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아이가 함께 생각하는 동화: 열다섯 번째 이야기
퇴근길, 한양성곽을 따라 내려가다 앉아있는 길고양이 한 마리와 주인의 손에 이끌려 걷는 강아지를 마주쳤습니다.
비탈진 돌담 위에서 고양이는 세상을 내려다보고, 강아지는 주인의 발걸음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을 관찰하며 추르와 참치캔을 얻어먹는 고양이와, 보호 속에서 안락을 누리는 강아지. 두 존재는 마치 안정적 행복과 의지적 자유의 두 철학처럼 서 있었습니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평온의 삶과, 니체가 말한 자기 극복의 삶처럼 말이죠.
폭우 속에서 고양이는 피할 곳을 찾아 헤매며 중얼거렸습니다.
“이 길을 선택한 건 나야.”
자유란 결국 스스로 책임을 짊어지는 고통스러운 선택이었죠. 그러나 고양이는 한쪽 눈을 잃고서야 세상을 다르게 보았습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따뜻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결코 구속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선택받음과 선택하는 사이에서 깨닫게 됩니다.
자유와 사랑의 구속은 대립할까요? 아니면 서로를 완성시키는 관계일까요? 이 동화는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한양성곽의 돌담은 낮에는 관광객으로 붐비지만, 밤이면 고양이들의 세상이 된다. 돌 틈에 몸을 웅크리고 달빛을 친구 삼는 고양이들. 그들에게 성곽은 오랜 집이다.
어느 날 저녁, 돌담 위에 앉아 있던 한 고양이가 산책 나온 강아지를 내려다봤다. 강아지는 번쩍이는 목줄을 하고 주인과 걷다가 돌담 밑에 멈추더니 오줌을 갈기듯 남겼다.
고양이의 눈빛이 번쩍였다.
“야! 여긴 내 영역이야. 왜 흔적을 남겨?”
강아지는 잠시 주춤하다가 꼬리를 흔들며 대꾸했다.
“나도 어쩔 수 없어. 몸이 시키는 거거든. 그리고 주인은 내가 남긴 똥은 치운다 하지만, 이건 담을 수 없어 그냥 두는 건데 뭐가 문제야?”
고양이는 꼬리를 탁탁 치며 비웃었다.
“너의 흔적이 남는 순간, 여긴 더 이상 내 공간이 아니지. 넌 주인의 보호 속에서 흔적을 남기고, 나는 그 흔적에 밀려나야 해.”
강아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건 내 존재가 지나갔다는 기록일 뿐이야. 난 주인이 나를 선택해 줬고, 그 안에서 존재해. 하지만 넌… 널 선택해 줄 사람이 있니?”
며칠 뒤, 여름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천둥이 성곽을 울리고, 사람들은 우산을 펴 들고 허겁지겁 벗어났다.
강아지는 주인 품에 안겨 집에서 그 비를 바라보고 있다. 따뜻한 수건에 몸을 말리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저 고양이는 지금 어디서 비를 피하고 있을까? 혹시 돌담 틈에서 온몸이 젖은 채 떨고 있진 않을까…”
그 시각, 고양이는 폭우 속을 헤매고 있었다. 돌담 밑, 처마 밑, 골목길… 어디에도 피할 곳은 없었다. 털은 무겁게 젖고 발은 진흙에 빠졌다. 고양이는 중얼거렸다.
“자유란 이런 건가… 스스로 선택했으니 스스로 감당해야지. 하지만… 누군가의 손길이, 이렇게 그리울 줄은 몰랐어.”
그 순간, 한 아이가 우산을 들고 지나가다 떨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하지만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사람의 손길을 갈망하면서도 쉽게 내어줄 수 없는 자유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비가 그치고 아이가 사라진 뒤, 고양이는 젖은 몸으로 성곽 위를 걸었다.
“강아지는 주인의 선택을 받아 살아. 나는 아직, 내가 믿고 의지할 집사를 스스로 선택해야 하지. 그게 내 길이야,. 먹을 걸 구하려면 결국 인간을 분석해야지.”
고양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 간식족이야. 저 젊은 여자는 가방에 추르 두 개를 들고 다녀. 다만 절대 한 번에 안 주고 조금씩 짜내며 날 놀려. 점수 80점.”
“저 아줌마는 참치캔을 꺼내. 캣맘 귀족이지. 향이 퍼지면 이 구역 고양이들이 줄을 선다니까. 점수 95점, 단점은 경쟁률이 높다는 거.”
“저 남자는 늘 날 만지려 하지만 먹을 건 한 번도 준 적 없어. ‘야옹아’ 하고 부르지 마! 빈손인 건 금세 알아보지. 점수 10점.”
고양이는 꼬리를 치켜세우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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