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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19. 2021

드라마:고쿠센(조폭 선생님)

폭력은 안된다고 가르치면서 모든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는 열혈 여선생

우리나라에서는 조폭(組暴)의 세계를 무엇이라 하나? 뒷골목 세계? 암흑계(暗黑界)? 깡패 세계?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가리키는 특별한 말이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조직폭력이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였다. 물론 조폭은 과거에도 있어왔고, 지금도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들이 공공의 전면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본의 폭력조직의 세계, 즉 야쿠자의 세계를 일컬어 극도(極道, 고쿠도)라고 한다. 일본 드라마 <고쿠센>은 한자로 쓴다면 “極先”, 즉 극도(極道)의 선생(先生)이란 뜻이며, 우리말로 하자면 “조폭 선생님”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로 <조폭 마누라>가 큰 인기를 끌었는 바 있는데, 이것을 굳이 일본말로 번역한다면 <고쿠즈마>(極妻), 혹은 <고쿠와>(조폭 와이프)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극도(極道)란 말은 “도를 통한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덕이 높은 고승(高僧)을 극도자(極道者)라 부른 데서 나왔다. 그래서 원래 극도라는 말은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전부터 약한 사람을 도우고 강한 사람을 응징하는 사람을 협객(俠客)이라고도 하고, 이를 더욱 존경하는 말로서 극도자(極道者)라 불러왔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자기 명분은 있는 법이다.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도 자기는 좋은 일을 위하여 주먹을 쓴다고 억지 주장을 하며, 스스로 협객이라 칭하고, 좀 더 나아가서는 “극도자”라고도 주장하게 되었다. 이런 경위로 극도(極道)라는 말이 본래의 뜻에서 벗어나 폭력배를 의미하는 말이 되어버린 것이다. 

야쿠자 세계(극도)를 소재로 한 영화들

<고쿠센>은 퇴락한 야쿠자 조직 두목의 외손녀로서 고교 교사가 된 열혈 여선생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이다. 드라마 <고쿠센>은 만화를 드라마화한 것으로서 나카마 유키에(仲間由紀恵)가 주인공인 야마구치 구미코(山口久美子) 역을 맡고 있다. 이 드라마는 3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3개 시리즈 모두 대히트를 쳤다. 시즌1은 2002년, 시즌2는 2005년, 시즌3은 2008년에 방영되었다. 쇠락한 야쿠자 조직인 오에도(大江戸) 일가에서 조장(組長, 야쿠자 단체의 두목)인 외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란 열혈 고교 교사 야마 구치 구미코(별명 양구미)가 말썽꾸러기 불량소년들로 구성된 학급을 이끌어 가면서 학생들을 좋은 길로 이끌어가는 내용이다. 


시즌1은 백금학원고교(白金学院高校) 3학년 D반, 시즌2는 흑은학원고교(黒銀学院高校) 3학년 D반, 시즌3은 적동학원고교(赤銅学院高校) 3학년 D반의 담임을 맡고 있다. 스토리는 대체로 유사하여 양구미가 담임하는 학급은 말썽꾸러기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드라마 초기에는 학생들이 여러 말썽을 일으킨다. 양구미는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아이들의 말썽을 하나하나 해결해준다. 스토리가 중간 쯤되면 학생들도 양구미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착한 길로 들어서려 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일이 꼬이거나, 오해를 받아 학생들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양구미가 등장하여 아이들이 받은 오해를 풀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응징하여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낸다. 

양구미는 아이들에게 항상 폭력은 비겁한 짓으로,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항상 드라마의 매 편 마다 결말에서는 학생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양구미 스스로가 폭력으로 응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폭력은 안 된다는 것을 드라마 내내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결국 모든 문제를 폭력을 통해 해결한다는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인 드라마 전개이다. 


그렇지만 어차피 재미로 보는 오락 드라마인데 그런 것까지 너무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드라마 고쿠센은 나카마 유키에가 톱 배우로서 등장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드라마를 통해 큰 인기를 얻은 나카마 유키에는 이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톱스타로서 활약하게 된다. 털털한 이미지의 나카마 유키에의 매력이 유감없이 드러난 드라마이다.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조직폭력이 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있었다. 이들 폭력조직의 이름은 일반 사회에도 공공연히 알려져 있으며, 폭력조직의 간부들 신상에 일이 있으면 이것이 매스컴을 타고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강력한 조폭 단속 정책에 의해 지금은 상당히 그 폐해가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일본 사회 곳곳에 침투해있다. 일본 최대의 조폭 조직인 야구구치 구미(山口組)의 경우 한 때는 그 조직원이 2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일본 야쿠자들

이왕 야쿠자나 극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들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일본 조폭들은 노령화되었고, 이들은 심각한 생계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조직폭력이 빌붙을 여지가 크게 줄어들어 조직폭력이라는 것이 옛날 전부터 수지맞는 사업이 아니라서 젊은이들의 유입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치안당국의 강력한 단속으로 기존 조폭들이 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었다. 옛날처럼 폭력단이 마음대로 불법사업을 벌일 수도 없었고, 또 업소들로부터 삥을 뜯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들이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해도 원래부터 일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간들이라 그것도 어렵고, 설사 일을 할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폭력단이라는 딱지가 붙어 고용하려는 사람도 꺼린다고 한다. 거기다가 국민연금 등 정부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들도 거의 없어, 그들의 생활고는 심각한 상태라 한다.    


일본의 조직폭력배를 잘 아시다시피 “야쿠자”라 한다. “야쿠자”란 조직폭력배란 말 외에도 “너절한”이라는 뜻도 있다. 옛 인기 가수인 이시하라 유지로(石原祐次郎)의 <우리들은 드러머(drummer)>라는 노래에 “오이라와 드러머 야쿠자나 드러머”(우리들은 드러머, 너절한 드러머)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면 ”야쿠자“한 말은 어디서 온 말일까?


화투 도박에서 3장으로 끗발을 겨누는 게임이 있다. 일본에서는 <오이쵸카부>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가보 치기>라 하는데, 이 게임은 3장의 화투패를 받아 한 자리 숫자로 끗발을 비교하는 도박이다. 예를 들면 2, 3, 4라면 아홉 끗 즉 가보가 되며, 3, 7, 8이 들어오면 18에서 10을 뺀 8끗으로 계산하는 게임이다. 여기서 야쿠자란 8, 9, 3(八九三)을 말한다. 먼저 받은 두 패가 8. 9이면 17 즉 일곱 끗으로 상당히 좋은 패를 기대할 수 있는데, 마지막 글자가 3이 들어와 8+9+3=20, 즉 망통이라는 최악의 끗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야쿠자(8,9,3)란 도박에서 최악의 숫자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야구자=나쁜 것, 최악의 인간)이라는 뜻이 되어 조직폭력배를 야쿠자라 하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오이쵸 가부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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