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ara Jul 29. 2024

소통불가

성장일기_일상

MBTI라는 개념이 유행하기 전부터 나는 심리학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가장 큰 이유라면 내 마음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었고, 그 시작은 나에게 소중한 엄마의 말이 언제부턴가 나를 힘들게 만들었고 엄마를 부정하고 싶은 그 마음이 어린 시절 많은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게 하였다.


 나는 엄마에게 착하고 말 잘 듣는 딸이었지만 내 안에 나는 엄마를 너무 싫어하는 아이였다. 그 마음을 표현해보지 않았고 엄마를 싫어하는 내 마음 때문에 늘 죄인 같은 마음으로 평생을 지냈다.


나 스스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릴 미드 보며 등장하는 엄마들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내 엄마는 분명 미국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하면서 지냈다.  엄마는 내 진짜 엄마가 아닐꺼야. 새 엄마가 맞아. 내 출생을 부정하기도 하였다. 


스스로 이상한 아이라고 치부했고, 가끔 친구들에게 나의 생각을 아주 살짝 표현했을 때 그들은  4차원이나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그런 아이로 치부해 버렸다.


그 후로 내가 가지고 있는 진짜 속마음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하는 것을 피했고, 그들이 원하는 생각에 맞춰서 행동하고 대답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만약 어린 시절 나의 마음과 잘 맞는 멘토나 친구를 찾았더라면 내 삶은 조금 덜 외롭지는 않았을까?

더 많이 웃고 행복하지는 않았을까 싶다.


태어나길 ENFJ로 태어난 아이.  

어른 앞에서 노래도 잘 부르고 해맑게 웃기도 잘하고 인사도 넙죽넙죽 잘하는 아이였다. 마냥 해맑기만 했던 그런 아이.  어린 시절 친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평일저녁이나 주말이면 할머니를 뵈러 친척어르신들이 자주 들르곤 하셨다.


그때는 할머니를 뵈러 어른들이 왜 자주 오셨는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도 할머니를 방문하신 어른들은 그들의 부모님에 대해 많이 기억을 하시는 분이 할머니가 유일해서 그 얘기를 하러 오신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감히 유추해 본다.


그래서 그분들 앞에서 재롱도 제법부리면 용돈을 받곤 하였다.


나의 사춘기 이전 엄마는 말이 없었다.


늘 주방에 계시던 모습, 갈색옷을 즐겨 입고, 패션감각도 좋았으며 많이 웃지도 않으셨다.  


내가 사춘기를 겪기 전까지 우리 집은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그럼 평범한 가정이었다.  뭐 어느 집에서나 일어나는 외부적인 시끄러움 들은 존재했지만 부모님 사이에 특별한 시끄러움이 없었으니

나에게 그리 큰 일은 아니었다.


그 시기 친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엄마는 갱년기를 맞으면서 엄마는 집안의 폭탄이 되어버렸다.  


한 달의 한 번씩 엄마는 모든 감정을 술을 마시고 기억 없는 주사와 함께 날아오는 폭언들.


너무 공포스러웠고 무서웠다.


특히 엄마는 술을 마실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고통받아 왔던 인생을 주절거리셨고 그 이야기를 사춘기 소녀인 나는 밤새 혼자 들으며 버텨왔더랬다.

내가 엄마를 붙잡고 있지 않으면 분명 아빠에게 시비를 걸어 소란스럽게 만드는 게 분명했을 테니까.


내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 30년가량 엄마가 자신의 주사를 기억 못 하고 매번 미안해하는 모습을 매달 보면서 살았던 것 같다.


대문자 T의 인간형 아버지와 극 대문자 T의 성향의 어머니.


어머니의 술문제 말고는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우리 집은 뭔가 짹 각 짹 각 돌아가는 시계 같은 분위기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늘 화목하고 안정적인 것 같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뭔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  


어린 시절 밖에서 놀다가 동네 오빠가 가지고 놀던 쇠구슬에 이마를 맞았다.  같이 게임을 하다가 본인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고의로 나에게 던진 쇠구슬.


구슬을 맞았을 때 너무나 아파서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으니 오빠한테 따지지도 못하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명석이 오빠가 쇠구슬로 나 때렸어."

"네가 까불어서 맞았겠지."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그러이까. 니까 안 까불었으면 맞았겠어? 오빠가 일부러 때려?"

"아니...:


여러 번에 시도 끝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엄마는 나의 편을 들어주시지 않았다.


'엄마는 내편이 아니구나. 나는 늘 잘못하는 아이구나. 나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구나.'


엄마의 반응들이 나를 점점 소심한 아이로 만들었고, 점점 아무것도 안 해야 하는 아이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갱년기와 나의 사춘기가 접어들면서 아무 생각 없이 해맑기만 했던 나는 점점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로 변했지만 내가 정말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진짜 어릴 때 그 해맑음이 툭툭 튀어나와 버린다.


사춘기 시기를 홀로 겪어내면서 주변에 정말 많은 지인은 있었지만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많이 외로웠고 누군가에게 내 진심 어린 속마음을 얘기하면 다들 사차원이라든지 왜 이렇게 생각이 많냐는 식의 반응들이 돌아오니 그냥 입을 닫고 살았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밤 주무시는 저녁시간에 살짝 집밖으로 나와서 달구경을 하면서 생각에 빠지는 것을 좋아했다. 달빛을 보고 있음면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힘듦이 하나와 같이 잊혔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살아서 그 달에 머물러 계신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며 바라봤던 것 같다.  한참을 달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큰언니와 함께 쓰는 방에 누워 일기를 쓰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것이 내 외로움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것이 내 고민을 나누고 푸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기만 하고 살았던 것이다.


사실 40대 초반까지도 내 입으로 힘듦을 말한다는 것은 정말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 하나 참아내지 못하면서 무슨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힘들어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지냈던 시간들이 길었다.


인생을 살면서 정말 많은 우여곡절과 고민 끝에 늘 엄마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몇 번을 마음의 문을 두드려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네가 욕심이 많아서 그래."

"네가 이해심이 부족해서 그래."

"네가 참아. 그것도 못 참아. 엄마는 참고 살았어"


늘 이런 대답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늘 반복하는 엄마와의 대화들.


나는 여전히 이 나이를 먹고도 엄마와 내 고민을 나누고 싶어서 하루는 용기 내어서 엄마에게 말하였다.


"엄마. 엄마는 왜 어린 나한테 그렇게 엄마 힘든 얘기만 하고 일찍 죽는다고 아프다고 하고 왜 그랬어? 나도 애였는데.. "

"네가 잘 들어주니까! 난 네가 다 이해하는 줄 알고?"

"생각해 봐. 고작 중학생, 고등학생의 나이였잖아."

"그래도 네가 착한 딸이라서 엄마말 잘 들어주는 딸이었어서."

"아니 어른애였잖아. 대체 왜 그렇게 매번 술 마시고 나한테 종일 술주정한 거냐고?"

"그때 엄마가 우울증이었어. 술 안 마셨으면 아마 죽었을지도 몰라."

"아니 엄마. 나 그냥 어린애였다고..."


나의 끈질긴 반문에 대답을 하지 않던 엄마는


"그래서 이제 와서 사과라도 하라는 거냐? 그럼 뭐가 변하는데? 너는 그렇게 뒤끝이 있어서 어떻게 사냐?"

"아니. 엄마. 엄마가 잘 못한 거잖아. 내가 엄마한테 지금 혼날일이야?"

"그게 아니라 그 일을 아직도 생각하고 사는 게 니 문제지 내문제고?"


그렇게 엄마와의 대하는 늘 화냄으로 끝이 났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내 고민과 고통에 대한 대화는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 힘듦과 고통은 온전히 내 스스로 극복을 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 갇혀서 누구에게도 힘든 내색은 잘하지 않고 살았고, 힘들다고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그냥 그래야만 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오랜 시간을 버텨왔고 내 인생의 이름 모를 불편함과 우울감


한 여성으로서 성장하고 성공하고 싶은 욕망 앞에 늘 엄마의 말들이 떠올라 나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엄마의 말을 거부하자니 죄책감에 시달리고 듣고 있자니 내 삶이 답답해서 미치겠고 그 마음이 무슨 마음인지 조차 몰랐던 시절 운이 좋게 라이프코칭을 받게 되었고 삶의 변화를 맞이하였다.


"엄마말이 전부 옳을 수는 없어요. 그러니 엄마말 듣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은 성인이잖아요."


그 말이 처음엔 다소 충격적이게 들렸지만

그간 내가 가지고 있던 마음의 죄책감과 죄의식 그것이 주는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얼마  가수 이효리가 엄마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유튜브를 찍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효리는 엄마에게 말했다.


"그때 왜 그랬어?"


라고 말하며 우는 모습


이 질문에 세상의 딸들은 그저 다른 말 필요 없이


"그때 엄마가 몰랐어. 미안했어."


라는 한마디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이 때론 가장 큰 아픔일 수 있다는 사실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가는 여정인게 맞고 그 힘든 여정에

소통이 불가한 존재들을 무조건 함께 끌고 간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  


측은지심


예전에는 타인을 향한 마음이었으나, 이제는 그 마음이 나를 향해있다. 나를 더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너 진짜 잘했고,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파이팅!!

사랑해 아주 많이!

너 진짜 멋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