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그러니까 이건 다 친절한 공무원 아저씨 때문이다. 서울시에서 보낸 메일이 스팸 메일함으로 가지 않고 받은 편지함으로 안착한 탓도 있다. 메일은 ‘주말 농장 신청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흙을 싫어해 놀이터에 데려다 놓으면 발을 동동 굴렀다던 내가, 개미 한 마리에도 솜털이 꼿꼿이 서는 내가, 주말농장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하지만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일들을 얄궂게도 해 내는 날이 있다. 주말 농장을 신청한 날이 그런 날이었다.
메일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집과 밭이 멀리 떨어져 있어 매주 방문하기 어렵다는 사연을 늘어 놓으며 누군가 나의 무모한 열정을 말려 주기 바랐다. 전화를 받은 공무원 아저씨는 스프링쿨러가 얼마나 팡팡 돌아갈 것인지와 상추의 생명력이 얼마나 굳건한지를 매우 친절히 설명했다. 1구획은 너무 적으니 기왕 한다면 2구획을 신청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설렘에 콧구멍을 벌름이며 땅값을 이체했다. 모종값을 보낼 때는 두려움이 목덜미를 근질였다.
공무원 아저씨의 말이 반 정도만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밭일용 장화를 신고 상추밭에 서 있었다. 스프링쿨러는 기가 막히게 밭 중간까지만 물을 뿌렸고 상추 모종은 갓 태어난 아기의 팔뚝 살처럼 연약했다. 물뿌리개에 물을 담아 나르며 상추에게 하소연했다. ‘나는 정말 너희가 혼자서도 잘 자란다는 말을 철석 같이 믿었거든. 얘들아, 너네 자꾸 나한테 뭘 요구하면 안 되는 거거든.’ 문제는 상추 중 누구도 공무원 아저씨의 배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순진하고 무지한 피해자였음을 상추들이 알았다면 좀 더 힘을 내서 자라주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열심히만 심어 두면 저 혼자 뿌리 내릴 줄 알았건만 새끼 손가락 만한 상추들은 시위하듯 시들어갔다.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겨우 심은 상추 모종 주변을 다시 호미로 파냈다. 비료를 주기 위해서였다. 시든 잎은 솎아내고 파낸 흙 아래 비료를 뿌린 후 다시 흙으로 덮는 일을 반복했다. 스물 네 개의 상추 모종을 심었으니 내가 호미로 파낸 도넛 모양의 땅도 스물 네 개였다. 스물 넷. 이 소박한 숫자가 얼마나 나를 고되게 했는지!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파스 한 통을 탈탈 털어 붙였다. 두 번째 손가락 마디는 도대체 왜 아픈 건지, 손등에 멍은 왜 생겼는지, 발목에 상처는 언제 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느 밤에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에 누웠는데 그날따라 베개 높이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불편한 베개 때문에 노곤하게 덮쳐오는 피로에도 새벽 네 시가 되도록 뒤척였다. 베개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이튿날에야 깨달았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고 돌아온 밤, 익숙했던 베개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일의 시작은 공무원 아저씨였다. 하지만 요즘 나는 이 익숙하지 않은 세계가 퍽 마음에 든다. 주말마다 두 개의 밭 사이에서 상추를 노려 보며, 도넛 모양으로 흙을 헤집으며, 온 몸을 휘감는 파스 냄새의 낯섦을 느끼며 다시금 콧구멍을 벌름거린다. 어느샌가 팔이 까맣게 탔다. 나는 상추를 공격하는 무당벌레의 기하학적인 등짝 무늬를 기억하게 되었다. 파릇파릇한 상추를 한 장이 아닌 세 장씩 겹쳐 먹으면 재벌 4세쯤 된 기분이다. 그러니까 상추 한 장 올리고, 한 장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