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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 Jul 25. 2021

턱 빠진 날의 단상

일상에세이

  

  ‘턱’ 하고 턱이 빠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턱관절 사이를 지탱해야 할 디스크가 내려앉았다. 언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걸까? 턱에서 하이힐 뒷굽 소리가 또각또각 날 때 알아차렸어야 했나? 아니, 관자놀이에서 모래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 눈치채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턱이 보내는 구조 신호를 끈질기게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 아둔함의 결과로 주저앉은 디스크를 받쳐 들고 대학 병원으로 내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방문한 대학 병원은 소견서 없이도 진료 가능한 은혜로운 곳이었다. ‘은혜롭다는 표현은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좀 유명하다는 구강내과는 두세 달 후에나 초진이 가능한 상황에서 당장 방문 가능한 대학 병원의 존재는 그야말로 은혜로웠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학 병원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설문 조사에 응했다. 그리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레지던트 선생님을 만났다. 또 기다리기 시작했다. 두세 시간을 기다린 끝에야 교수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헤어진 연인을 이렇게 애틋하게 기다렸다면 만나고도 남았을 만큼의 간절함으로 나는 엑스레이 촬영을 기다렸고, 물리치료를 기다렸고, MRI 촬영을 기다렸다.    


  

  태어나 처음 보는 MRI 기계는 밝은 관 같았다. 통 안에 들어가기 전 선생님은 내 손에 버튼을 꼭 쥐어 주었다. 간혹 본인이 폐소 공포증인 것을 모르고 있다가 호흡 곤란이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안고 들어 간 MRI 기계 안에서는 천둥소리가 났다. 천둥 치는 소리에 맞춰 어느 박치가 드럼 연주를 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눈을 꼭 감고 통에서 ‘비트 주세요’를 외치다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환자분, 입 다무세요!” 초면인 MRI 기계 안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생각보다 쉽게 잠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모든 기다림을 넘으며 졸음과 싸운 후 퀭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집을 나선 지 일곱 시간이 되어서야 도착한 물리치료실에는 나보다 더 퀭한 얼굴을 한 선생님 몇 분이 계셨다.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니 주욱 늘어선 치과 의자가 보였다. 차가운 치과 의자에 등을 붙이면 어느 때보다 온기가 간절해진다. 하지만 불행히도 퀭한 선생님들은 친절할 시간이 없어 보였다. 5분에 한번 꼴로 타이머가 ‘삐빅’ 울렸고 두 명의 선생님은 열 명이 넘는 환자들 사이를 날렵하게 오가며 미션을 완료해 갔다. 그곳은 마치 물리치료 공장 같았고 단순 반복되는 공정에 선생님들은 영혼을 빼앗긴 듯 보였다. 찜질이 끝난 환자에게 기다리라고 하더니 팩을 수거하지 않고 새롭게 타이머를 누르는가 하면 전기 자극이 오지 않는다는 환자에게 어차피 남은 기계가 그것뿐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며 곤혹스러워하기도 했다. 턱관절 운동법이 적힌 종이 한 장을 주면서는 고개를 주욱 내밀고 바른 자세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나는 네 단계의 물리 치료 중 고주파 치료만을 남긴 어느 할머니 곁에 누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물리 치료실 단골이 틀림없었다. 사이렌처럼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한껏 높여 진두지휘를 시작했다.     


“저기, 선생님! 나 지금 타이머 울렸는디? 나 아적 고주파 안 했응게, 빨리 고주파를 해야 쓰겄는디? 쩌기 쩌짝에 고주파 기계 아녀?”    

 

턱에 무거운 찜질기를 올려놓은 채 환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퀭한 얼굴의 선생님은 담담하게 답했다.     


“환자분, 순서대로 진행해 드립니다.”

“아니, 그것은 나도 아는디 내가 레이저까지만 혀 가지고 이제 고주파를 해야 하는디?”

“네, 기다리세요.”

“쩌기 고주파 있는디.”


할머니와 선생님의 대화는 시위처럼 팽팽했다. 물러섬 없는 대화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었다.     



  물리치료실의 무료한 적막을  ‘고주파 전투 선생님의 침묵으로 싱겁게 끝이 났다.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불편한 치과 의자에 꼼짝없이 누워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데 레이저 치료를  때는 그마저도  수가 없다. 마이콜한테서 빌려왔다고 밖에 설명할  없는 작은 안경을  위에 씌우기 때문이다. 깜깜해진 물리치료실 안에서 마스크로 코와 입마저 막히자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뮤지컬 ‘! 캐롤공연에서 앙상블로 열연하던 배우였다.  보이지도 않는 무대 구석에서 어찌나 열심히 춤을 추던지 주연 배우가 눈에  들어올 지경이었다. 공연이 끝난  캐스팅 보드에서 열다섯 명의 앙상블 사진을 뜯어보게 만들었던 배우였다. 그로부터   , ‘록키호러쇼라는 뮤지컬에서 전의  배우를 다시 만났다. 수년이 지났음에도  배우는 여전히 누구보다 크게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나에게는  번째 공연이지만 그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일 텐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자신을 태울  있는지 궁금했다. 후에도  번이나 공연장을 찾았지만  배우의 사전에 ‘타성에 젖는다  따위는 없는 듯했다.    


 

  ‘턱’ 하고 턱이 빠졌다. 나는 주저앉은 디스크를 받쳐 들고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직업의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한다. 8년 전의 내가 물리치료실에 누워 있었다면 차가운 대우에 상처 받았을 것이다. 직업의식 없는 의사들이라고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똑같은 일상을 살아내면서 타성에 젖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면 ‘나의 매일이 곧 누군가의 하루’라는 것을 되뇐다. 타성에 젖은 사람을 일깨우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어제와 다른 무엇인가를 만들어 주면 된다. 예컨대, 함박웃음이나 큰 소리로 전하는 감사 같은 것들 말이다. 8월이면 다시 병원에 간다. 선생님들을 만나면 나의 하루를 그들의 매일에 밀어 넣을 것이다.


“자, 선생님 잠깐 여기를 좀 보실까요?” (번쩍)



사진=영화 <맨 인 블랙>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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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꿀Tip - 턱관절 편


1. 턱관절 장애가 생기는 이유는?

- 물론 교통사고 후유증이나 노화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의 경우는 식상하게도, 역시, 그럼 그렇지, 생활 습관 때문이라고 합니다.

- 한쪽 방향으로 누워서 자기, 딱딱하거나 질긴 음식 즐겨 먹기(엿, 마른오징어 러버), 평소 턱을 긴장 상태로 유지하기(자기도 모르게 힘 주기), 이 가는 습관(저 이 안 갈아요...), 삼겹살 다섯 점씩 넣어서 무지 크게 쌈 싸 먹기, 거북목이나 굽은 어깨를 유발하는 나쁜 자세 등 누가 봐도 턱에 안 좋을 것 같은 이유가 쌓이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


2. 어떻게 하면 빨리 알아차릴 수 있나요?

- 입을 벌릴 때 딱 소리가 나거나 턱에서 모래 소리(맷돌 가는 소리)가 들린다면, 평소 원인 모를 두통이 있다면, 내 턱관절에게 안부인사를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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