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40억 명의 여성이 있다면 40억 개의 자기 문제가 있다. 그런데 누가 여성을 대표할 것인가? 대표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이 책을 흑인 여성의 시각에서 본 미국사라고 요약하기 조심스러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평생을 다양한 정체성과 젠더를 넘나들며 산 저자를 '흑인 여성'이란 단순한 범주에 가두기 어렵다.
여성이라는 개념은 매우 유동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복합적 젠더 (multiple gender)를 의미한다. 페미니즘이 다루는 젠더는 여성과 남성 간의 차이가 아니다.-p.15
우리나라는 성차별 문제가 젠더 갈등이 된 지 오래고, 존재하는 차별도 그게 차별임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유의미한 토론조차 불가능한 형국이다. 미국은 의식 있는 백인 중산층 여성들이 노예 역사를 인지하고 흑인 여성들과의 연대를 이끌어냈으나 한국은 규범화된 여성들(서울 수도권 2030, 중산층, 대졸, 이성애자, 비장애인 중 일부) 이 자기 목소리만 내는 실정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페미니즘을 논하는 게 쉽진 않다. 게다가 해제를 맡은 정희진 님에 따르면 남녀 전부가 만족할 수 있는 #모두를위한페미니즘 은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린 어떤 명분으로 페미니즘을 외쳐야 하는가.
저자의 메시지는 평등을 원한다면 그것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싸워야 한다'가 아니라 '평등을 위해 함께'라는 걸 인지해야 할 사람이 부지기수다. 적어도 본질은 파악하자. 모르겠으면 같이 공부하자.
유시민 작가님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변화 두 가지는 환경주의와 페미니즘일 거라며 두 가지 변화와 관련된 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응원하고 존경한단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환경문제엔 꽤나 관심을 기울이지만 페미니즘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피로감부터 느끼고, 아예 등을 돌리고 있던 난 좀 부끄러웠고 '진짜 페미니즘'을 알 필요를 느꼈다. 그때부터 꾸준히 관련 도서를 읽지만 여전히 어렵다. 남녀 모두 만족할 평등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외면해선 안 되니까... 난 오늘도 페미니즘을 직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