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와 정신의 쉼표
올 3월부터 나는 육아와 출산으로 5년이란 기간 동안 단절된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사이사이 짧게 프리랜서로 일을 하긴 했었지만 정식 회사에 다니게 된 건 5년여 만이었다. 정식 회사에 근무하게 됐다는 건 나에겐 큰 의미였다. 출산 후 산후풍과 산후우울증으로 2년여간은 제대로 된 일상생활과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육아를 하지 못했던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건 옆에서 많은 도움을 준 가족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이가 크고 만 세 살이 지나면서부터 의사표현을 할 수 있고 의사소통이 되고 혼자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아지니 조금씩 나 스스로도 회복이 되어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사이 한국에서 혼자 일하며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신랑을 보며 같이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게 가장 마음이 안 좋았다. 조금이라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신랑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덜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의 몸이 회복이 되어 올 초에 나는 일을 구할 수 있었다. 분야는 하나, 나의 전공이자 그동안 쌓아온 경력이자 내가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영어교육 일이다. 오전부터 아이 어린이집에 가있는 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하니 가능한 일은 영어유치원으로 좁혀졌다. 9시에 출근하여 6시 퇴근 연봉도 나쁘지 않았다. 야심 차게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크고 명망 있는 영어유치원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2주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트레이닝 기간이 있는 게 이렇게 감사할 데가.. (나 포함 총 7명이 합격하여 트레이닝을 함께 받았는데 그중 나포함 3명이 트레이닝 기간 중에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2주 트레이닝하면서 문득 20대 때 대기업에서 일했었던 때가 생각났다. 그 당시 내가 일하면서 느낀 단 하나는 어느 분야든 '업계 1위 회사는 업무강도 또한 업계1위라는 것' 이었다. 그곳이 딱 그랬다. 처음 면접때와는 다르게 트레이닝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둘씩 늘어나는 업무와 업무의 강도들이 도무지 아이육아를 하면서 할 수 있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나와 함께 그만둔 선생님도 나와 같은 3살 난 아이를 둔 분이셨는데 그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미스였다면 충분히 그 힘듦을 감내하면서라도 업계최고의 영어유치원에서 일하면서 경력을 쌓아보고 싶었을 테지만 지금 나의 위치는 달라졌다. 일을 하고도 집에 와서는 육아와 살림이라는 일을 병행해야 했기에 내 몸과 체력에 맞는 일을 해야지만 롱런하며 일과 육아, 살림도 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곳에는 2주가 끝날 때쯤 일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고 나왔다. 아쉬운 건 없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업계최고의 영어유치원에 대해 짧은 기간 대략적인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기에 오히려 나에겐 값진 시간이었다. 직원들에게는 힘든 직장일 수 있지만 그곳에 다니는 아이들은 그만큼의 아웃풋을 끌어낼 수 있는 효과가 뛰어난 곳임은 분명한 곳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장단점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이 것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자세히 써보려 한다.)
그렇게 하고 나와 알아본 곳은 내가 아는 한? 아니 수도권 지역은 몰라도 내가 사는 지방광역시 기준에선 업계 2위에 해당하는 영어유치원이었다. 그곳에 면접을 가니 우선 분위기부터 너무 맘에 들었다. 첫 번째 곳이 학습적이며 조금은 엄격한 분위기의 유치원이었다면 이곳은 정말 인테리어부터 밝고, 컬러풀한 유치원 느낌이었으며 어느 아이들이 와도 좋아할 만한 밝은 이미지의 인테리어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플레이룸과 도서관에서도 아이들이 편하게 눕거나 편히 앉아서 볼 수 있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 또한 마음에 들어 할 분위기였다. 그곳에서 면접을 봤고 나는 그날 바로 일하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런 분위기에서라면 아이들이 너무 힘들게만이 아닌 즐겁게 영어공부를 할 것 같았고 나 또한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풀타임은 나에겐 무리였다. 여기는 트레이닝 기간은 따로 없어 바로 2월 말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2주째부터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침 내가 일을 시작하게 된 타이밍에 신랑이 지방에 가서 상주를 하며 일을 해야 하게 된 것이다. 신랑 없이 아침에 일어나 나 출근준비하고 아이등원시키고 일하고 6시 넘에 집에 와서도 혼자서 아이 밥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고 하다 보니 내 체력에 일주일이 지나자 방전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완전 방전이 되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했기에 원장님께 말씀을 드렸고 다행히 오후에 파트로 일할 수 있게 해 주셔서 나는 바로 다음날부터 오후 2시에 출근하여 6시까지만 일하는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할 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사실 아이를 키우는 집은 아침에 아이 깨워서 준비시키고 등원시킬 때까지가 전쟁인데 그 시간에 나도 신랑없이 혼자 출근준비를 하며 아이를 준비시키는것이 정말이지 케이오스가 이런 케이오스가 없었는데 이제 그 시간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눈도 못 뜨는 아이를 옷만입혀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들쳐없고 차에 태워 어린이집에 도착해 '엄마' 부르며 안간다고 우는 아이를 선생님께 떠맡기고 부랴부랴 회사로 갔다면 이제는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나도 눈을 좀 더 붙일 수 있고 아이가 일어나면 모닝허그에 잘 잤는지도 여유 있게 물어보고 아이랑 조금 놀아줄 시간까지도 생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도 다시 웃으면서 등원을 하게 되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또 감사했다. 이렇게 파트로 일할 수 있음에...
그렇게 바로 어제 7월 초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누군가는 풀타임도 아니고 고작 파트타임 갖고 힘들어하다니?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모두 다 다르기에 비교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인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주위엔 아직도 아이를 보며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엄마들도 많이 있고 그것과 별개로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선 직장어린이집이 아니라면 주위에 아이 하원부터 내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봐주실 분이 필요하다. 나는 다행히 친정엄마와 어머니께서 하루씩 번갈아가면서 아이를 봐주시고 계신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파트로라도 일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선 나는 파트타임을 하면서도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엄마와 어머니께서 도와주시기에 이만큼 가능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조차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어릴 때는 주말은 주말이 아니기에 워킹맘과 워킹대디들에게는 주말에도 회복과 쉼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5일 동안 일하고 나서 충전해야 할 시간이 아이 엄마 아빠들에게는 없다.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는 아이와 놀아줘야 하고 데리고 나가야 하며 이제부터 낮잠도 자지 않아 오롯이 하루종일 아이와 보내고 나면 주말 저녁은 주말이 아닌 또 다른 일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내가 경험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러니 사람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나 또한 반성하게 된다.)
여하튼 그렇게 나는 임신과 출산 후 5년 만에 사회에 복귀해서 5개월을 쉼 없이 일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쉼을 찍었다. 2주 전부터 버텨왔던 몸이 도저히 힘들다 하여 하루 병가를 내고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았다. 그리고도 집에 와서 다시 저녁까지 한숨 눈을 붙이고 나니 몸과 정신이 조금 회복이 되는 듯했다. 그리고 이렇게 앉아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여유조차도 없이 지내왔다. 머릿속에는 쓰고 싶은 글들, 글감들, 계획들이 많은데 막상 조용히 앉아 쓸 시간이 없었다. 새벽이나 저녁 늦게 조용한 시간이 글쓰기에는 가장 좋은데 일하면서 체력적으로 새벽시간에 일어나기도(마음은 항상 먹지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 늦게 자는 아이를 재우며 눈을 부릅뜨고 안 자고 버티기도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하루 쉼표인 오늘 오래간만에 글 쓰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어머님댁으로 하원한 아이가 신랑과 함께 왔지만 아이를 재우고 오늘은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병가를 낸 오늘 하루가 지쳐있던 나에게 체력적인 여유를 가져다주었다면 오랜만에 이렇게 글을 쓰는 이 시간은 나에게 정신적인 여유와 회복을 가져다주었다. 곧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여유있게 글 쓰는 날이 오길, 아니 그 날이 오도록 해야겠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