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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Mar 04. 2024

#16. 언제 울 수 있나요?

성장일기 _ 일상

가만있는데 울적하고 아무 일 없는데 가슴이 답답하다.

내가 요즘 병이 들었나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내 증상들을 하나둘 검색해 본다.


"갱. 년. 기. 증. 상"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나고, 웃고 싶은데 침울하다.  


아이들이 나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이 온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그 시간을 현명하게 맞이하려고

나름 준비도 많이 했는데 홀로 집에 남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마음의 헛헛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바쁜 시간을 쪼개며 공부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면 아이들을 돌보고 그렇게 쫓기며 지내는 삶에 익숙해서 인지 진정으로 몸이 한가해지는 여유로운 시간을 나는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다.  나름 나이 먹음을 지혜롭게 받아들이겠다고 되게 멋진 척 살아왔는데  그냥 센 척 잘하는 그런 여자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요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엄마가 자주 생각난다. 여자들의 삶에 대해서 자주 생각해 본다.


내가 어릴 적 확신에 차서 말했던 말들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당당하게 살아야지.'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어야지 저게 뭐야. 무능하게 집에만 있고.'

'왜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거야. 할 일 없어서 저러나?'


등등 엄마로서의 삶을 살기 전까지 내가 속으로 읊었던 말들이다.


나는 결혼도 안 하고 커리어우먼으로 그렇게 멋지게 살아갈 거라고만 생각했지만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인생 흐름과 순리는 거역할 만한 용기도 없는 사람이었다.


때가 되어 결혼을 해야 했고,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아이를 낳았고, 그렇게 순리대로 살고 순응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기에 그대로 살아갔다. 마음에는 불만이 가득함을 숨기면서 말이다.


문득 고등학교 썼던 일기장을 다시 펴보았다.  일기장엔 엄마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46세의 엄마


지금의 내 나이와 같았다. 문득 시도 때도 없이 드라마를 보면서 오열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가족들이 모여서 드라마를 시청하는데 유독 슬픈 장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펑펑 흘리던 엄마.  어느 날은 드라마를 보며 빨래를 개다가 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하는 모습에 당황한 적도 있었다.


나는 "엄마 왜 울어?"라고 묻지도 못했다.  그냥 그 드라마가 엄마한테는 무지 슬픈 내용이었다 보다고 생각만 하였다.


드라마가 끝나고 자신의 쌍꺼풀이 퉁퉁 부은 줄도 모르고 "요즘 드라마를 너무 실감 나게 만들어. 슬퍼서 혼났네." 혼잣말을 중얼거리셨다.  


그때는 몰랐던 엄마의 그 울음 그리고 그 의미, 지금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싶다.


본인도 울고 싶지 않은데 아무 일도 없는데 그냥 눈물이 나는 그 이유


어쩜 갱년기라는 증상을 그 시대에는 화병이나 우울증이라고 치부되었고,  성격이 지랄 맞거나 예민한 사람들이 걸리는 그 어떤 것쯤으로 치부되었던 그 시절.


주변사람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팔자 좋아서 생기는 병이라는 말을 들어왔던 엄마.

 그래서 내 몸이 아프다고 말하기도 어려웠고 엄마도 안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기에 반박할 수는 없었지만 진짜 몸이 아픈걸 어떻게 하냐 그렇다고 병원에 가면 특별한 병명은 없는 그 병. 

화병이라고 명명되는 성격이 유별나서 생기는 병처럼 치부되던 그 시절 


모든 것이 사실이지만 의지와는 상관없는 이 눈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


운전을 하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장을 보다가도 나도 모를 눈물이 난다.


가끔은 방안에 들어가서 펑펑 울고 싶을 때도 있지만 나는 펑펑 울만한 이유를 찾는다. 마땅한 이유가 없으면 혹시 아이들이 당황스러울까 싶어서 눈물도 가슴 깊이 접어둔다.


어느 날 설거지를 하며 그 지루한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오열할 내용도 아니었는데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그냥 눈물 콧물을 흘리며 설거지를 했다.


딸이 내 모습을 바라보더니


"엄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눈물과 콧물을 닦으며 나는 말했다.


"드라마 내용이 너무 슬퍼. 주인공이 진짜 멋지잖아. 저렇게 힘든데 멋지게 성장하고.."


"뭔 소리야. 주인공이 멋진데 왜 엄마 슬프냐고?"


"멋지니까... 나도 멋지도 싶은데.."


"아니야. 엄마 진짜 멋진 사람이야. 엄마는 거걸 왜 몰라! 난 엄마가 제일 멋진데"


딸아이의 말을 듣는데 내 눈물이 쏙 들어간다. 정신이 빠짝 차려진다.


"그니까. 엄마 진짜 멋진 사람이야. 그렇지? 왜 나만 모르냐."


겸연쩍은 나는 흐르는 콧물을 훌쩍 들이킨다.  딸의 한마디에 마음이 왜 따뜻해지고 진정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위로받은 마음이랄까? 혹은 듣고 싶었던 말이랄까? 무슨 마음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도 그때 엄마가 왜 우는지 한번 더 물었더라면 그리고 그때 엄마에게 따듯하게 위로해 줄 수 있는 딸이었더라면 엄마가 오랜 세월 마음이 힘든 상태로 삶을 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고, 엄마의 힘든 마음으로  주변에 가까운 가족들에게 주었던 많은 고통의 시간들이 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는 나이가 어른의 나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공감받고, 위로받는 소녀의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엄마와 통화를 하다 보면 아직도 어린 소녀의 마음이 가지고 있는 듯 느껴진다.  본인의 편이 되어 달라고 본인만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사춘기아이의 모습과 많이 흡사했음을 나는 요즘 더 느낀다.


나를 비롯해서 수많은 마음이 덜 자란 어른아이가 아이를 낳고  키우고 본인도 어찌할 바라를 모를 세상에 나와서 그냥 어른이니까 당연히 받아들이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만 들어가며 벼랑 끝에 내밀려서는

똑바로 살아라 바르게 살아라 하며 계속 밀어붙이기만 하니 본인이 가는 길이 잘 가고 있는지 아니면 혹은 잘 못 가고 있는지를 딱히 의논할 사람도 없이 혼자만의 생각으로 혹은 주변인들의 오지랖에 휘둘려서 그 힘든 시간을  묵묵히 이겨내며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엄마에게 혹은 나에게 수많은 친구들이 존재하였고 스쳐 지나갔지만 나를 진정으로 위해주고 사랑해 줄 사람은 오직 나라는 사실.


어느 누구도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없다는 것.


오늘의 나를 도와줄 사람은 과거의 나뿐이고, 또한 미래의 나를 도와줄 사람도 현재의 나뿐이다.


문득 나를 제일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해져야 내가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아무 눈치 보지 않고 펑펑 울고

그냥 이유 없이 눈물이 나서 울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기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내가 눈물이 나는 이유를 자꾸 핑계 대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과거의 내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고등학생 때 썼던 일기장을 바라보며 그간 엄마와 사이에서 많은 갈등과 다툼으로 한동안 엄마와 거리 두기를 하며 지냈던 시간을 잠시 이해해 본다.


나는 점점 엄마처럼 되어간다.  여인의 삶이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도 이제 안다.


"너도 늙어봐라 호언 장담하지 마."


엄마의 말에 내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나는 엄마가 아니야. 그러니 엄마처럼 된다고 말하지 마."


그 말은 정답이 아니었다.  나도 그냥 엄마처럼 늙어가는 중년여인 일뿐이다. 멋대로 무엇하나 없는 호르몬을 이겨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간 나 스스로 내뱉은 말을 지키려고 이겨내려고만 했으니 더 몸은 점점 늙어가는데 내 정신으로 계속 밀어붙이는 뜻대로 되지 않는 내 몸이 나를 자꾸 실망시킨다.

 

울적한 마음이 들면 그 울적함도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련다.


문득 언제든 내가 울적할 때 맘 놓고 울 수 있는 곳을 없을까? 그 이유도 묻지 않고 내 울음에만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곳을 상상하며 사업이 아이디어를 구상해 보았다.


직장인들이 가장 많은 오피스존에 코인 노래방처럼 혼자 들어가는 [크라잉룸]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모두가 울고 싶어 오는 곳이기에 아무도 왜 왔냐고 왜 우냐고 묻지 않는 곳

그런 곳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 


우리는 대체 언제 당당히 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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