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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Mar 02. 2024

사랑하는 마음도 습관이다.

성장일기 _ 일상

나는 어릴 적에 습관처럼 내뱉었던 말이 있었다.


“지금 몇 시야?”

“오늘 추워?”  


질문하는 주체는 항상 나였지만, 대답해 주는 주체는 불특정 다수였다. 그 대답은 항상 이렇게 돌아왔다.

“네가 시계 보면 되잖아” 혹은 “어제 일기예보 안 봤어?”


가족이 많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답들 속에서 언제나 내 질문에 성실히 답변해 주신 아버지가 계셨다.


“내일 13도야, 추워.”
“7시 30분이야.”  


결혼을 하고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워킹맘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육아는 친정 식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만 했고, 대부분 휴일은 친정에 가 있거나, 부모님께서 집안일을 도와주셨다.


남편은 늘 바빴고 주말에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그래서 항상 친정 식구들과 공동 육아를 해왔다. 처음부터 친정 식구에게 아이를 맡길 생각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미래를 계획하여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시댁에서  아이를 빨리 낳으라고 돌봐주신다고 말씀하여서 그 말을 믿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본인이 아프셔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하시는데 어쩌겠는가? 친정에 도움을 받을 수밖에..


사실, 친정 식구에서 벗어나고 싶음 마음에 결혼을 택한 것도 있었는데, 다시 친정으로의 귀속과 그늘 속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조금은 싫었다. 여하튼, 주말에 남편 없이 혼자 남게 될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향하였다.  너무 피곤했던 나부터 살아야만 했다. 


친정으로 갈 때마다 아버지께 SOS 요청을 하면 통화가 끝나자마자 아버지는 냉큼 우리 집으로 오셔서 큰아이는 아버지가 둘째는 내가 안고 친정집으로 향했다. 간혹 주말에 남편이 너무 늦게 들어온다는 연락을 받을 때면 이때다 싶어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서 잠을 잤다.


주말 아침, 친정집에서 일어나면 어김없이 식탁 위에 메모가 놓여 있다. 아버지의 손글씨로 오늘의 날씨를 적어놓으신 것이다.

[날씨 쌀쌀/ 아침 9도 낮 13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아버지는 이른 아침 뉴스를 보신 후 메모를 남기셨다. 그 메모 아래에는 언제나 엄마의 짧은 멘트가 적혀 있다.

[애들 반팔 입고 어린이집 보내지 마! 감기 조심!]


부모님은 언제나 자식이 먼저셨고, 특히 아버지는 오직 자식과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다. 나에게 아버지 상은 오직 내 아버지 한 사람뿐이다. 결혼 후 모든 남자는 나의 아버지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퇴근하고 돌아오셔서 집안일을 도와주시거나 저녁식사는 반드시 가족과 함께하시고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활동을 하시는 성실한 아버지.  저녁식사 후 후, 아버지는 늘 설거지를 해주시고 우리를 위해 과일도 항상 깎아주셨다.


결혼을 하면 내 남편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아버지와 같은 사람은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흔이 넘어서 지인들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그리고 남편과 통화를 하다가 물었다.


“당신은 가정적이라고 생각해?”
“응. 나는 가정적이라고 생각해!”
“정말? 그런데 나는 당신이 가정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 말 때문에 서운한데, 나는 늘 가족을 위해서 일하고 가족만 생각하는데?”
“있지, 내 기준의 가정적인 것은 우리 아버지야. 그런 걸로 치면 당신은 전혀 가정적인 사람이 아니지. 당신 기준에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거지.”  


그때 깨달았다. 가부장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남편의 입장에서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만으로도 가정적일 수 있겠구나!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남편의 입장이었다.  그의 입장에서 그럴 만도 할 것이라고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부부이지만 '가정적인'이라는 기준도 서로 너무 다른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일 뿐이었다.  남편과  15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이제 우리가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 이해해 본다. 


지난 시절 우리가 서로 다른 환경, 의견,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우리는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그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자기주장 강한 애어른일 뿐이었다. 


내 아버지가, 내 어머니가 내게 그랬듯. 


오늘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면서 이렇게 말을 한다.

"오늘 영하 1도야. 옷 따뜻하게 입고 가!"

삶의 습관은 무섭다.

사랑도 습관처럼 받아본 사람들이 줄 수 있다.

사랑을 받은 사람에게 돌려주면 좋으련만, 사랑은 늘 더 사랑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밖으로 나갈 때, 


"밖에 추워! 따뜻하게 입고 가!"라고 말해줄 따뜻한 부모님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머나먼 타향살이는 늘 마음 한편에 그리움만 가득 쌓여가게 만드는 것 같다.  


오늘은 부모님의 따듯한 사랑의 마음이 가슴 깊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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