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의 신곡 "Easy On Me"와 여러 반응들
아델의 신곡 "Easy on Me"가 발표되었다. 11월 19일 발매 예정인 아델의 4집 정규 앨범 중 첫 번째 싱글이다. 새 앨범의 제목은 그가 앨범을 발표한 나이(19, 21, 25)를 따르는 규칙에 따라 <30>이 될 예정이다.
새 앨범을 만드는 동안 그는 이혼을 했고, 암으로 아버지를 잃었으며 자신이 거둔 거대한 성공을 새삼 실감했다. 그래서 최근 인스타그램 라이브 세션에서 이번 앨범의 주제를 묻는 팬들에게 '이별과 이혼'이라고 답했다. 이 앨범을 만드는 동안 코러스를 맡을 가까운 친구들을 섭외했고 사운드클라우드 같은 곳에서 신인 아티스트를 발굴하기 위해 낯선 음악을 들었다.
새 싱글 "Easy On Me"는 공개 하루 만에 BTS가 세운 스포티파이 기록을 깼고, 유튜브 조회수 5700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 보그의 커버를 동시에 장식했다.
아델의 복귀에 대해 팬들과 매체는 음악 뿐 아니라 그가 살을 뺐다는 사실로도 논쟁적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살을 뺐다"고 말했지만 굳이 이런 얘기까지 해야하냐는 반응도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그의 개인적인 목적과 달리 그가 만드는 사회적 효과가 상상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다. 이전 앨범인 <25>는 발매 첫 날에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이번 앨범도 그 정도의 기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메시지이자 문화적 사건이고, 또한 산업의 큰 부분이다.
아델은 특이한 경력을 가졌다. 가장 주목할 점은 아델이 자신의 페이스에 따라 움직이는 아티스트라는 사실이다. 지난 14년 동안 단지 3장의 앨범을 냈을 뿐이지만 지난 10년 중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앨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음악 산업은 2015년 이후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지난 앨범 이후 음악 산업이 달라진 5개의 변화들을 살펴본다.
1) 스트리밍으로 산업 구조가 전환되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스포티파이나 애플 뮤직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소비를 재편했지만 아델이나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A급 아티스트들은 CD나 바이닐, 디지털 다운로드 등 앨범을 파는 데 주력했다. 아델의 <25> 앨범은 발매 7개월이 지날 때까지 리딩 싱글 "Hello"를 제외하고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2014년부터 3년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아델이나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슈퍼스타들이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앨범의 '페이월' 정책을 고수한다면 너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할 수도 있다. 그나마 이런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델이지만, 그가 스트리밍의 큰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2) 슬로우 템포의 싱글은 라디오에서 더 어려워졌다: 80년대와 90년대의 핫 100을 지배한 것은 휘트니 휴스턴이나 보이즈 투 맨의 발라드였지만 밀레니얼 이후 발라드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델의 "Something Like You"(2011)는 레이디 가가, 케이티 페리의 댄스 플로어 히트곡만큼 크고 위엄 있는 피아노 발라드였다. 그 뒤로 브루노 마스의 "When I Was Your Man" 고티에의 "Somebody Though I Used Know" 같은 히트곡이 있었지만 팝 차트의 표준은 댄스 팝과 힙합이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Drivers License"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특히 라디오는 슬로우 템포의 부드러운 히트곡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스트리밍의 유통기한도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folklore>와 <evermore>는 스트리밍 상위권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고 팝 라디오 차트에서는 모두 17위가 최고점이었다. BTS의 6개의 핫 100 차트 기록 중 가장 느린 싱글은 "Life Goes On"이었다. 아델의 "Easy on Me"는 몇 달 동안 방송을 뒤덮을 것이지만, 라디오에서는 거의 인기를 얻지 못한 채 잠깐 동안 Hot 100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단 아델의 싱글 중 가장 느린 편인 "When We We Young"은 핫 100의 톱 10에 들지 못했다.
3) 발매 첫 주 100만 장 판매량은 거의 멸종위기종이다: 첫 주에 100만 장 앨범 판매는 스트리밍 시대 이전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최근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2017년 <Reputation>이 일주일 만에 플래티넘이 된 마지막 앨범이었다(첫 7일 동안 124만장의 앨범 판매량). 보통의 슈퍼스타 래퍼들은 스트리밍을 더 선호하고 때로는 물리적인 음반을 완전히 포기한다. 드레이크의 새 앨범은 애플과 스포티파이의 스트리밍 데뷔 기록을 완전히 갈아엎었지만 실제로 앨범 판매량은 2011년 데뷔 이래 최저치였다(첫 주 63만3000장 판매). 물론 아델의 <25>는 첫 주에 300만 장이 팔리고, 일주일에 두 번이나 100만 장 판매량을 넘긴 유일한 앨범이다. 하지만 현재 업계 추세로 보면 앨범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고서는 그 결과를 능가하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
4) 지금은 바이닐이 CD보다 많이 팔린다: 음악계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바이닐의 컴백이다. 2021년에는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CD보다 더 많이 팔렸다. 그런데 아델의 경우 CD 판매량이 일관적으로 더 높다. <21>과 <25>는 CD 판매량이 전체의 약 51%를 차지하지만 바이닐은 단지 약 1.5%를 차지할 뿐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evermore> 바이닐은 일주일 만에 102,000장이 팔리며 1991년 이후 가장 높은 바이닐 판매 기록을 세웠다. 아델은 여전히 가장 많은 CD를 팔 것이다. 하지만 바이닐의 제작 수량을 늘릴 필요도 있다.
5) 앨범 캠페인이 짧아졌다: 최근 몇 년 간 앨범의 프리 캠페인 기간은 줄었다. 지금은 문화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속도가 빨라진 시대다. 빅 스타들도 자신의 앨범을 (두아 리파, 위켄드처럼) 리믹스나 디럭스 에디션 같은 새로운 콘텐츠 없이 노출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게다가 틱톡도 있다. 틱톡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방법으로 일부 앨범의 수명을 연장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아델처럼 앨범을 만드는 속도가 느린 아티스트가 몇 주 뒤에 디럭스 에디션에 신곡 몇 곡을 추가하는 게 가능할까? 아델의 홍보 활동은 뮤직비디오, TV 공연, 투어, 그리고 노래에 대한 진정한 팬의 열정과 같은 전통적인 방법에 기댈 가능성이 높다. 아델의 <30>은 5주 뒤인 11월 19일로 발매일이 예정되었다.
아델은 현대 음악 산업에서 특이한 존재로, 과거를 상기시킨다. 메이저 아티스트들조차 주류의 관심을 받기 위해 '항상 접속된 상태'를 유지하며 고군분투하는 시대에 아델은 '반년 주기의 랜드마크 출시'라는 오래된 모델을 따르며 성공했다. 물론 2015년 이후 세상은 많이 변했다.
아델의 데뷔 앨범 <19>가 발표된 2008년에는 글로벌 수익의 90%가 음반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25>가 발매된 2015년에는 음반 판매량은 55%가 줄었고, 스트리밍이 매출의 1/5을 넘겼던 때다. 하지만 <25>는 2,200만장의 판매를 기록하며 2000년 이후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가 되었다. 아델은 오히려 메인스트림에 저항하는 아티스트였다.
2021년, 음악 매출의 65%가 스트리밍에서 발생한다. 2015년에 비해 극단적으로 달라졌다. 스트리밍은 성공을 가늠하는 주요한 방법이지만, 단지 15%의 사람들만이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전체 앨범을 듣는다. 이제 아델은 스트리밍 시대의 예술가처럼 활동해야 한다.
스포티파이 10억 스트림을 기준으로 보면, 아델은 두 개의 싱글이고 트래비스 스캇은 3곡, 에드 시런은 5곡이다. 그 중 트래비스 스캇은 15억 스트림이 넘는 곡이 2곡이 있고, 에드 시런은 "Shape of You" 한 곡으로만 30억 스트림을 기록한다. 아델의 신곡은 어떨까?
아델이 스트리밍 수치를 따라잡는다 해도, 아델의 성공을 측정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팬덤은 문화적 순간보다는 문화적 움직임으로 정의된다. 더 넓은 범위의 플랫폼, 쇼, 앱에 매우 얇게 퍼져있는 팬과 소비자를 대상으로 문화적 순간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아델의 팀이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아델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대중들의 의식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고, 심지어 밈문화에 뛰어들었다. <21>과 <25>는 음악 자체를 넘어 일종의 문화현상이 되었다. <30>이 그렇게 될 수 있으려면 전통적인 미디어에 부응하는 것과 함께 소셜 미디어의 지속적인 이용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30>의 성공은 진정한 문화적 순간이 있는지에 따라 측정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아델의 음악과 팀은 얼마나 오랫동안 세계적인 관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스트리밍을 기록했는지보다 세상이 아델의 음악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 살펴야 한다. 판매 지표는 더 이상 아델의 성공을 가늠하는 방법은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번에는 현대적인 마케팅 카드(특히 틱톡)가 모두 사용될 것이다. 하지만 아델은 항상 변칙적인 존재로서 최신 마케팅 게임을 하는 것보다 음악의 힘을 통해 성공을 거뒀다. 우리는 그의 음악적 가치를 기록이 아닌 문화적 영향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보그의 인터뷰는 아델의 개인 체육관인 하트 앤 허슬에서 진행되었다. 이 길고 자세한 인터뷰는 아델의 이혼이나 아버지와의 관계, 팬데믹이 영향을 준 것들, 그리고 아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연인, 새 앨범의 의미, 과거 앨범의 의미와 체중 감량,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비욘세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가급적 전문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혹은 <보그 브리티시>의 인터뷰를 함께 읽어도 좋을 것이다. 내용은 비슷하지만 톤앤매너가 조금 다르다.
아델은 3년 동안 매일 엄격한 역도 훈련과 서킷 트레이닝(불안감이 높아지면 하루에 두 번)을 해왔다. 인터뷰는 바로 그 체육관에서 진행됐다. 만약, 전 세계가 당신의 심각한 체중 감량에 대해 높은 관심과 무식한 이론을 제시한다면, 그에 대응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당신의 체육관에 저널리스트를 초대해 그들을 절대적으로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체육관은 내 시간이었다. 운동할 때만 불안감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을 빼는 목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다. 내 몸을 육체적으로 강하게 만들 수 있고, 그것을 느끼고 볼 수 있다면 언젠가 내 감정과 마음도 강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시작은 허리와 복부 아래쪽에서부터, 왜냐면 허리가 안 좋아서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 아델
"나는 항상 <21>이 더 이상 내 소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 앨범은 너무나 깊이 가슴에 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0>은 내 앨범이다. 난 이걸 놓지 않을 거다. 모든 사람과 나 자신을 나누고 싶지만, 이번은 절대 그냥 놓아버리진 않을 것 같다." - 아델
아델은 아직 발표되지 않은 다른 노래들을 부엌에서 라이브로 연주했다. "다음 싱글은 안젤로가 널 볼 수 없다고 말한 다음 날 스튜디오에서 쓴 곡이에요. 마빈 게이의 "What's Going On"이 매우 큰 참고 자료였는데 70년대 그루브, 무거운 현, 무거운 가사와 같은 어떤 요소들의 조합이에요." - 아델
아델의 신곡 중에는 가스펠 같은 오르간이 흐르기도 한다. 이 곡의 마지막에는 가까운 친구들의 코러스가 울려 퍼지는데, "그냥 기다려, 그냥 기다려"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그 가사는 내 친구들이 늘 내게 해주던 말"이라고 아델은 설명한다. "그래서 실제 합창단을 섭외하기보다는 그들이 직접 부르기를 바랐어요."
앨범의 마지막 트랙은 스튜디오에 있는 TV로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음소거 상태로 재생하면서 쓴 곡이다. "우리는 어떻게 앨범을 끝낼지 고민하다가 마치 사운드 트랙을 쓰는 것처럼 쓰자,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곡처럼 말야, 라고 생각했다. 편곡은 변덕스럽고 복고풍으로 재현한 현악과 비브라토의 로맨스로 가득하지만 가사는 전복적이다. "내 사랑에 대한 너의 모든 기대는 불가능해."
"나는 에이미 와인하우스 덕분에 유명해졌어요. 그가 죽었을 때 정말 상처를 받았는데, 그의 첫 앨범을 듣고 기타를 집었기 때문이에요. 에이미는 모든 예술가 중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가 영국인이고 너무나 놀라운 아티스트였고, 오래 괴로워했기 때문이에요. 사실은 너무 재미있는 사람인데 모르는 사람들이 그의 유산, 그의 이야기를 빼앗아서 무엇을 남겨둘지를 결정했어요. 나는 내가 죽은 뒤에 남들이 내가 남겨둘 것, 혹은 가지고 갈 것을 결정하게 하지는 않을 거에요." - 아델
"나는 항상 술과 아주 가까웠고, 매우 매료되었어요. 그리고 그게 아빠를 떠나보낸 이유이기도 해요. 그래서 나는 항상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알고 싶었죠." - 아델
아델은 오랫동안 사라지기로 결심했다. "난 그냥 집에 틀어박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게 내가 한 일이에요. 성과가 있었던 것 같죠. 사람들은 나를 은둔자로 이해했으니까." 엄마가 되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가끔 안젤로를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에 겁이 나요."
체중 감량에 대한 소동이 보여주듯이, 아델이 하는 모든 일은 여전히 뉴스를 만든다. 그것에 대해: "내 몸은 내 경력에 전부 객관화되었어요. 지금만 그런 게 아니에요. 왜 충격인지, 특히 어떤 여성들이 왜 상처받았는지도 이해해요. 시각적으로 나는 많은 여성들을 대표했으니까요. 하지만 난 여전히 같은 사람이에요." 이 모든 것의 가장 나쁜 부분은: "가장 잔인한 대화는 다른 여자들이 내 몸에 대해 나누는 것이었어요. 난 그것 때문에 몹시 실망했고, 그 때문에 마음이 아팠어요."
그리고 아델은 여전히 그녀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 예를 들어 그는 "Hello"를 언급한다. "덕분에 유명해졌지만, 그런 노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그 노래는 내가 다시 일어나기 싫은 수준으로 명성을 떨치게 했어요. 어느날 새 앨범에 실리는 내 얘기를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2017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아델은 전부문을 휩쓸다시피했는데, 수상 소감에서 아델은 오히려 비욘세의 <Lemonade>를 언급하며 그 앨범이 얼마나 아름답고 기념비적인지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했다. 그에 대한 이야기.
"<레모네이드>는 나를 위해 쓰여진 게 아니지만, 나를 위한 앨범이었어요. 비욘세는 나를 포함한 여성들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알고 있고, 그래서 내게는 여전히 가장 큰 선물이에요."
그건 그렇고, 그녀는 그래미상을 무대에서 깨뜨릴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손을 비틀고 있는데 축음기 비트가 벗겨졌어요." 그런데 진짜 재미있는 일은 나중에 생겼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받는 상은 모조품이고 진짜는 나중에 우편으로 보내주는데, 진짜 트로피도 도착하자마자 깨져버린 것이다. 아델은 그것을 고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트로피를 선반에 올린 다음 부서진 부분에 레몬을 넣어 쐐기처럼 고정시켰다. "그래서 이 트로피에는 레몬이 있지요."
아델은 이번 컴백에서 영국 보그 11월호에 코르셋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 그리고 실제로 코르셋의 검색과 판매량이 급증했다.
커버가 공개된 지 7일 만에 패션 플랫폼 리스트(Lyst)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 코르셋을 찾는 검색량이 전주에 비해 73%나 증가했다. 아마존닷컴을 비롯한 대형 유통업체들도 이 분야에 대한 매출 증가를 확인했다.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브리저튼> 역시, 최근 시즌2의 일정이 공개되며 이런 경향에 기여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상징의 오래된 논쟁인 코르셋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리조, 빌리 아일리시, 벨라 하디드, 그리고 아델이다. 그들은 빈티지 웨스트우드 코르셋을 돈이 있는 Z세대의 상징자본으로 만들었다.
수년 동안, 패션 역사가들은 코르셋을 가부장적 통제의 상징으로 생각하거나, 반란의 상징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실제로 자신의 몸을 통제하는 소유권의 상징으로 생각하면서 씨름해왔다.
지난 5월, 아델의 인스타그램에서 1,200만 명 이상이 그의 체중 감량에 좋아요를 눌렀고, 25만 명의 사용자가 댓글을 달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신체가 공론화 되어온 아델의 경우 후자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인터뷰에서 아델은 "내 몸이야"라고 말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은 상관없어."
1) 데뷔 싱글 "Hometown Glory"는 단 10분 만에 쓴 곡이다. 이 노래는 아델이 어머니가 자신에게 이 마을을 떠나 대학에 진학하라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2) 아델의 팬은 영국 정부를 포함한 고위층이 많다. 2009년, 당시 고든 브라운 총리는 아델에게 '국가의 사기를 북돋아 준 것에 대한' 감사장을 보냈다. '국가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당신은 터널 끝에 있는 빛입니다'.
3) 아델은 공개적으로 레드카펫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신경증이라기보다는, 그냥, 아, 이러고 싶지 않아, 라는 생각과 함께 말 그대로 위경련이 온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불안은 무대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2015년 NPR에 "사실 무대 공포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지금쯤 좋아졌어야 했는데, 더 나빠진 것 같다."고 밝혔다. "무대에서는 너무 긴장해서 즉흥연주나 그런 걸 할 만큼의 배짱이 없다."
4) 아델의 손에는 문신이 있는데, 한 손에는 "파라다이스", 다른 한 손에는 "안젤로"라고 쓰여 있다. 안젤로는 아델의 아들 이름이다. "안젤로는 나의 천국이다. 그는 나를 완전히 지배한다. 내 사회 생활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내 상사이기도 하고."
5) 아델은 제임스 코든에게 자신이 스파이스 걸스의 엄청난 팬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그것은, 그들이 데뷔한 순간은 내 인생의 엄청난 순간이었다. 그건 여자들의 힘이었고 이 다섯 명의 평범한 소녀들이 그렇게 잘 해낸 것을 봤으니까. 나는 항상 제리 할리웰의 팬이었다. 그가 갑자기 스파이스 걸스를 떠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진정한 상실감을 겪었다."
오늘은 새터데이 대신 선데이 애프터눈에 보냅니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하루 늦었네요... 다만 아델의 음악으로 주말을 보냅시다. 전작 혹은 기대에 비해 심심하다는 평도 있는데, 저는 좋았어요. 특히 남편과 헤어지고, 아버지를 잃은 상황에서 나온 사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조금 다르게 들리는 것도 같고요.
아티스트는 어쩌다가 공적인 존재가 되었을 뿐, 우리와 마찬가지로 매우 개별적인 개인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고요. 물론 평가는 가능하고, 또 필요하기도 하지만요. 이런 점에 대한 000님의 생각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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