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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우진 Dec 26. 2021

성수동으로 이사하고 홈오피스와 라운지가 생겼다

오피스? 라운지? 응접실? 뭐든 간에

1. 이사를 했다. 서울에서 이사 다니는 게 남다른 일도 아닌, 심지어 당연한 일 같지만 아무튼 이사를 했다. 집만 바꾼 게 아니라 동네도 바꿨다. 상수동에서 성수동으로. 한 글자 차이지만 느낌은 매우 다르다. 나는 매일 이 동네와 인사하며 친해지는 중이다.


2. 이제까지 지낸 집 중에서 가장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특히 거실이 매우 넓다. 이사하기 전부터 홈오피스를 구상했는데, 거실을 보자마자 미팅룸이나 라운지를 떠올렸다. 맞다, 덕분에 머릿속에서 소파를 지워버릴 수 있었다.


3. 집에서 가장 큰 방을 오피스로 쓰기로 했다. 화장실이 딸린 방이다. 손님들이 오면 이쪽 화장실로 안내한다. 안드로이드 TV도 여기에 있다. 일과 TV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지만 사실 그것도 내가 하는 일의 한 부분이므로 자연스럽다. 여기에서 읽고, 보고, 쓴다. 

4. 거실은 처음부터 미팅을 염두에 두고 구성했다. 3~4인용의 소파는 가족을 위한 것이다. 미팅은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이다. 적당한 거리감과 동시에 집과 같은 편안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재미가 있어야 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뭐하시는 분이세요?"라고 묻는 것보다 "뭐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쪽이 낫다. 그런 대화의 주제로서 공간이 기능하길 바랐다. 


5. 큰 주제는 내 머릿속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설명하는 것,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작업실 밖으로 나왔다. 음반, 전축, 책, 소품 등등이 모두 그런 이유로 선택되었다. 

6. LP장은 마켓비의 필몬 수납장 8문. 직접 조립하는 제품이지만 후기가 정말 ㅎㄷㄷ해서 조립비용을 추가했다. 기사님이 오셔서 직접 조립해주심. 혼자 했으면 거의 종일 걸렸을 거다. 하단에는 사진책을, 상단에는 바이닐을 넣어뒀다. 갈수록 음반 욕심이 줄어들어서 바이닐도 정말 적고, 앞으로도 굳이 대량으로 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기준은, 오래된 앨범. 희귀본에도 별 관심이 없으므로 실제로 자주 듣는 용도. 리이슈에도 관심이 있지만 엄청 디깅하는 것도 아니라서 라이트 인 더 애틱에서 보내주는 뉴스레터 정도만 체크하는 수준이다. 한 칸에 50장 정도 들어가는 듯. 그리고 하단에는 사진책을 수납한 덕분에 작업실 책장에도 여유가 생겼다. 사진책은 아마도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한데(사고 싶은 책이 정말 많다) 이쪽은 이쪽대로, 나중에 생각해야지 별 수 없음.

7. 조명과 의자는 좀 재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위트랄까, 디자인적으로든 맥락적으로든 아무튼 '이게 왜 여기에 있지?'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거실 면적과 예산에 따라 타협할 수밖에 없었음. 하지만 언젠가 꼭 그렇게 만들고 싶다. 조명은 아르떼미떼, 전체적으로 나무나무한 느낌 속에 쨍한 스테인리스를 두고 싶었는데 마침 당근에 딱 올라와서 당일에 바로 구매. 양재동까지 다녀왔다. 그외 카레클린트st의 원목의자와 테이블도 당근. 이쪽은 정말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샀다. 이케아의 흔들의자와 테이블도 당근인데, 이 물건은 렌탈 스튜디오의 오브제로 두던 거라서 사실상 새것. 스툴은 가리모쿠. 이것도 너무 저렴하게 당근(티도 나지 않는 흠집 때문). 언젠가 가리모쿠의 다이닝 세트를 맞추고 싶기도 하고. 그외 2인용 소파는 m.a.d. 제품이고 1인용은 프렘 가구. 가리모쿠의 K-체어와 닮았지만 국내 제품이고, 카피는 아니다. 식탁 의자도 추가해서 갑자기 집에 의자가 많아짐. (좋아) 신제품은 모두 르위켄에서 구매했는데, 콜렉션비와 함께 좋아하게 되었다. 편집샵답게 여기서 픽한 '셀렉티드 브랜드'도 매우 합리적인 가격이다. 재수형이 알려줬다. 


8. 새삼 당근 예찬론자가 되고 있음. 물론 현금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불리한 점도 있지만, 예산만 맞으면 사실 이쪽이 더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아르떼미떼 조명도, 다른 제품들도 마찬가지. USM이 유행시킨(?) 미드센츄리 스타일의 모듈 가구도 당근당근. 발뮤다 토스터도 당근당근... 이쪽은 아예 새 제품+옵션까지 했는데도 너무 저렴스... 특히 나는 중고품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서(때로는 더 선호하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당근에 당근당근.... (당근 멈춰!) 


9. 테이블 조명은 일광전구의 스노우맨. 청이가 생일 선물로 사줬다. 매우 잘 어울림. 그림은 핀즐, 아니면 청이의 것, 아니면 따로 구입한 포스터들. 액자를 몇 개 사서 이방 저방 벽에 걸었다.

10. 소니 전축은, 사실 갖고 싶은 오디오가 따로 있었으나 우연히 중고나라에 올라온 매물을 보고 당일에 바로 거래했다. 옥수동에 있는, 그야말로 오래된 오디오샵이었는데 창고 같은 사무실에 디터람스니 뱅앤올룹슨이니 하는 기기들이 쌓여있었다.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조금 친해짐. 


11. 소니 MJ-100K 모델. 찾아보니 쇼와48년, 그러니까 1973년 5월에 출시된 모델이다. 나보다 형... 인기 있는 모델은 아니라서(=검색에 잘 걸리지 않는 모델이라서) 2년 동안이나 팔리지 않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중고나라라서 또한 눈에 띄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인스타그램이었으면 바로 팔렸을텐데. 나로서는 매우 다행. 그야말로 전축이다. 오래된 소리가 난다. 사장님이 부품까지 싹 바꿔서 상태가 정말 최상급인데도 매우 저렴하게 구입했다. 


12. 여기에 테크닉스 Technics SL-XP5 CDP를 물렸다. 1986년에 나온 물건이다. 포터블이지만 사실상 데스크 CDP로 봐도 될 만큼 출력이 높고 안정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저 오래된 전축과 매우 잘 어울린다. 가격은 심지어 이쪽이 더 높다...

13. 그새 여기서 두 번이나 인터뷰를 했다. 미팅도 일주일에 한 번은 진행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몇몇의 사람들과 어떤 주제로 대화하는 상상을 했다. 그게 뭐든, 꽤 괜찮을 것 같았다. 코로나여서 2~3명 이상은 못 모이겠지만 오히려 그것도 좋겠다 싶었다.  


14. 물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나는 하던 일을 하는 것 뿐이니까. 


15. 오케이, 이제 뭐가 어떻게 되나 한 번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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