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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옴표 필름 May 27. 2023

프리랜서가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

브랜딩 첫 걸음마 떼기 - 회사 이름 짓기와 로고 디자인

  2년 전, 퇴사 후 백수에서 프리랜서가 되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만의 업무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였다. 여러 회사를 다니며 경험했던 시스템을 곱씹으면서 1~2인 기업이 따라하기 좋은 게 뭐가 있을까 떠올려보았다. 특별한 건 없지만 정리해보자면 업무용 이메일과 웹하드는 구글로, 작업 스케줄러는 타임트리로, 영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정리는 인스타그램과 어도비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활용했다. 그리고 영상 작업 및 기획안 문서 작업을 위해 어도비와 마이크로소프트 정기 결제를 했고, 이외에도 BGM 구매를 위해 아트리스트를, 유료 폰트 사용을 위해 산돌구름을, 그리고 스톡 사진/비디오 및 모션 소스 사용을 위해 엔바토를 정기 구독했다. 영상 일 특성상 촬영본을 담은 외장하드를 퀵으로 주고받을 일이 많아서 카카오T 비즈니스에 가입했고, 업무와 상관은 없지만 사업자가 되었기 때문에 남들도 다 한다고 해서 노란우산까지 가입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회사 돈으로 누렸던 사소한 것들이 홀로서기를 하자마자 전부 내돈내산이 되었다.



- 퇴사 전부터 가장 먼저 진행했던, 메일 서명 만들기


  많고 많은 일 중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메일 서명을 만드는 거였다. 업무와 직결된 일이었고, 이미 퇴사 전부터 개인 메일로 외주 작업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메일 서명을 만드는 게 가장 시급했다. 그동안 회사에 다닐 땐 누군가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마다 본문 가장 마지막에 내 소속 회사와 직급, 연락처, 그리고 회사 로고가 함께 포함되어 전송됐다. 그걸 이제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 했는데, 우선 직급이 가장 고민이었다. 영상 편집을 하니까 'Editor'가 좋을까? 하지만 편집 말고 연출도 하는데 'PD'가 좋지 않을까? '감독'은 왠지 너무 엄근진이고.. 근데 그보다는 더 멋있고 크리에이티브해 보이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Contents Creator'는 어떨까? 등의 고민을 반복했다. 결과적으로 주로 나와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쉽게 알 수 있도록 전 직장에서와 똑같이 그냥 'PD'가 되기로 했고, 사업자를 내기 전까지 이름(+PD), 연락처, 이메일 주소만 심플하게 적은 메일 라벨을 유지했다.


초창기 시절의 내 메일 서명이다. 사실 직전 회사 메일 서명을 거의 따라했다.


  보통이면 회사 로고나 주소가 함께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니 허전했다. 주소는 그렇다 쳐도 로고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텍스트만 가득한 이메일 본문 속에서 나를 한 번 더 어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메일 서명란인데 말이다. 그래서 이후에 사업자를 내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 역시 메일 서명을 수정하는 일이었는데, 로고와 포트폴리오 홈페이지 주소를 넣는 것만으로도 제법 뭔가 있어 보였다. 나와 내 회사를 브랜딩하기 위한 첫 단추였던 것이다.



- 아직도 브랜딩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름이랑 로고를 만들자!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처음 가입할 때마다 닉네임을 짓는 게 힘들었다. 그냥 빨리 가입하고 게임을 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아이디어가 안 떠올랐다. 닉네임은 보통 한번 지으면 바꿀 수 없거나 나중에 큰 사이버머니를 투자해야 했고, 현실 친구든 사이버 친구든 다들 나를 닉네임으로 부를 거기 때문에 신중하고 재미있게 짓고 싶었다. 근데 한 번도 내 맘에 쏙 드는 신박한 닉네임을 지어본 적이 없었다. 보통 생각이 잘 나지 않아서 눈 앞에 있는 아무거나를 닉네임으로 지었는데, 예를 들면 게임 중이었던 PC방이 마침 당산역에 있는 곳이면 '당산역'으로 닉네임을 짓곤 했다. 늘 이런 식이었다.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서 처음 만들어본 내 회사 이름을 지을 때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이었다. 고민이었다고 했지만 사실 10분 내로 지었는데, 어차피 길게 고민해도 신박한 네이밍이 안 나올 것 같아서 머리 쓰지 않고 만들기로 했다. 회사 이름이 '따옴표 필름'인 이유는, 사업자를 내기 전 함께 작업실을 썼던 선배의 사업체 이름이 문장 부호와 관련된 영문 네이밍이었는데, 돈독한 관계이자 같은 세계관(?)을 이어가겠다는 의미에서 유사한 의미의 한글 버전인 '따옴표'로 지었다. 그냥 '따옴표'라고만 하면 뭘 하는 회사인지 알 수 없으니 단어의 앞이나 뒤에 어떤 업체인지 알 수 있는 수식어가 필요했다. '스튜디오 따옴표' 혹은 '따옴표 스튜디오', 아니면 '따옴표 랩', '따옴표 프로덕션', '따옴표 비디오' 등 영상을 제작하는 업체라는 걸 드러내야 했다. 그전부터 나와 함께 일하고 있었던 남편과 논의 끝에, 우리는 영화 공부에서부터 영상을 시작하게 되었고 먼 훗날 언젠가 다시 영화와 관련된 작업을 해보자는 목표를 두며 '따옴표 필름'으로 지었다.


  만들고 나서 뒤늦게 의미부여를 해보긴 했다. 글에서 중요한 포인트나 인용 문구에 "따옴표"를 써서 강조하니까, 우리는 촬영한 영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하이라이트 부분만 골라서 편집때 쓴다. 그렇게 잘 편집된 재미있는 영상 콘텐츠는 따옴표 안에 모인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의미부여를 마음 속으로 해보았다. 그리고 여기서 또 깨닫게 된다. 카피라이팅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걸 말이다.


  아무튼 이게 좋은 네이밍인지 아닌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회사 이름이 생겼으니, 그에 걸맞게 로고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와 남편 둘 다 영상만 할 줄 알지, 디자인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름 유니크하고 귀여운 느낌이 드는 이름이니까 신선하고 통통 튀는 느낌의 로고를 만들고 싶었는데, 직접 만들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당시에 망고보드나 미리캔버스 같은 저작권 프리 디자인툴의 존재도 몰랐고 사실 영상 프로덕션인데 영상 일을 잘 하는 게 중요하지 로고가 뭐 그리 대수냐,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로고 정도는 스스로 디자인할 능력이 안 된다면, 아무래도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아무리 작고 귀여운 규모의 회사여도 어엿한 사업체인데, 신경써서 잘 만든 로고가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좀 더 직관적으로 빠르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어쩌다 보니 혼자서 로고를 만들었었다. 그나마 다룰 줄 아는 유일한 디자인툴인 포토샵을 켜고 적절한 폰트를 찾아 "(따옴표)를 입력해보았다. 여러 폰트 중에서 제법 귀여워보이고 무난한 폰트로 고른 뒤, 글자색을 바꾸고 키컬러로 쓸 배경색을 골랐다. 크리에이티브한 느낌이 드는 파랑, 노랑, 빨강 같은 톡톡 튀고 강렬한 컬러로 할까 싶었지만 왠지 조금 더 유니크한 컬러를 고르고 싶었다. 파랑은 우연히도 내가 여태 다닌 모든 회사들의 키컬러여서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고, 노랑은 왠지 카카오가 떠올랐다. 색채 감각도 없는 디자인알못이 연두, 보라, 블랙 등 다양한 컬러들을 골라서 페인트 툴로 부어 보고 실행취소하고 반복했다. 그러다 의외의 컬러로 결정했는데 다름 아닌 브라운이었다.

  

디자인 전문가가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나름 귀여워 보여서 쭉 쓰고 있다.


  일단 네이버와 인스타 검색을 통해 여기저기 둘러본 결과, 비슷한 컬러를 키컬러로 쓰는 영상 프로덕션은 안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브라운 컬러가 통통 튀는 컬러는 아니지만, 차분하면서 심플한 인상을 줬다. 마치 내 성격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많이 공들이지 않고 쉽다면 쉽게 제작된 로고인데, 한번 만들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 활용도가 높았다. 메일 서명은 물론이고 인스타 프로필 사진, 홈페이지 로고, 명함, 유튜브 채널아트, 기획안에 삽입하는 워터마크,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 프사까지. 언젠가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리뉴얼을 하고 싶지만 우선 당분간은 이 로고를 계속 쓰지 않을까 싶다.


메일 서명과 실물 명함 2023 ver.


  이렇게 업무에 필요한 작은 요소들을 내 손으로 하나씩 만들어가는 게 꽤나 재미있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스스로 나 자신과 내 회사를 알리기 위해 만드는 거라서, 결과물의 퀄리티와 상관 없이 뿌듯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정말 기깔난 디자인과 아이디어로 브랜딩을 잘 한 곳들이 많다. 훌륭한 레퍼런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덕에 나처럼 브랜딩이나 디자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배울 곳이 널리고 널렸다. 계속해서 이런 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면서, 여기서 어떻게 더 디벨롭할지 생각해볼 예정이다. 그리고 이렇게 내 브랜드를 만들어서 가꿔 나가는 과정이 이후에 또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도전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진 않았지만 영상과 상관 없는 다른 일을 벌이는 중인데(!), 그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도 추후에 자세히 풀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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