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_ 캐나다라이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일주일에 두 번 수영장에서 운동을 한다. 10분간 온탕에서 체온을 올리고 사우나에서 10분간 땀이 나기 시작할 때 수영장 트랙을 20분 걷는다. 이 과정을 4번 반복하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나의 유일한 힐링 시간이다. 그 시간은 아무 생각 없이 물속을 바라보며 머리를 비우기 딱 좋은 시간이다.
아침 시간 수영장에 오면 노인, 장애인, 그리고 아기들이 보인다. 1년 미만의 아기들이 참 많다. 딱 보기에 석 달 된 아기들도 오전 시간에는 종종 볼 수 있다.
캐나다의 공공 수영장에는 어른, 노인, 노숙자를 가리지 않고 오는 곳이기에, 한국적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개인적으로 수질이 걱정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다양한 인종과 수많은 사람이 오기에 수시로 수질 체크를 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소독제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부어 넣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의 엄마들이 보는 앞에서 수영장 물에 소독제를 섞은 광경을 지켜본다면 수영장에 다시 방문할까? 아마 다시는 수영장에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해 본다. 캐나다 살기 전 예전에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궁금해진다.
'의식 차이일까? 이들(캐네디언)은 소독제 가득한 이 물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래서 서양 아이들은 아토피나 알레르기가 그리도 많은 것일까?'
여하튼 이러한 많은 의문과 궁금증을 뒤로하더라도, 1년 미만의 아이를 데리고 소독제 가득한 물이 담긴 수영장에서 아이를 정기적으로 데리고 수영하러 온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아침 시간 수영장 방문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활짝 웃는 선한 얼굴들이 대부분이다. 찌푸림 없이 즐겁게 수영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유토피아에 와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공간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힐링이다.
그날은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 8개월 차가 되던 날이었다. 그런데 평소 이곳에서 볼 수 없었던, 처음 보는 비주얼의 남성이 등장하였다. 레게 스타일의 헤어와 하와이안 패턴의 수영 팬츠를 입은 남성. 모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임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 평화로운 유토피아와 어울리지 않는 빌런의 등장이랄까? 이질감마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온탕에 앉아서 주변을 정신없이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지나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것이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래간만에 특별한 사람의 방문이라 나도 그에게 자꾸 시선이 가게 되었다. 사실 안 볼 수가 없는 비주얼이었다.
그의 행동이 얼마나 오버스러웠는지 멀리서도 눈길이 간다. 온탕에 있는 히피스런 남성은 수영장 스캔이 완료된 듯 내가 있는 워터풀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고, 그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러운 모델 워킹이었다. 그는 찬찬히 수영을 하는 척하더니 여성 라이프 가드가 서 있는 곳으로 향한다.
평소 안면이 있는 여성 라이프 가드는 모든 방문객과 눈이 마주칠 때면 상냥히 웃어주기로 유명하며, 참으로 매력 있는 멕시칸계 캐네디언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간단한 스몰 토크를 시작하였다.
"안녕. 좋은 아침이야. 날씨가 좋다."
"너 어디서 왔니? 스타일이 멋지다."
"너도 너무 멋지다."
등등의 스몰 토크를 나누며 서로 웃고 있었다. 그들의 옆을 지나며 들리는 대화는 일상적이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누는 정도의 대화였지만 점점 여성 라이프 가드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남자와의 대화를 피하려고 시선을 회피했다.
이곳에서 여성이 대화 중에 시선을 피하는 태도를 보이면 보통의 남성들이라면 여성이 불편하다는 신호를 알아채고 자리를 피해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이 매너인데, 그는 집요하게 그녀를 계속 바라보며 질문하고, 조금 전까지 하하 호호 웃으며 하던 대화는 사라지고, 그녀의 웃음기는 사라진 얼굴에는 피곤함마저 느껴졌다. 무언가 불편한 이야기가 오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성 라이프 가드는 그 대화를 피하고 싶었던지, 내가 그들의 옆을 지나가고 있는데 나를 보며 방긋 웃어주며 인사를 건넨다. 그건 그녀가 그와의 대화를 그만하고 싶다는 신호이다. 그러나 그 히피맨은 그녀의 의사를 전혀 존중하지 않고 그녀에게 계속 말을 걸고, 이상한 제스처를 계속 취한다. 그와 대화하는 중 자신의 수영 팬츠 안에 입은 속옷을 끌어올린다. 그 옆을 가까이 지나가면서 보인 속옷은 살색 T팬티였다. 워낙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보니 이것도 하나의 취향이려니 하며 받아들이지만, 그의 T팬티는 정말 거슬렸다.
그의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캐나다 사회의 성적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잠시 이야기해보고 싶다.
얼마 전 두 명의 남성이 아이 수영 레슨이 끝내고 온탕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보이는 외형은 한 남성은 전형적인 센 남성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남성은 외형은 센 남자였지만 눈썹 연장과 과한 화장을 한 얼굴, 컬러풀한 긴 손톱을 붙이고 있었다. 그들은 게이 커플이었다. 함께 공동육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또 다른 커플은 남성과 여성과 함께 아이 수영 레슨을 마치고 온탕으로 들어오는데, 신기하게도 나와 눈이 마주친 남성의 눈빛에서 여성미가 느껴졌다. 눈매가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빡빡머리 스타일, 턱수염, 가슴의 털, 전신에 문신이 가득한 전형적인 남성외형을 하고 있지만 여성이라고 느꼈다. 그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 올 수록 보이는 가슴 부분에는 Y자를 거꾸로 그려 놓은 듯한 수술 자국.
그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공동 육아를 위해 늘 최선을 다하며 편견 없이 타인과 어울리며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생경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누구도 눈썹 연장을 한 남성에게 혹은 성전환 수술을 한 여성에 대해 그 이유를 묻지는 않는다. 다만 아이에 대해서 관심 갖고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 몇 살이냐?", "아이가 예쁘다", "타투가 멋있다. 그 의미가 뭐냐?" 등의 질문만 할 뿐이다. 누구 하나 그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질문들은 하지 않는다. 그냥 모두가 자유롭게 웃고 오가는 질문들과 대화들 뿐이다.
내가 처음 느끼는 새로운 경험과 그들이 타인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을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다름을 제대로 인정하고 편견 없이 사람들 대하는 그 시선이 너무 아름다웠다.
여하튼 다시 그 찜찜한 취향의 남성 얘기로 돌아가면, 여성 라이프 가드는 불편한 시간을 보내다가 교대 시간이 되어 오피스로 향하였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나지 않아, 그 히피맨에게 슈퍼바이저 1명과 남성 라이프 가드 2명이 다가왔다. 그들은 히피맨에게 무언가 말하며 손짓으로 오피스로 가라고 했고, 슈퍼바이저와 라이프 가드들은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는 찰나, 히피맨은 오피스로 가는 척하며 유유히 밖으로 사라졌다. 남성 라이프 가드들은 히피맨을 찾아 나서는 듯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히피맨에게 성희롱 발언을 들었던 여성 라이프 가드는 다시 본인 근무 교대 시간이 되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평소 그녀답지 않게 표정은 어둡고 불편해 보였다.
잠시 후, 수영장 입구 쪽에서 시커먼 무리들이 들어온다. 커뮤니티 센터의 센터장, 남성 슈퍼바이저, 오피스 남성 스텝들, 남성 라이프 가드들, 그리고 센터 안에 있는 짐 센터장(덩치가 엄청 컸다) 등이 모두 그녀에게 다가와 괜찮냐고 묻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은 나로서는 이 여성 라이프 가드가 강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녀를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더욱 감동적이었다.
캐나다는 제도와 법으로 동물, 어린이, 노인, 여성과 약자가 최우선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법적으로 제도화하며 그것을 지키는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일로 나와 내 딸이 혹시라도 이곳에서 이와 비슷한 일을 당한다면 무조건 여성 편에서 편견 없이 들어주고 보호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와 안심이 되었다. 분명 이 부분을 다소 이용하는 악인도 있겠지만 내가 보는 시선에서 약자가 진정으로 보호받는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만 중점을 두고 말하고 싶다.
문득 우리나라에서 성희롱 혹은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다면 사람들은 어떤 대처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그녀의 행색에 대해 먼저 질타했을까?
네가 오버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을까?
별일 없었으니 넘어가라고 말했을까?
네가 예뻐서 그래라고 농담하며 넘겼을까?
네가 여지를 준 거 아니냐고 반문했을까?
그들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부터 온갖 선입견을 가지고 피해를 본 사람이 가해자로 둔갑하는 신기술을 보여주려 할지도 모른다.
여하튼 캐나다가 그동안 나에게 줬던 수많은 불편함과 느려터진 행정력의 속도, 혹은 해결되지 않는 많은 불편함이 주는 불만들이 한 사건의 경험으로 감동으로 전환되었다.
캐나다를 선진국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선진국은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가가 아니라 마인드가 선진국어야 진짜 선진국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 인간을 향한 편견 없는 시선, 경쟁하지만 응원하는 마음, 그리고 타인이 아닌 나를 먼저 바라보는 태도. 이런 모든 다름을 존중하는 마음을 어릴 적부터 배우며 시스템
이것이 진짜 선진국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인과의 과다한 경쟁, 외모 지상주의와 비교, 지나친 배려를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니 한국 사람들은 어른으로 성장해도 자신을 바라보며 지냈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불행하다. 나이만 먹은 애 어른들이 많다.
어른이 되어 조금씩 자신을 들여다보니, 불편하고 불행하고 우울한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며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지인들을 많이 목격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바라본다.
대한민국에서, 우리 아이들이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배려받는 환경에서 살아갈 그런 세상으로 발전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