승구도 10번, 뭔가 예감이 좋고, 깔끔하게 느껴지는 숫자다. 오랜만에 얻은 자유를 만끽하며 여유롭게 면세품을 모두 찾아 일찍 탑승구 주변에 가서 앉아 있었다. 휴가 전에 일을 다 끝내느라 무리를 해서 그런지 잠깐 사이에 노래를 들으며 깜빡 졸았다. 그러던 중 방콕행 비행기의 탑승을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로지항공 RS657 편의 탑승이 시작되었습니다. 원활한 탑승을 위하여 여권과 탑승권을 미리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앉아서 엄청나게 긴 줄을 자랑하고 있는 탑승객 행렬을 멍하니 바라봤다. 방콕은 갈 때마다 사람이 많다. 하긴, 물가도 저렴하고, 가서 부자 놀이를 할 수도 있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냥 사람 구경이나 하면서 노래나 듣다가 나중에 타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남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방

송에서는 마지막 남은 승객들의 탑승을 재촉하는 안내가 나왔다.




“로지항공에서 마지막 탑승 안내드립니다. 금일 RS657편을 이용하여 방콕으로 출국하시는 이연희 고객님, 서이준 고객님, 김수현 고객님 계시면 마지막 승객이시오니 속히 탑승을 마쳐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름을 불리다니, 창피해진 나는 빠른 걸음으로 여권과 탑승권 검사를 받고 탑승구를 통과했다. 아, 진짜 떠나는구나. 비행기를 타기 전, 비행기를 타러 가는 그 짧은 길이 무척 설렜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승무원에게 다시 한번 탑승권을 확인받고, 비상구 자리에 앉아서 친구들에게 폭풍 카톡을 했다.




-      언니 다녀온다, 잘 있어라.

-      선물 사 와

-      ㅗㅗ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며 카톡을 하고 있는데, 우리 비행기의 탑승이 모두 완료되어 출입문을 닫는다는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 진짜 가는구나. 떨린다!! 그리고 그때였다. 진동과 함께 한 문자가 도착한 것은.




-      이연희 고객님, 안녕하세요 저는 로지항공 직원 우희진입니다. 탑승구 의자에서 고객님께서 구매하신 면세품이 발견되어 안내데스크에 맡겨둘 테니 나중에 돌아오셔서 꼭 찾으시기 바랍니다. 공항 분실물센터 전화번호 전달드리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

와 씨, 망했다. 면세품을 다 두고 탔다. 어쩐지 홀가분하더라니, 젠장.




-      아, 제가 정신없이 타다가 면세품을 두고 왔네요 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이거라도 드시며 근무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직원에게 스타벅스 기프티콘 하나와 문자 답장을 하고, 핸드폰은 비행기 모드로 바꾼 뒤 두 눈을 꼭 감고 멘탈 관리를 하려고 했지만 하, 욕 나온다. 실패다. 이번 여행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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