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몽 Sep 19. 2021

아빠의 발자국 소리

발자국 소리

아빠의 발자국 소리


저벅저벅 퇴근시간이 되면 귀를 쫑긋 세우고 아빠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린다.

 시간은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공포의 시간이다. 아빠가 도착하기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빠가 늦어질 때면 두려움은  길어진다. 오늘은 취해서 들어올까. 기분이 좋지 않아 한바탕 소동을 일으킬까. 오늘 나는 울지 않고 잠들  있을까. 안전할  있을까. 가장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마음을 졸이면 졸일수록 충격은  하다. 어느 날은 웃으며 투게더를  오는 아빠의 모습이 동화책처럼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의 우리 집은 티브이가 없다. 티브이의 소리를 자주 엄마 아빠의 비명소리로 착각해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많았다. 얼마나 많은 밤들을 화들짝 잠에서 깼는지. 쿵쾅쿵쾅  몸안의 심장소리가  귀까지 선명하게 들릴  있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는지. 지금도 소음에 아주 예민해서 음악도 오래 틀어놓지 못하는 나다.


아빠를 존경하지는 않지만 늘 사랑해왔다. 아빠도 상처가 많아서, 좋은 아빠를 겪어보지 못해서, 좋은 남자와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는 거라 생각했다. 하나님을 만난 20대, 철야예배를 다녀오면 늘 아빠가 잠든 방문 앞에서 손을 내밀어 기도했다. 하나님 아빠를 고쳐주세요. 만나주세요. 아빠의 아픔과 불행과 죄가 나에게 다 오게 해 주세요. 저는 이미 하나님을 만나서 괜찮아요라고 기도했다. 앞서 걸어가는 아빠를 향해서 기도했다. 어느 날 취해 들어와 소란을 피는 아빠의 손을 붙잡고 중얼거리며 기도했다. 아빠는 기도하지 말라며 나를 때리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영적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겉으로는 안 한다고 하며 진정시키고 속으로 불같이 기도했다. 그날 아빠는 내가 기도하는 중에 아이처럼 잠들었고 다음날 기억을 하지 못했다. 아빠가 행복해지면 엄마도 행복해지고 우리 가족도 행복해질 거라 믿었다.

지금의 아빠는 예전의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변했고 교회도 착실하게 다니고 있다. 암 투병하는 엄마를 챙겼고 손주들에게는 다정한 할아버지였다. 스스로 딸바보라 자처하며 엄마도 딸들을 지독히 아낀다며 혀를 차는 모습을 보고 오글거림을 참을 수 없었지만 인간의 행복한 망각이라고 생각하며 그 시간을 누리고 누렸다. 오랜 암투병 중에 병원에 있던 엄마는 심정지가 와서 중환자실에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아빠를 붙잡고 힘겹게 고 마 워라고 입모양으로 말을 했다. 그날이 엄마와 눈 마주친 마지막 날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코로나로 중환자실 면회가 아예 안됐고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홀로 죽어갔다. 마지막 호흡기를 떼고 마지막 대화도 못 나누고 엄마는 평안히 하늘나라로 갔다.


작년에 엄마를 보내고 집에서의 첫 명절이다. 언니와 내가 챙길 것을 다 체크를 하고 아침부터 바쁜 주일을 보내고 저녁이 되어서야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하루 종일 이곳저곳에서 야채를 사느라 시간도 낭비하고 돈도 낭비하고 아끼던 차마저 긁었다며 하하하 크게 웃는다. 아빠가 이렇게 지랄을 했다고. 아빠가 이렇게 기가 죽어있다며 자책한다.

아이고 우리 아빠 너무 속상했겠네..
아빠는 크게 웃다가 운다. 나에게 두려움의 존재였던 아빠가 아이처럼 서럽게 운다. 엄마가 없는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하려고 혼자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 생각을 하니 안쓰러워 나도 운다. 아빠 오늘 밤은 맘껏 울어요.


울어야지. 펑펑 울어야지. 그래야 다시 웃을 수 있지. 오늘은 울었으니 내일은 더 활짝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아빠가 늙어 힘이 없어질까 기대했던 어린 나는 이제 어른이 되어 작아진 아빠를 보며 운다.

작가의 이전글 아르바이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