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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계몽령? 가족 비상사태 발생!

30초 동화, 별빛 동화 열세 번째 이야기

엄마 계몽령? 가족 비상사태 발생!


나는 집으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엄마가 분명 "6시까지 들어와!"라고 했는데, 친구들과 공원에서 놀다 보니 어느새 7시를 훌쩍 넘겼다.

조급한 마음으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른다.


"띠리링"


문이 열리는 순간, 항상 환했던 거실은 어둑어둑하고, 식탁에는 촛불을 켜놓은 한 여자가 앉아 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엄마다.




# 엄마의 선포

"기찬, 넌 지금부터 방에 감금이다. 화장실과 식사 시간 외에는 나올 수 없어!"

"뭐?! 엄마, 고작 1시간 늦은 거 가지고 이래?"

기찬이는 매우 억울해하며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는 나를 방에 보내며 말한다.

"몇 번이나 경고를 했는데 아빠도 너도 말을 듣지 않아. 이게 최선의 방법이야. 이 모든 게 너희 아빠 때문이야"

"이 모든 것이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니 아빠를 통 한 달 동안 본 적이 없다.

회사 공장이 동남아에 생기면서 아빠는 해외출장으로 한 달에 한번 집에 온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그런데 지금 회사에 회식이라고 밤 12시 넘어 들어온다고 했다. 엄마는 외할머니 칠순 장소를 정해야 되고 내 영어, 수학학원을 아빠와 상의해 정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게 미뤄졌다

"이래서는 안 돼. 강제로라도 집에 오게 해야 해"

그래서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계몽령을 선포했다.



# 아빠의 탈출작전

"1차 회식이 끝나기 전에 사라지는 게 가장 이상적이야!"

아빠는 지금 회식자리에서 집으로 가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부장님은 절대 집에 보내주지 않는 스타일.

부장님의 눈치를 보며 기분도 맞추면서 집으로 갈 생각을 요리조리돌리고 있다.

그래 이때다! 부장님이 화장실 간 사이 직원들에게 눈인사를 남기고 식당 뒷문을 통해 빠져나가려 한다.

그 순간 웨이터와 부딪히며 접시를 와장창! 모두의 시선이 아빠에게 쏠리는데, 부장님이 “어디 가나?” 하며 다가온다.

바로 지금이야! 아빠는 전력 질주를 한다. 최소한 밤 10시까지는 들어가야 계몽령이 해지될 수 있다.


집에서는 엄마가 계몽령의 추가 조항을 발표한다.

"만약 아빠가 밤 10시 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계몽령은 7일 연장된다!"

기찬이는 깜짝 놀란다. “뭐?! 일주일 동안 방에 갇히라고?”

기찬이는 핸드폰으로 아빠에게 연락을 해본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왜? 전화 안 받지? 아예 안 들어올 생각인가 보네" 엄마의 눈이 찢어지면서 빛이 반짝 났다.


10시 전에 들어가려면 택시를 잡아야 하는데 빈차가 없다.

"아빠, 10시 전에 와야 해! 안 그러면 계몽령 7일 추가!" 아빠는 결심한다.

두 손을 번쩍 들고 자리에서 뛰면서 택시를 가까스로 잡는다.

"도로에서 춤추세요? 위험해요!"

아빠는 민망한 듯 웃으며 차를 탄다.

집 앞에 다다른 아빠. 시간이 9시 59분이다. 계단을 뛰어올라가 호흡을 가다듬고 현관 비밀번호를 누른다.

"띠리링"

문이 열리는 순간, 어둑한 거실과 촛불이 켜진 식탁.
엄마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다. 기찬이는 방문을 살짝 열고 아빠를 바라본다.

"10시 1분이야. 지금부터 계몽령이 시작된다"



# 계몽령의 비밀

1분이 지났을까 정적을 깨는 현관 벨 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터벅터벅 현관문 쪽으로 간다.

"누구세요?"

"나야!"

문을 열자 외할머니가 들어온다. 엄마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엄마…? 이 시간에 여기 웬일이야?"

외할머니는 신발을 벗으며 한숨을 쉰다.
"요즘 너가 계몽령을 선포했다길래, 이러다 나처럼 7일을 넘길까 봐 확인하러 왔다."

기찬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혼자 말한다.
"엄마가 외할머니한테 배운 거였어?!"

외할머니는 거실 한가운데로 걸어가더니 촛불 앞에 앉는다.

외할머니는 어쩌면 계몽령의 원조일지 모른다. 외할아버지가 술 먹고 매일 새벽에 들어오는 것을 두고보다 계몽령을 선포한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바로 긴급 가족회의를 소집합니다"

아빠는 긴급 담화문을 양복에서 꺼내 TV에서 대통령이 읽는 것처럼 단정한 자세로 앉는다

"존경하는 우리 가족 여러분, 그리고 국민… 아니, 기찬이와 아내여!

현재 우리 가족은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계몽령으로 인해 아들은 감금 상태에 놓였으며,

저는 회식장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탈출하였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천천히 입을 연다.

"여보, 난 이 집을 운영하는 사장이 아니라 가족이야."

아빠가 멈칫한다.

"기찬이 시간도 지키지 않고, 당신도 가족과의 약속을 계속 미루고… 나는 우리 가족이 이렇게 멀어지는 게 싫어."

엄마는 한숨을 쉬더니 이어서 말한다.
"혼자 모든 걸 결정하고, 챙기고, 책임지는 것도 지쳤어."


외할머니가 엄마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한다.

"너 기억하니? 너희 할아버지가 맨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서, 내가 7일 동안 방에 가둬놨던 거."

기찬이는 깜짝 놀라며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도 방에 갇혔었어?"

"그때 난 고작 10살이었지…"

외할머니는 촛불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근데 계몽령이 끝나고 나서야 깨달았어. 진짜 중요한 건 벌이 아니라 대화였다는 걸."

"니 외할아버지가 마지막 날 내게 그랬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네 말을 들었을 거야’라고 말이야"


아빠는 말없이 엄마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한다.
"미안해." 그 한마디가 방 안의 공기를 바꾼다.

'엄마가 괜히 화낸 게 아니었구나. 나도 약속을 안 지켰으면서 억울하다고만 생각했네.'

기찬이는 방문을 열고 나온다.

"엄마, 나도 미안해. 이제부턴 늦지 않을게."


외할머니는 엄마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한다.

"너도 이제 알 때가 되었지? 계몽령은 해결책이 아니야."

엄마가 그제야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아빠와 나를 바라본다.

"그래, 하지만 계몽령 해제 조건이 있어."

"뭔데?"

"배달로 먹을 거 시켜서 외할머니 칠순 장소도 지금 다 같이 정하고, 기찬이 학원도 정하자! 대신 설거지와 정리는 당신이 해."

아빠와 기찬이의 표정이 환해진다.

"그래, 내 칠순 잔치가 계몽령 해제 기념 파티가 되겠구먼!"

외할머니가 크게 웃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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