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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Mar 21. 2024

#20. 약자가 사회에서 제대로 보호받는다는 것?

성장일기 _ 캐나다라이프

아이들 학교 보내 놓고 일주일에 두 번 수영장에서 운동을 한다. 10분 hot tub(온탕)에서 체온을 올리고 사우나에서 10분  땀이 나기 시작할 때 수영장 트랙을 20분 걷는다.  4번을 반복하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나의 유일한 힐링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아무 생각 없이 물멍 하며 머리를 비우기 딱 좋은 시간이다. 


아침시간 수영장에 오면 노인, 장애인 그리고 아기들. 1년 미만의 아기들이 참 많다.  딱 보기에 석 달 된 아기들도 오전시간에는 종종 볼 수 있다.  캐나다의 공공 수영장에는 어른, 노인, 노숙자를 가리지 않고 오는 곳이기에 한국적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개인적으로 수질이 걱정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다양한 인종과 수많은 사람이 오기에 수시로 수질 체크를 하고 어마무시한량의 소독제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콸콸 부어댄다.  만약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보는 앞에서 수영장 물에 락스와 소독제를 섞은 물을 콸콸 붓는다는 상상을 해보라 엄마들의 반응은 과연 어땠을까? 아마 다시는 수영장에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감히 확신해 본다. 


의식차이일까? 

그들은 락스가 가득한 이물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래서 서양아이들은 아토피나 알레르기가 그리도 많은 것일까? 


여하튼 나의 이 모든 의문과 궁금증을 뒤로하더라도 이들은 1년 미만의 아이를 데리고 락스물 가득한 수영장으로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데리고 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아침시간에 오는 수영장은 모든 이들이 활짝 웃는 선한 얼굴들이 대부분이다.  찌푸림 없이 즐겁게 수영도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유토피아와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나는 아침시간 수영장 방문을 선호하는 한다. 


그날은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 8개월 차가 되던 날이었다.  그런데  평소 이곳에서 볼 수 없었던 처음 보는 비주얼의 남성이 등장하였다. 레게스타일의 헤어와 하와이안 패턴의 수영팬츠를 입은 남성. 모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임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 평화로운 유토피아와 어울리지 않는 빌런의 등장이랄까? 이질감 마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Hot tub(온탕)에 앉아서 주변을 정신없이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지나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것이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래간만에 특별한 사람의 방문이라 나도 그에게 시선이 자꾸 갔던 것은 같다. 사실 안 볼 수가 없는 비주얼이었다.  


그의 행동이 얼마나 오버스러웠는지 멀리서도 눈길이 간다.  Hot tub(온탕)에 있던 히피스런 남성은 수영장 스캔이 완료된 듯  내가 있는 워터풀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데도 그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모델워킹이다. 그는 찬찬히 수영을 하는 척하더니 여성라이프가드가 서 있는 곳으로 향한다.  


평소 그 여성라이프가드는  모든 방문객과 눈이 마주칠 때면 상냥히 웃어주기로 유명하였고 참으로 매력 있는 멕시칸계 캐네디언 여성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간단한 스몰토크를 시작하였다. 


"안녕. 좋은 아침이야. 날씨가 좋다."

"너 어디서 왔니? 스타일이 멋지다."

"너도 너무 멋지다."


등등의 스몰토크를 나누며 그녀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며 서로 웃고 있다.  그들의 옆을 스쳐 지나며 들리는  대화는 일상적이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누는 정도의 대화였는데 점점 여성라이프가드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남자와의 대화를 피하려고 시선을 피하는 것이 보였다. 


이곳에서 여성이 대화 속에서 시선을 피하는 태도를 보이면 보통의 남성들이라면 여성이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낸 것을 알아채고 자리를 피해는 것이 나름 이곳의 룰인데 그는 집요하게 그녀를 지속적으로 바라보며 질문하고 조금 전까지의 하하 호호 웃으며 하던 대화는 사라지고, 그녀의 웃음기 사라진 얼굴에는 피곤한 마저 느껴졌다.  무언가 불편한 이야기가 오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성 라이프가드는 그 대화를 피하고 싶었던지 내가 그들의 옆을 지나가고 있는데 나를 보며 방끗 웃어주며 인사를 건넨다. 그와 대화를 그만하고 싶다는 신호이다. 그러나 그 히피맨은 그녀의 의사를 전혀 존중하지 않고 그녀에게 계속적으로 말을 걸고 이상한 제스처를 계속 취한다. 그녀와 대화하는 종종 자신의 수영팬츠 안에 입은 속옷을 추켜올린다. 그 옆을 가까이 지나다 보인 속옷은  살색 T팬티였다.  워낙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보니 이것도 하나의 취향이려니 하며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그의 T팬티는 정말 거슬렸다. 






그의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캐나다의 사회의 성적 다양성 받아들이는 모습을 잠시 이야기해보고 싶어 진다.


얼마 전 두 명의 남성이 아이의 수영레슨이 끝나고 hot tub(온탕)로 들어온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 올 수록 보이는 한 남성의 모습은 전형적의 센 남성의 외형을 하고 있었고 다른 남성은 외형 센 남자였지만 눈썹연장과 화장 그리고 컬러풀한 긴 손톱을 붙이고 있었다.  게이커플이었다. 그들은 함께 육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또 다른 커플은 남성 한분과 여성 한분 수영레슨을 마친 아이를 데리고 hot tub(온탕)로 들어오는데 신기하게 나와 눈이 마주친 남성의 눈에서 여성미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눈매가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빡빡머리 스타일, 턱수염, 가슴의 털, 전신이 문신 가득한 전형적인 남성으로 보였지만 가슴부위에 보이는  Y자를 거꾸로 그려 놓은 듯한 수술자국, 가슴을 절개한 듯한 절제선이 보였다.  그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남성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공동육아를 위해서는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름다웠으며 그들이 사람들과 함께 hot tub(온탕)에 들어와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야기를 하지만 어느 누구도 눈썹연장을 한 남성에게 혹은 성전환 수술을 한 남성에게 그 이유를 묻지는 않는다. 


다만 아이가 몇 살이냐? 아이가 예쁘다, 타투가 멋있다 그 의미가 뭐냐는 등에 대해서 질문만 할 뿐이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누구 하나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 그런 질문들 그래서 모두가 자유롭게 웃고 오고 가는 대화들.


내가 종종 느끼는 이 신기한 감정과 인간으로서 존경받는 마음.  처음에는 놀랍기도 신기하기도 한 마음도 있었지만 편견 없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이제는 너무 좋다. 






여하튼  다시 그 찜찜한 취향의 남성 얘기로 돌아와서  여성 라이프가드의 교대시간이 되어서 그녀는 오피스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나지 않아 그 히피맨에게  슈퍼바이저 1명과 남성 라이프가드 2명이 다가왔다. 그들은 히피맨에게 무어라 말하며 손짓으로 오피스로 가라고 말하고는 슈퍼바이저와 라이프가드들은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는 찰나 히피맨은 오피스로 가는 척하며 유유히 사라졌다.   남성 라이프가드들은  히피맨을 찾아 나서는 듯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느 정도가 시간이 지나고 히피맨에게 성희롱적 발언을 들은 여성라이프가드가 근무교대되어 자신이 지키고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다.  평소 그녀답지 않게 표정은 좀 어둡고 불편해 보인다.  잠시 후 수영장 입구 쪽에서  시커먼 무리들이 들어온다.  커뮤니티센터의 센터장, 남성 슈퍼바이저, 오피스 남성 스테프들, 남성라이프 가드들, 센터 안에 있는 짐센터장 (덩치가 엄청 컸다.) 등 모두가 그녀에게 다가와서는 괜찮냐고 묻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이 여성라이프가가 강하게 보호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구성원 모두가 그녀를 보호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더욱 감동적이었다. 


캐나다에서는 제도와 법으로 완벽하게 동물, 어린이, 노인, 여성과 약자가 최우선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나라인 것은 확실하구나라고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번 일로 나와 내 딸이 혹시라도 이곳에서 이런 일을 당한다면 무조건 여성 편에서 편견 없이 들어주고 보호를 받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안도와 안심이 되었다.


문득 우리나라에서 성희롱 혹은 성폭행의 사건이 벌어졌다면 사람들은 어떤 대처들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그녀의 행색에 대해서 먼저 질타를 했을까? 

네가 오버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을까? 

그냥 별일 없었으니 넘어가라고 말했을까? 

네가 예뻐서 그래라고 농담하며 넘겼을까?

네가 여지를 준거 아니야 라며 반문했을까?


그들의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부터 온갖 선입견을 가져다 붙이며 피해받은 이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신기술도 보여주려 할지도 모른다. 


여하튼 캐나다란 나라가 그동안 나에게 주었던 수많은 불편함과 느려터짐, 혹은 해결 안 되는 많은 것들에 대한 불만을 한순간의 사건으로 감동으로 전환되어 버렸다. 그래서 캐나다를 선진국, 선진국 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선진국이란 마인드선진국을 말하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 인간을 향한 편견 없는 시선, 경쟁하지만 응원하는 마음 그리고 타인이 아닌 나를 먼저 바라보는 시선을 갖는 태도 이런 모든 다름을 존중하는 마음을 어릴 적부터 배우며 자란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인과의 과다한 경쟁, 외모지상주의적 비교, 지나친 배려를 강요하는 삶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인을 먼저 바라보는 시선을 갖는 태도로 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사람들은 어른으로 성장하여도 자신 바라보며 지냈던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불행하다.  그래서 겨우 어른이 되어서야 자신을 조금씩 들여다보며 불편하고, 불행하고, 우울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여하튼 내가 느끼는 수만 가지의 캐나다살이의 경험 중 가장 좋은 것은 '제도와 법 앞에 인간이 특히 약자가 진정으로 보호받는 것'같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에서 우리 아이들이 사람으로서 온전히 존중받고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 우리 어른들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며 이 글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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