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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옴표 필름 May 06. 2023

백수에서 소규모 프로덕션 대표가 되기까지

오직 내 힘만으로 일을 구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사업자 내는 거, 그거 G마켓 가입하는 것 만큼 쉽다. 처음 사업자를 내기 위해 이곳저곳 정보를 찾아봤을 때, 지인분이 하셨던 말씀이다. 실제로 네이버에 검색만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블로그가 넘쳐났고, 블로그에서 하라는 대로 국세청 홈텍스에 들어가서 회원가입을 하고 따라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업자 '등록'까지는 말이다. 문제는 이제 앞으로 이걸로 계속해서 돈을 벌어서 먹고 사는 게 가능해야 한다.


  내가 처음 퇴사를 결심했을 때만 해도, 그냥 한 일 년 정도 프리랜서로 살아보려고만 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회사 생활이 싫어서 도망치듯 나왔기 때문에 다시는 죽을 때까지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긴 했다. 그래도 쉴 만큼 쉬어도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본 뒤에는 언젠가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퇴사할 때의 마음만은 누구보다 비장했지만, 이렇다할 큰그림과 비전을 가지고 퇴사한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콘텐츠 회사에서 2년, 교육회사에서 7개월, 광고대행사에서 1년을 근무했다. 회사가 콘텐츠를 제작하는 목적은 조금씩 달랐지만, 나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영상'을 만드는 PD 역할이었다. 회사 세 곳을 다니며 유튜브 예능 콘텐츠, 광고 콘텐츠, 웹드라마, 카드뉴스 제작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보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대학교에서는 영화를 전공하고, 다녀본 회사는 전부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주변 지인들도 대부분이 영상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 뿐이었다. 광고대행사에 다니고 있을 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 선언을 하는 지인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다 알게 된 동료와 함께 나와서 사업자를 낸 케이스, 영화과를 같이 다니다 졸업한 뒤에 다시 만나서 사업자를 낸 케이스, 그냥 혼자 나와서 낸 케이스 등등. 사연도 다양하고 모인 구성도 다양했다.


  나의 경우에는 마지막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 퇴사를 반 년 정도 앞둔 시점부터 전 직장동료를 통해 조금씩 외주를 받아 작업을 시작했었다. 처음 받아 본 외주는 유명 인플루언서의 개인 유튜브 채널 영상 편집 일이었다. 인플루언서 분이 촬영을 해서 파일을 보내주면 나는 다운받아서 편집을 했다. 다행히도(?)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 중이던 시절이라 가능했다. 근무 시간에는 회사 일을, 근무 시간 이후에는 외주작업을 했다. 그래서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다. 잘 시간이 모자라서 몸이 힘들었지만, 월급과 외주 페이를 동시에 받으니 돈은 꽤나 쏠쏠하게 모였다. 어떤 날은 회사 업무를 마친 뒤에 앉은 자리에서 곧바로 외주 작업을 시작했는데, 일거리가 많아서 밤을 새고 정신을 차려 보니 다시 해가 떠 있었다. 그러면 다시 회사 일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가끔씩 회사에서 촬영을 나갈 때도 있었는데 아예 잠을 한 숨도 못 자고 촬영장에 갔던 적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큰 맘 먹고 퇴사를 한 이후에는, 계속해서 인플루언서 영상 편집을 했다. 다행히 주1회 업로드되는 꾸준한 콘텐츠라서 월급처럼 일정한 페이를 매달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받았던 월급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페이였기 때문에 다른 일을 더 구하고 싶었다. 편집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감사한 일이긴 했지만, 그동안 다녔던 회사들에서는 좀 더 큰 규모의 작업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욕심이 나기도 했다. 회사에서처럼 직접 프로젝트성 일을 받아서 기획안도 쓰고 현장에 나가서 연출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려면 나를 알리고, 나의 가치를 어필해야 했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지금 나의 니즈가 뭔지 아무도 모른다. 그동안 내가 회사를 다니며 좋은 포트폴리오를 쌓았던 건, 내가 다녔던 회사의 이름으로 받은 일이었다. 그걸 나와 내 동료들이 내 일처럼 열심히 해냈기에 좋은 포트폴리오로 남길 수 있었지만, 사실 그건 어디까지나 그 회사의 일이었다. 나는 회사 사원증을 벗어던진 신분에서 내 몸뚱이 하나만으로 어떻게, 얼마나 일을 받을 수 있게 될지 실험해보고 싶었다.


내 힘으로 일을 구하려면, '나'를 적극적으로 영업해야 한다

  퇴사하기 전에, 큰그림을 그려보았다. 우선 퇴사하는 날 가장 먼저 개인 인스타그램에 '나'를 영업했다. '나는 이제 자유의 몸이에요, 그러니 모두들 나에게 일을 한번 주시겠어요?' 라는 메시지를 담아 인스타에 글을 올렸다. 스토리로 올리면 안 된다. 보는 사람만 보고, 휙 넘겨버리는 사람도 많을 거고 무엇보다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자기 어필에 서툴고 수줍은 내향형 인간이지만 이럴 때는 SNS 공간에서 나댈 줄도 알아야 한다.


  업로드할 사진은 뭘로 고르고, 워딩은 뭐라고 써야 사람들이 잠시라도 스크롤을 멈춰서 내 글에 주목해줄지 고민했다. 다행히 나는 인스타 피드에 무언갈 화려하게 자주 올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영화과 동문들, 직장동료들과 꼬박꼬박 맞팔을 해왔기 때문에 내 인스타 속 인맥풀(?)은 나름 풍부한 편이었다.



  그동안 꽤 나쁘지 않게 살았던 건지, 다행히 여러 지인들로부터 응원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그리고 전 직장동료분께서 마침 편집자를 구하고 있었다며 연락을 주셨다. 백수인 내가 다행히도 한동안은 굶어 죽지 않고 돈을 벌 수 있게 됨에 굉장히 감사한 일이었다. 처음 연락을 주셨던 직장동료분께 프리랜서로 살아가니 어떤지,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지 등의 조언도 구하고 경험담도 많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아무 것도 모르고 계획 없이 퇴사했던 나를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셨던 귀인이라고 생각이 든다.


  혹시나 프리랜서 PD나 편집자, 혹은 영상 프로덕션을 창업할 계획이 있다면 꼭 묻고 싶은 게 있다.


  첫 번째,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연락해서 일을 줄 수 있는 동종업계 지인들이 많은가? -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이 업계는 정말 정말 인맥 사회다. 내가 영화과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콘텐츠 만드는 회사를 세 군데나 다니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작점부터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어필하는 건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자주 연락하고 지내지 않았더라도 내가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어떤 성향인지를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일을 구하는 게 훨씬 수월하고 일의 퀄리티도 좋다.


  두 번째, 나라는 사람 혹은 내 작업물을 SNS에 꾸준히 어필할 자신이 있는가? - 나는 위에도 말했다시피, 남들 앞에 나서기까지 용기가 필요한 내향인이다. 사실 나는 회사에 다닐 때 내 작업물을 SNS상에 그렇게 자주 어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언제나 일에 애정을 갖고 열심히 하긴 했지만, 굳이 내가 하는 일을 어필한다고 해서 나한테 콩고물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회사는 브랜딩이 잘 되어있고 좋은 일을 따내는 건 사실 내 역량과 크게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 밖에 나와서 독립하게 되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내가 어떤 작업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꾸준히 어필해야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TVCF를 찍는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크리에이티브해서 모두의 레퍼런스가 될 만한 콘텐츠를 만든 것도 아닌데 SNS에 자랑하는 게 너무 쑥스러웠다. 누가 나를 재수 없다고 생각하며 언팔하면 어쩌지, 하는 소심한 생각도 항상 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달리지 않았는가? 이게 나의 커리어를 알릴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인지 아닌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나는 실제로 내 SNS에 꾸준히 어필함으로써 새로운 지인으로부터 새로운 일을 받은 적이 제법 많다. 그리고 나 말고도 SNS에 자기 자신에 대한 무언가를 자랑하는 사람은 차고 넘쳤다. 조금은 뻔뻔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 글을 시작으로 내가 영상 프로덕션을 창업하고 오늘이 되기까지 겪었던 에피소드나 감상,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수많은 고민들에 대해 계속해서 글을 써보려 한다. 누가 읽어줄 지는 잘 모르겠지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갓 퇴사한 3년 전의 나는 누군가의 이런 진솔한 경험담 하나하나가 굉장히 소중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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