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부부의 비참한 최후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막을 내리고, 공산당이 장악한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소련)으로 재출발을 한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는 니콜라이이며 그의 황후는 독일 왕실 출신의 알렉산드라이다. 영화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Nicholas and Alexandra)는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와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의 반생을 그린 영화이다.
20세기 초에 들어 유럽의 거의 모든 왕국들은 입헌군주제로 넘어갔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따라 러시아도 입헌군주국으로 전환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국민들은 물론 정부 고위 관리들도 입헌군주국으로의 전환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 압도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이는 절대왕권제를 고집한다. 이러한 니콜라이 부부에게 라스푸틴이라는 괴승(怪僧)이 접근한다. 특히 황후 알렉산드라는 라스푸틴에게 완전히 의존한다.
니콜라이는 주위의 압력에 견디다 못해 결국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온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앞에는 암담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결국 황제 일가족은 모두 시베리아로 귀양을 갔다가 처형된다. 이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우리나라의 “고종과 민비”, 지금의 “윤석열과 김건희”가 겹쳐 보인다.
1904년 8월 러시아 제국의 짜르(황제)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내아이를 갖게 된다. 그때까지 황제 부부는 딸만 넷을 두었는데, 마침내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이 태어난 것이었다. 아이에게는 알렉세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곧 황태자가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알렉세이라는 “혈우병”이라는 선천적 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 혈우병이란 피가 응고하지 않는 병으로서, 조금의 상처만 생겨도 출혈을 막을 수 없어 과다 출혈로 죽게 된다. 그 시대 혈우병은 불치의 병이었다. 의사들은 알렉세이가 기껏해야 20살 정도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무렵 러시아는 일본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바로 러일전쟁이다. 전황은 러시아에 좋지 않은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전쟁을 위해 재정이 과다하게 투입되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조세를 강화하자 국민들의 불만은 높아져갔다.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있었다. 이 시기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모두 절대왕정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하였다. 황제의 사촌인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총리 세르게이 비테 백작마저 니콜라이에게 입헌군주제로 전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니콜라이는 자신의 권력을 아들 알렉세이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면서 이를 거부한다.
당시 러시아의 내부 사정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거기에다가 레닌, 스탈린, 트로즈키 등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노동자 봉기를 통해 혁명을 일으켜 짜르 정부를 전복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는 모후의 생일 축하장에서 수도사 그리고리 라스푸틴을 만난다. 그는 많은 백성들로부터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며 숭상받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는 소문이다. 니콜라이 부부, 특히 알렉산드라는 라스푸틴에게 아들의 혈우병을 고쳐달라고 부탁한다. 라스푸틴은 그 부탁을 받아들여 황실 주위를 서성인다. 라스푸틴에 대한 니콜라이 부부의 신임은 절대적이다.
1905년 1월, 러시아 정교회 사제인 게오르그 가폰 신부가 이끄는 노동자, 빈민 등 대중이 니콜라이 2세에게 청원하기 위하여 궁전을 향해 행진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를 막아선 경찰은 끝내 발포하여 수백 명의 시위대가 사망한다. 훗날 “피의 일요일”이라 불린 사건이었다. 짜르 니콜라이 2세는 과잉진압에 책임이 있는 비테 총리를 해임하고 표도르 스톨리핀을 그 후임으로 임명한다.
몇 년이 지났다. 스톨리핀 총리는 휴가 중인 니콜라이 2세를 찾아와 라스푸틴의 악행에 대해 보고한다. 라스푸틴은 황후의 신임을 뒷배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부정하게 재산을 축적하는 것은 물론, 여자들을 겁탈하고, 창녀들과 난잡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백성들 사이에 황후 알렉산드라가 라스푸틴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까지 보고한다.
니콜라이 2세는 이러한 보고를 듣고도 라스푸틴을 감싼다. 그렇지만 각료들뿐만 아니라 그가 믿고 있던 군마저 동요하기 시작하자 니콜라이 2세는 어쩔 수 없이 라스푸틴을 내보내기로 한다. 니콜라이 2세는 보고받은 내용과 자신의 뜻을 알렉산드라에게 말해주고 라스푸틴을 추방하여야 한다고 하지만, 알렉산드라는 끝까지 거부한다. 그렇지만 알렉세이 2세는 주위의 압력을 견딜 수 없어 결국 라스푸틴을 궁전에서 추방한다.
궁전에서는 로마노프 왕조 3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지만 국민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편 키예프에서 열린 축하 행사에서 스톨리핀 총리가 볼셰비키 청년에 의해 암살당했다. 니콜라이 2세는 암살자를 처형하고 주민들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한다.
알렉세이의 병세가 악화되자 알렉산드라는 시베리아에 있던 라스푸틴에게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라고 편지를 쓴다. 라스푸틴은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고, 그가 알렉세이를 돌보자 신기하게도 알렉세이의 병세가 호전되었다. 알렉산드라와 라스푸틴이 불륜의 관계에 있다는 소문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니콜라이 2세는 오스트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대를 동원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이번에는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쟁은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다. 니콜라이 2세는 총사령관인 볼셰비키 대공을 대신하여 스스로 최고 사령관이 되겠다고 하면서 전선으로 떠난다. 국정은 알렉산드라에게 맡겼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러시아는 더욱 심각한 빈곤과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정치경험이 없는 알렉산드라는 정치적으로도 점점 라스푸틴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이를 심각히 받아들인 마리아 태후는 니콜라이 2세에게 라스푸틴을 물리치라고 요구했고, 결국 라스푸틴은 니콜라이 2세의 사실상의 묵인 하에 파블로비치 대공에 의해 암살된다. 화가 치민 알렉산드라는 드미트리 대공을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그 말은 묵살된다.
1917년 도탄에 빠진 사람들의 드디어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바로 2월 혁명의 시작이었다. 1917년 3월, 제국의회는 니콜라이 2세에게 퇴위를 요구한다. 의회뿐만 아니라 각료 및 군부에서도 니콜라이 2세가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니콜라이 2세로서는 피의 내전을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물러날 것인가의 선택의 길에서 스스로 물러나기로 결정한다. 이로서 300년간 러시아를 통치하였던 로마노프 왕조 시대가 막을 내렸다. 니콜라이는 눈물을 흘리며 알렉산드라에게 사과한다.
레닌은 망명지 영국에서 러시아로 돌아와 인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궁전에 진입한 혁명군은 니콜라이 2세에게 궁전을 비우라고 통지한다. 니콜라이 2세의 가족은 온건파 혁명군 리더인 알렉산드로 케렌스키에 의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쫓겨나 시베리아로 유배길을 떠난다.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철도, 전화국, 은행 등을 차례로 장악하고 정부의 실질적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선언했다. 러시아는 볼셰비키의 적군(Bolshevik Red Army)과 반(反) 볼셰비키 백군의 두 세력으로 나뉘었다. 볼셰비키는 니콜라이 2세를 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하고 그의 가족들을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불러들인다. 니콜라이 2세 가족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호송되는 도중 일단의 군대의 습격을 받아 억류된다. 그리고 1918년 7월 17일 새벽,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그리고 네 딸과 아들 알렉세이는 한 자리에서 총살당한다.
많은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우리의 역사와 그리고 현실과 많이 겹쳐 보이는 영화였다. 황제 알렉세이 2세는 민주주의로 향하는 시대의 흐름에 거슬러 절대 왕권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정치와 민생이 파탄에 빠지는 와중에도 라스푸틴을 중용하는 등 혼란스러운 정치로 나라를 흔들리게 하였다. 이런 점에서는 결국 소련의 혁명은 니콜라이 2세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구한말과 흡사한 상황이다. 구한말 우리나라 정치와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그래도 어느 정도 깨어있던 젊은 관리들은 조선도 입헌군주제로 전환하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고종과 민비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놓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끝까지 자신들의 권력을 놓지 않으려다 결국 민비는 일본인들에 의해 살해되고, 고종은 러시아에 의존하기 위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였다. 이른바 “아관파천”이었다. 고종은 러시아의 공관으로 피신한 후 수많은 개혁적 인물들을 도륙하였다. 이 사건으로 조선의 인재는 씨가 말랐다.
어떤 분은 왜 “명성황후”라 하지 않고 “민비”라 부르느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나는 명성황후라 부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조선을 망치고 나라를 빼앗긴 첫 번째 국적이 고종이고 두 번째가 민비라 생각한다. 그들의 죄는 이완용 등 “을사오적”보다 더하다.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 영화를 보면 꼭 고종과 민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결국 주위의 간언에 따라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왔다는 점에서는 고종과 민비 부부와 비교한다면 그래도 낫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지금의 윤석열 김건희 부부도 연상된다. 그렇지만 황후 알렉산드라가 괴승 라스푸틴에 의지하여 국정을 혼란에 빠트리지만 김건희 정도는 아니다. 니콜라이 2세는 주위로부터 퇴위하라는 압력이 거세지자 결국 스스로의 의지로 왕관을 내려놓는다. 알렉산드라도 국정에 관여하지만, 그 역할은 제한되었다. 100년 전의 러시아 황실의 상황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투영된다.
나는 러시아 혁명에 대해 전체적인 개략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전개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러시아 혁명의 전개에 관한 내용이 많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중심인물은 황제인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아내인 알렉산드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혁명의 전개과정, 혁명 주도세력의 모습 등은 극히 단편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