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는가?
아이가 어리고 이쁠 때는 서로 나 닮은데 찾느라 경쟁적으로 '우리' 집안 핏줄과 유전자를 갖다 댄다. 시댁 식구들은 길쭉한 팔다리를 키 큰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축복이라고 했고, 친정 부모님은 어려서 아파트 상가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 좀 친다고 소문났던 엄마(나) 덕에 피아노를 잘 친다고 우기셨다. 옆으로 길게 찢어져서 검은 눈동자가 큰 편인 눈은 부리부리한 고모를 닮았으며, 똘망똘망하게 해리 포터 전집을 단숨에 읽어 낼 때는 책벌레 출신 외삼촌을 꼭 빼다 박았다고 하셨다. 하나뿐인 외손녀를 두고 우리 모친 백 여사는 헛공부만 해대는 딸이 결국은 해내지 못한 5개 국어 능통의 꿈을 꾸셨으며, 아들 외사랑을 친손녀에게 쏟아부으시는 시어머니께서는 백일 무렵 배냇머리가 빠지고 11킬로그램에 육박한 우량아를 놓고 당시 한참 유행이던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 닮았다고 교회분들께 자랑을 하셨더랬다 (이영애 씨 죄송해요). 반짝거리는 가능태 단계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희망과 꿈이다. 뭐든지 될 것 같고, 이룰 것만 같은, 아니 이뤄 줄 것만 같은 귀한 새 생명은 바로 내 핏줄인 것이다. 문제는 그 모든 무지갯빛 시나리오가 결코 아이 자신의 꿈이 아니라는 점이지만.
슬슬 사춘기가 발동을 걸기 시작할 즈음에, 이마부터 내려오는 여드름 때문에 아이의 신경은 바늘 끝처럼 날카로워졌다. 피부 트러블 없기로 유명한 백 여사와 아직도 백옥 피부를 자랑하시는 시어머니께서는 두 분 다 '우리 집안엔 여드름이 없는데...'라며 갸우뚱하셨다. 물론 백 여사는 내 남동생이 아직도 피곤하면 턱 쪽에 여드름이 난다고 불만이시고, 시어머니께서도 남편이 사춘기에 여드름 때문에 예민한 성격이 된 거라고 푸념을 하시면서도 말이다. 시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느긋하고 점잖은 성정은 꼭 지 아빠이지만 느릿느릿 한 건 도대체 누굴 닮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백 여사의 관점에서는, 공부를 저렇게 안 하고도 낙제 안 하는 머리는 지 엄만데 겁 없이 공부 안 하는 건 도무지 처음 보는 일이라고 절레절레하신다. 점점 아이가 외계 생명체처럼 느껴지는 것은 부모인 남편과 나도 마찬가지다. '난 공부를 열심히 안 한 거지 저렇게 미련하게 손놓고 놀지는 않았어'라고 실드를 치는 남편. '난 공부만 하다가 세상일에 어리바리해진 거지 저렇게 앞뒤 개념 없고 현실감 없지는 않았어'라고 나도 나대로 억울함을 토로한다.
사춘기가 심해질수록, 주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투사했던 자신들의 꿈을 하나둘씩 거둬들이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초라한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 과정은 누구에게나 입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던데 기다려 보자'로 결론을 맺는다. 하지만 나는 콩이고 남편이 팥이라면 둘의 유전자를 받은 아이는 콩도 아니고 팥도 아닐 것이다. 나 닮은 콩, 남편 닮은 팥을 기다려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이가 자라서 콩도 아니고 팥도 아니고, 세상에 없던 그 무엇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아마도 부모의 길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