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십 대, 이십 대 때는 몰랐다. 십 대 때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에서 자라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이십 대 때는 그런 결핍들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아등바등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려 했다. 업계 최고의 회사에서 꿈을 이루며 어쩌면 내 인생에 가장 화려할 수 있는 시간들을 보냈고, 동시에 욕심이 과해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한 시기였다. 30대 때는 어렴풋이 알게 되는 듯했다. 인생은 어느 회사 소속인지, 어느 가정에서 어느 부모밑에서 자랐는지, 그리고 어떤 남편을 만나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 그 자체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남편이 돈을 잘 벌어서 비싼 외제차 타고 명품쇼핑하고 골프나 여유 있게 치러 다니는 여자들, 부모 잘 만나서 좋은 집에 살며 부모덕에 좋은 직장까지 잘 들어간 사람들이 부럽지가 않았다. 아니 부럽기는커녕 자신이 일군 삶이 아닌 남편, 부모덕에 호사롭게 사는 사람들 오히려 안 돼 보였다.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이 그들의 삶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 눈에 멋지고 대단한 사람들은 스스로 돈도 벌고 공부도 하며 자립적으로 사는 사람들, 남편이나 부모에 의존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며 자기 스스로 자기만의 루트로 경제력을 갖춘 엄마들이었다.
나이 마흔이 되니 이제야 제대로 알겠다. 인생은 나와 같이 사는 그 누구와의 합산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나의 몫, 내가 해낸 것, 내가 일군 것들로 계산되는 철저한 개인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나름의 원리를 깨닫고 나니 정신이 번쩍 난다. 육아에서도 이 원리는 적용된다. 육아는 부모가 함께하는 것이다. 그것은 맞다. 그러나 배우자가 아이를 봐주니 나는 쉬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몫은 하루하루 매시간 계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계산은 언제 치러질까? 인생을 통튼 전체의 계산은 아마도 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되겠지만 육아에서의 계산은 아이가 크면서부터 나온다. 아니 매 시간 말로 하지 않아도 아이는 다 알고 있다. 우리 집은 내가 산후후유증으로 몸이 힘들기도 했고, 신랑이 워낙 아이를 좋아하고 잘 돌봐서 아이가 아빠를 더 따랐다. 나는 이 점에 있어 신랑에게 미안한 맘이 들긴 했어도 딱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양쪽 부모님들께서 가끔씩 도움을 주시긴 하지만 주 양육자인 우리가 잘 돌보고 있고 아이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잘 자라고 있으니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와 신랑이 함께라는 생각에서 오는 대단한 착각에서 온 생각의 오류였다. 물론 겉에서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부모와 아이가 알고 느낀다. 우선 신랑이 일하고 와서도 아이랑 놀아주고 재워주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놀아주니 신랑이 버거워한다. 아이도 아빠랑 둘이 밖에 나가서 노는 거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내가 같이 가지 않아도 아빠랑 둘이 간다고 한다. 잠을 잘 때도 엄마는 혼자, 본인은 아빠랑 자겠다고 한다. 고작 2살 된 아이에게서 이미 난 엄마로서의 나의 몫을 평가받고 있었다. 아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식겁하기 시작했다. 내 몫을 챙겨야 했다. 아니 챙기는 게 아니라 내 몫을 다 해내야 했다. 그걸 깨달은 후로 나는 신랑이 아이에게 잘해줘도 내가 내 몫을 다 하지 않은 날엔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부모가 함께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맞지만 각자의 인생에서 각자에게 부과된, 각자가 해야 하는 몫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내 몫을 다 해야 했다. 신랑이 아이랑 놀아줄 때는 부지런히 집안일을 해야 했고, 신랑이 야근이나 출장으로 자리를 비울 때는 그간 부족했던 나의 몫을 메꾸고자 더 부단히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놀아주었다. 이 원리를 알고 각자 자신의 몫을 다 해나가면 큰 탈이 없다. 그러나 나의 몫을 스스로 하지 않으려 할 때는 꼭 탈이 났다. 내 경험상 그랬다.
그리고 이 원리를 알고 나서부터는 누구와 비교를 하지 않게 된다. 누군가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키우든, 맞벌이를 하면서 힘들게 키우든 그건 내 알바가 아니고 내 계산이 아니다. 나는 나의 의무, 내가 해야 할 내 몫만 잘 해내면 된다. 그것을 해내는 데 있어서 남과의 비교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걸리적거릴 뿐이다. 그리고 바쁘다. 온전히 하루동안 내 몫을 해내야 하기에.. 나의 하루, 나만의 하루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오후 4시가 되면 끝이 난다. 그래서 아침에 늦잠을 자서 하루를 늦게 시작한 날이면 더더욱 바쁘다. 오후 4시 전까지는 온전히 나의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지만 아이하원 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아이에게 집중할 수가 있다. 요즈음 나의 루틴은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 준비시켜서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독서를 한다. 기본 30분 정도 읽어야 할 책을 읽고 책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을 노트에 적는다. 그리고 와닿는 부분에서 생각을 요하는 것이 있으면 나의 삶에 대입해 생각을 하고 그것이 글로 나오려 할 때는 바로 앉아 글을 쓴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보내고 운동을 한다. 요즘은 날이 추워 집에서 할 수 있는 근력운동을 한다. 30분간 근력 운동을 한 후 반신욕을 하고 나서 점심을 먹는다. 반신욕을 하면서 영어 유튜브 영상을 보며 영어 공부를 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영어 공부한 것을 노트에 정리하고 집 청소와 정리를 한다. 그리고 잠시 쉰 후 아이가 오기 전 장을 보러 갔다가 아이 픽업을 한다. 이렇게 온전히 나의 할 일과 집안일을 해놓고 아이를 데리고 와야 아이와 나머지 시간을 집중해서 잘 놀아줄 수가 있다. 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이를 보면서도 틈틈이 해야 하고 아니면 아이를 재우고 난 후에 나의 일을 해야 하기에 하루 스케줄이 꼬여버린다. 아이가 늦게 잠들 때는 하지 못한 채 같이 잠들어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기에 하루하루 나의 몫을 다해내기 위해서는 나의 자제력과 나의 통제력밖에 없다. 오늘 하루는 그냥 할 일 안 하고 넘어가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 없다. 그렇기에 온전히 나와의 전쟁이다. 루틴을 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살 때는 이렇게 하루하루 그냥 흘려보내며 살았다. 그러나 마흔이 되어 체계적인 책을 읽고 책에서 읽은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고자 매일 내가 세운 루틴을 하면서부터는 그 허투루 보낸 하루하루가 쌓여 나의 인생이 되고 그 인생의 마지막에 나의 계산서가 될 것을 알기에 허투루 살 수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하루도 안 빠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 루틴을 한 개 혹은 몇 개씩 빼먹을 때도 있다. 그래도 꾸준히 하루에 그날 못한 루틴은 다음날은 어떻게든 꼭 하려고 한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몫을 채우려 한다. 인생은 너와 나의 합산이 아닌 개인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