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물든 단풍이 절정이다. 해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항상 마음의 몸살을 심하게 겪는 내게 올 가을은 평온하니 이 또한 감사하다. 하루하루가 총소리 없는-무언의 아우성 같은 전쟁 속에서도 내 마음을 지켜내는 날이 늘어나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날들이 많아지니 이것은 나의 자랑거리나 나의 의지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선물임에 분명하다.
일부러 바스락 거리는 낙엽소리를 듣기 위해 낙엽이 쌓인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기온은 겨울인데... 청명한 하늘과 노랗고 붉은 단풍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늦가을의 정취.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달콤한 햇살이 나를 감싼다.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커피, 카페인을 건강상의 이유로 끊기로 결심하고 실천하기 시작한 지 2주째이다. 5일은 머릿속에 안개가 자욱한 듯 멍하고 깨질듯한 두통이 나를 힘들게 했다. 지금도 엄밀히 말해서 완전한 끊은 것은 아니다. 못 견딜 때-쌉싸름하고 그 깊은 맛이 그리워 디카페인 커피를 가끔 마시는 단계. 과도기를 잘 거치고 있다. 디카페인 커피나 허브티로 허기지고 질긴 습관의 고리를 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금단현상을, 중독의 위험을 이해하는 과정을 겪고 있으니 이 또한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과정일 것 같아 잃는 것만 있는 것은(내게 유일한 삶의 즐거움과 활력소)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격려하고 있다. 모든 중독의 고리를 끊어내려 지금 노력하는 모든 이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니 끊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단순히 좋아하는 기호라고 여기기에 그것이 내 삶을 지배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얼마 전 느꼈다. 나도 그 결심이 벼랑 끝에 서야(건강상 이유) 결심했으니... 나도 참 미련하다. 40년이 된 습관을 한순간에 끊어 내기가 참 힘들지만 그것을 계속 지속할 때 잃는 것이 너무 클 것 같아 독하게 마음먹었다. 가끔 나를 유혹하는 짓궂은 친구의 유혹이 있지만 잘 견디고 있으니 스스로 대견해 나를 격려하고 토닥이는 아침이다.
집 앞 공원을 걸으며 내 삶을 돌아본다. 믿음이, 신앙이 나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넓어지고 깊어지게 하는가 반문하며 찬찬히 나를 들여다본다. 성격, 기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지만, 몇 주전 목사님의 주일 설교 말씀에 쓰인 비유처럼 선풍기가 다른 것으로 변하지는 못해도 강풍에서 미풍으로, 산들바람으로 조절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으며 나도 이제는 거의 잔잔하고 부드러운 산들바람으로 단계가 전환됐음을 깨닫고 얼마나 기쁘던지! 혹자는 나이 들어가며 기운이 빠져서 그런 것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센 언니였던 내가 과거를 고백하면 주위 지인들이 믿지 않으니 그래도 바람직한 바람으로 순화되고 있으니 참 다행이다.
살짝 땀이 날 정도로 걷다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내 뺨을 스치는 찬바람도 모든 감각 기관으로 느껴지는 이 가을도 귀하고 귀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내게 더 풍성한 사랑을 주실 것을 간구했다.
날마다 날마다 내가 죽고 다시 새로운 나로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살 수 있기를 믿고 기도하는 또 다른 하루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며 세상이, 내가 좀 더 따뜻해질 수 있는 날을 꿈꾸는 평범한 내가 참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