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오늘은 3.6km를 달렸다. 원래 3km만 달리는데 600m 정도 힘을 더 내봤다. 지난 6월 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일주일에 3일 이상 달리려고 노력 중이다. 원래 그전에는 1년 반 정도 헬스를 했었는데, 그러다 유럽 여행도 다녀오고 헬스장 이용 기간도 끝나면서 흐지부지하게 헬스는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근 손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났었는데, 마침 올해 여름 러닝 붐이 일어서 유행에 민감한 나는 거기에 합류하기로 했다(!).
여름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코끝 시린 겨울이 될 때까지 한 가지 활동을 주기적으로 해낸 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이것저것 도전했다가도 질려서 그만두는 일이 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로 달리기를 하는 아파트 단지의 계절 변화를 열심히 두 눈으로 담고 호흡하는 재미가 있더라. 평소에도 자연을 좋아해서 그런지, 계절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나무들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야외 운동의 즐거움이 분명 있었다.
6개월 가까이 러닝을 하면서, 사실 페이스가 줄어들거나 누군가와 같이 크루를 맺어 함께 달릴 만큼의 실력자가 되진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친구들만 보는 인스타 스토리에 인증 샷을 올리기도 조금은 민망한 페이스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3km를 달리면서도 여전히 숨이 가빠서 걷고 달리고를 반복한다. 그래도 지금은 최대한 한 번만 쉬었다가 점점 길게 달릴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아무튼 이렇게 3km를 온전히 달리지 못할 때마다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달리는 자체에 의미를 두면 되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다가, '이보다 더 잘 달릴 수 없겠어?' 하며 스스로를 혼내기도 한다.
페이스가 몇 분 대가 나오든 달렸다는 행위 자체에 의의를 두는 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남들은 3km쯤은 쉬지 않고 달린다던데...' 하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에 집중하는 운동이 되었으면 좋겠다. 땀을 잔뜩 흘려서 빨래를 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옷들, 헐떡이는 숨, 그리고 이전에 비해 덜 접히게 된 옆구리살과 이전에 비해 줄어든 턱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달리기 전과 비교해서 놀라울 정도로 상쾌하고 심플해진 나의 머릿속. 아무리 천천히 달리더라도 보통 1km 정도를 넘어서면 이미 잡생각과 걱정은 정말 많이 사라져 있다. 그래서 일부러 달리러 나올 때 걱정을 잔뜩 안고 나와서 음악조차 듣지 않고 달리는 데에만 집중한다. 공기 중으로 땀방울이 증발하듯, 내 걱정거리가 실시간으로 증발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짜릿함 때문에 계속 달리게 되는 것 같다.
이쯤 되면 그깟 페이스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나 자신을 매사에 너무 엄격하게 대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술한 수많은 변화가 내가 잘 달렸다는 걸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또 무엇보다, 오늘같이 칼바람이 부는 영상 3도 날씨에 패딩을 껴입고 땀을 흘리며 달리는 나의 실행력과 정신력을 칭찬해 주려 한다. 보여주기 위한 패션 러닝이 아닌, 진심으로 달리는 순간이 좋아서 달리는 내가 이 시대의 진정한 러너 아닐까!
(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여전히, 언젠가 3km 정도는 한 큐에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