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으로 페미니즘 논쟁을 일으켰던 조남주 작가의 최신작. 아예 '뜨거운 감자' 전문 작가가 되기로 작심이나 한 듯이 부동산 문제를 다룸으로써 또 한 번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서영동 이야기>는 2020년에 출간된 테마소설집 <시티 픽션>의 수록작 '봄날 아빠를 아세요?'에서 시작된 연작소설로 가상의 지역인 서영동을 중심으로 한 단편소설 일곱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내내 무척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나도 그렇더라. 그런 감정이 한번도 들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십중팔구는 철면피라 본다.
등장인물이 많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서영동 집값이 올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가의 매매 노리고 대치동 부동산을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 봄날아빠, 학원장이자 학부모이면서 자신의 학원 옆 노인복지시설 건설을 반대하는 가운데 치매 환자인 어머니를 요양하게 된 경화, 고생 끝에 마련한 아파트값이 연일 고공행진이었음에도 이웃 때문에 불행해져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희진 등... 가진 게 많으나 적으나 이기적인 건 매한가지인데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이기에 괴롭고 부끄러웠다.
딱 한사람... 아버지 안승복 덕분에 '아파트는 그저 집일 뿐. 고향이고 추억이고 지금 사는 곳일 뿐. 다른 어떤 의미도 가치도 없다'라고 생각해도 하등 문제없는 삶을 사는 딸 보미에겐 공감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분노했다.성실하고 검소했으며 부동산 투자에 밝았던 안승복은 본인이 일군 것을 지키기 위해 1인 시위, 몸싸움도 불사한다. 그가 남들 눈에는 투기꾼일 수도 있고, 무례한 사람일 수도 있고, 속물일 수도 있지만 딸 보미는 제 아버지를 감히 속물 취급해선 안 됐기에분노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살면서 안정적인 직장도, 고정수입도 뚜렷하지 않은 보미가 경제적 문제가 없고, 아파트를 재테크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돈돈거리는 속물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가난만큼은 물려주지 않으려 발버둥친 아버지...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일찍이 눈을 떴던 아버지 덕분이니까.
게다가 아버지가 재산권 수호란 명분으로 1인시위하는 모습 등을 다큐멘터리에 담아 (한 마디로 아버지를 이용해) 공중파 pd가 되려 한딸이... 자신은 땅바닥에 뒹굴어도 딸은 챙기던 아버지에게 그러면 안 되지.아무리 소설이지만 보미가 어찌나 배은망덕하던지 안승복이 딸의 생각을 안다면, 자신의 육십평생을 부정당하는 느낌일 것 같아서 부들부들치를 떨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