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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일 년 만에 ESOL Teacher 가 되다

by 해보름

뉴질랜드 학교(초등학교)에는 일주일에 한 번 라이브러리 타임이 있다. 라이브러리 타임은 말 그대로 도서관 시간으로 일주일에 한 번 학교 내 도서관에 가서 자유롭게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선생님이 한 권의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도 하고 빌리고 싶은 책을 빌려오는 시간을 말한다. 나는 이 라이브러리 타임을 제일 좋아한다. 책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영어로 된 책을 맘껏 볼 수 있다는 설렘과 즐거움이 내 세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집 근처 공공 도서관도 자주 가기도 하지만 학교에 있는 도서관은 아이들을 위한 책들 즉 아동용 도서들이 많아 주니어들이 처음 읽기 시작하는 커다란 그림동화책부터 시리즈로 되어 있는 챕터북, 소설책과 각종 과학, 동물, 환경, 나라, 문화 관련 책들까지 아이들의 수준에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라이브러리 타임을 하다 보면 현지 초등학교 아이들이 어떤 책들을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책들이 있는데 그런 책들을 읽어보면 재미도 있거니와 아이들이 어떤 흥미를 갖고 있는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들은 꼭 한 번은 읽어본다.


또 하나 내가 라이브러리 타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도서관에 가면 항상 친절하고 마음 편한 옆집 이모 같은 라이브러리언인 케시가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는 작은 키친이 있어서 아침에 수업 시작 전에 아침을 거르고 온 학생들을 위해 토스트를 구워주기도 하고, 수업에서 요리를 하는 수업이 있으면 이곳에 와서 같이 요리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그곳에 가면 항상 아이들에게 빵이나 과일도 주고 반갑게 맞아주는 케시가 있어 아이들도 좋아하거니와 나도 마음 편하게 자주 들르는 곳이다.




케시는 ESOL Teacher 이기도 해서 반에서 ESOL 수업하는 친구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정해진 시간에 와서 케시에게 이솔 수업을 받는다. (*ESOL(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s)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진행되는 영어 수업을 말한다.) 한 번은 그녀가 수업하는 ESOL 수업을 참관하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ESOL 과정 수업을 들었던 때도 생각나고 한국에서 아이들 영어 가르쳤던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수업에 관해 물어보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도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쳤었고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는 ESOL Certificate 도 갖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그렇게 충분한 자격이 되는데 리즈 너도 아이들에게 ESOL을 가르칠 수 있다면서 앞으로 자기 수업 참관을 오라고 이야기를 하며 자기가 교감과 교장에게 너의 이력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고맙지만 아직 내가 여기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정도는 아니니 우선 참관 수업을 하면서 배워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맡은 반 학생들의 ESOL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와서 같이 수업을 듣게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esol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정해져 있는데, 뉴질랜드에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부모가 영어모국어자가 아닌 학생들에 한해 모든 학교에서 추가로 영어수업을 듣게 해 준다. 처음에는 다들 외국인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부모가 모두 키위(영어가 모국어인 뉴질랜드인이나 영국인)인 경우는 많지 않았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유럽국가, 남미, 러시아, 아시아 등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아이들 (뉴질랜드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부모가 원어민이 아닌) 이 반에 3분의 1 정도는 차지했다. 이런 아이들에게 추가로 영어 수업을 듣게 하는 것이 학교의 ESOL 수업이었고 그 수업을 나는 아이들과 함께 참관하게 되었다.

20180724_112316.jpg ESOL 수업 시간에 ' exlpore'에 대해 브레인스토밍 한 것들


보통 한 텀(10주)을 기준으로 theme을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수업을 하는데 하나의 수업이 정해지면 4주 정도 걸려 한 프로젝트가 끝난다. 예를 들어 동물이 주제면 그것에 관해 같이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그중 자신이 마음에 드는 동물을 정해 그와 관련된 책을 찾아 직접 단어를 찾고 특징을 찾아 라이팅을 해보는 것이다. 내 전공이어서 그런지 반에서 하는 수업보다 영어를 가르치는 esol 수업이 참관하며 아이들을 돕는 것임에도 너무 재미있었다. 그렇게 참관을 한 지 얼마 지났을까 어느 날은 케시가 직접 수업을 해보라고 했다. 떨리긴 했지만 너무 좋은 기회이고 그런 기회를 준 그녀에게 너무 감사하여 나는 자료를 준비하고 수업준비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이들 앞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반에서 보조교사로 소규모의 아이들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뭔가 달랐다. 온전히 내가 전체 아이들을 이끌고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에 그리고 다른 과목이 아닌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에 긴장과 실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ESOL 수업 후 원어민 아이들을 상대로 실습하는 느낌이었고, 실제 현지 아이들과 수업을 통해 교감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수업을 해보고 한 두 달이 지났을까? 교감인 찰리가 나를 그의 사무실로 불렀다. 그러더니 너의 경력을 이미 이력서를 통해 알고 있지만 자격증을 갖고 와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음 텀부터 ESOL Teaching을 케시와 나누어서 맡아달라고 했다.


' 오, 마. 이. 갓~!!'


"정말? 다음텀부터 수업을 하라고?"

가슴이 요동쳤다.

"응, 넌 자격도 있고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력도 있으니 수업을 할 수 있을 거야."

내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수업참관을 하게 해 주고 직접 내 이야기를 해준 케시도 고맙고, 나에게 이렇게 직접 수업을 할 수 있게 해 준 찰리와 교장에게도 너무 고마웠다. 얼른 집에 가서 신랑에게 그리고 한국의 가족들에게 내가 드디어 학교에서 보조교사가 아닌 ESOL Teacher 로써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다음 텀이 되었고 내 시간표가 나왔다. 나의 ESOL 수업 시간표도 나왔는데 그 당시 나는 시니어반(5, 6학년)을 맡고 있었기에 ESOL 수업 또한 시니어 반 아이들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다니는 Public school 이긴 하지만 학생 수가 많은 학교가 아니어서 시니어반 클래스가 3반이 있었는데 모두 내가 수업을 들어가는 반이어서 아이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부담감이 덜 했다. 일주일에 2번 아이들을 3그룹으로 나누어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한 그룹당 수업시간은 20분 정도로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고 케시가 수업했던 주니어 학생들은 수업자료를 직접 책에서 찾아 일일이 프린트도 하고 자료도 만들어가면서 준비해야 했는데 시니어 수업은 리딩교재가 준비되어 있어서 그것으로 수업을 하면 되어 준비과정도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미리 아이들 수준에 맞는 리딩교재를 준비해 놓고 자신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을 그 레벨 안에서 고르게 한 다음 정해진 시간 동안 음원을 듣고 책을 읽게 한 다음 책 큰소리로 읽기, 어려운 단어 물어보기, 리딩 컴프리헨션 관련 질문하고 답하게 하기, 단어 찾기와 라이팅과 같은 읽기 활동들을 같이 진행하면 되는 것이었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ESOL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을 거의 없었기에 수업시간에 내가 따로 맡아서 수업하는 아이들(학습 능력이 떨어지거나 지능적으로 학습에 있어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 보다 더 어렵지 않았고 아이들은 반에서 수업하는 게 아닌 도서관에 와서 따로 수업을 하다 보니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재미있게 이야기도 나누며 수업을 할 수 있어서 나에게는 나와 아이들 만이 갖는 특별하고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이들도 나와 비슷하게 느꼈는지 수업을 하면서 친해진 아이들은 나에게 개인적인 질문들도 하며 마음을 열고 다가와 수업외적으로도 친밀함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나는 '카페가 아닌 학교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뉴질랜드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고, 내가 꿈꿔왔던 뉴질랜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까지 이루어냈다. 이것은 내가 자원봉사 보조교사로 채용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일어난 일들이었다. 뉴질랜드에서 학교를 나오지 않고 뉴질랜드에서 경력도 없는 내가 이렇게까지 정식으로 채용되어 일할 수 있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뉴질랜드 사회의 학력보다는 그 사람의 능력을 보는 문화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를 꼽자면 어느 나라에서도 통용되는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원할 때마다 이뤄내는 비법 중 하나인 '구하라 그러면 찾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는 성경 구절 중 하나인 이것이 진리가 아닌 듯싶다.


외국이라는 이유로,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외국에서 학력이나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원하는 일을 포기한 채 원하지 않고 힘든 일을 하며 보수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힘들게 외국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관해 묻고, 방법을 찾고, 계속해서 두드리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방법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묻고, 방법을 구하고 두드리면 답이 나올 것이고 방법이 보일 것이며 문은 열릴 것이다. 경험을 통해 얻었기에 이 진리를 나는 몸소 체험했고, 내가 체험했다면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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