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7) 칭다오에서 둔황까지- 중국 횡단여행 (33)
명사산/월아천은 일몰 풍경이 절경이라 한다. 그래서 대개의 관광안내서를 보면 오후 늦게 찾아가 일몰을 감상한 후 돌아오라고 한다. 그래서 어제 입장권 예약을 할 때도 오후 3시 시간대를 선택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시간대를 언제 선택하든 아무 관계없다. 예약한 날짜에 언제 가든 입장이 가능하다. 오후 2시 반경 호텔을 출발하였다. 택시를 타고 명사산/월아천(鳴沙山/月牙泉)을 향해가니, 저 멀리 거대한 중국 전통양식의 문이 보이고 그 너머로 거대한 모래산이 보인다.
택시를 내리니 잡상인들이 달려와 뭔가를 사라고 한다. 형광색의 덧신이다. 모래가 신발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고, 모래에 덜 미끄러지기 위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빨갛고 푸른 형광색의 덧신을 신고 있다. 살까 생각도 했으나 신발에 모래가 들어오면 털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들어갔다. 거대한 문이 보이고 옆에는 관리사무소 겸 매표소인 큰 건물이 보인다. 자동발권기에 여권을 넣고 입장권을 뽑아야 하는데, 중국어 안내판만 있어 약간 헤매었다. 큰 출입문을 통해 입장하니 몇 개의 부드러운 모습의 모래언덕이 굽이치고 그 뒤로 명사산이 우뚝 서있다.
명사산/월아천은 사막 관광 명소로서, 사막과 오아시스가 기적처럼 공존하는 실크로드의 상징적인 풍경으로 유명하다. 명사산(鳴沙山)은 명사산은 이름 그대로 '모래가 우는 산'이라는 뜻으로, 동서 약 40km, 남북 약 20km에 달하는 광대한 모래 언덕 지대이며, 모래와 암반이 퇴적되어 형성된 산이다. 명사산의 동쪽 끝 벼랑에 막고굴이 위치한다. 바람이 불거나 사람이 밟으면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명사산은 아주 가는 모래로 이루어져 있디. 그저께 다녀온 다른 지역의 거친 모래와는 다르다. 명사산의 해발고도는 1, 715미터이나, 이래로부터의 실제 높이는 200~300미터 정도라고 한다. 멀리서 보니 세 방향에서 사람들이 줄을 지어 명사산으로 올라간다. 상당히 가파른 모래산이다.
월아천(月牙泉)은 명사산 아래 거대한 모래 언덕 속에 자리 잡은 초승달 모양의 오아시스이다. 월아천의 물은 저 멀리 설산에서 눈 녹은 물이 지하로 흘러와 샘솟는다고 한다. 수천 년 동안 마르지 않고 명사산의 모래바람에 묻히지도 않아 지질학적 기적으로 불린다고 한다. 월아천 주변 지형으로 인해 바람이 불면 모래가 산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고 다시 산 위로 밀려 올라가는 현상 덕분에 그 형태가 유지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초승달(月牙) 모양을 하고 있다. 한나라 때부터 둔황 8경(敦煌八景) 중 하나로 꼽혔으며, 오랫동안 실크로드를 지나는 상인과 여행자들에게 생명수 역할을 했던 소중한 샘이다.
명사산과 월아천은 서로를 돌보는 관계이다. 거대한 모래언덕이 예쁜 호수를 품에 안은 모습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명사산/월아천은 중국의 “국가급 풍경구”로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명사산/월아천 경내에 들어가면 바로 사막이 시작된다. 이전에 밟았던 사막과 달리 모래가 아주 곱다. 몇 개의 모래언덕이 굽이치는 것을 보니 영화에서 본 아라비아의 사막과 비슷하게도 느껴진다. 낙타 행렬들이 줄을 지어 모래언덕을 올라가고 내려온다. 이곳의 명물인 “낙타 타기 체험”으로서 5~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일렬로 낙타를 타가 모래언덕을 돌아서 나온다. 경마잡이가 제일 앞장선 낙타의 고삐를 잡고 끌면 그 뒤로 5~10여 필의 관광객을 태운 낙타들이 줄을 지어 따라간다. 이 낙타 체험코스는 멍사산 기슭 모래언덕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약 1시간, 4킬로미터 정도의 프로그램이다.
집사람에게 낙타를 한번 타보자고 했다. 집사람은 처음에는 망설이는 것 같더니 많은 사람들이 낙타를 타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타겠다고 한다. 낙타체험 비용은 1인당 130위안으로서 자동매표기에서 티켓을 끊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의 안내판이 붙어 있지 않아서 이 사람 저 사람 물어본 끝에 겨우 표를 끊을 수 있었다. 낙타를 타려고 대기하고 있는데, 젊은 낙타꾼 녀석이 내게 다가외서는 자신을 따라오란다. 무슨 일인가 하고 따라갔더니 대기실 옆에 붙은 안내판을 가리킨다. 거기엔 중국어로 70세 이상은 낙타를 탈 수 없다고 적혀있다. 이때는 어떡해야 하나?
제일 좋은 방법은 모른 척하는 것이 최고다. 무조건 읽을 수 없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시를 했다. 그 녀석도 어쩔 수 없었는지 낙타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그곳엔 수백 마리의 낙타들이 모여 주저앉아 있었다. 참 순한 녀석들이다. 소보다 더 순한 것 같다. 바로 옆에 다가갔지만 위협감이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소도 바로 옆에 가면 혹시 뿔에 받힐까 겁이 난다. 그래서 근처가 가지 않는다. 낙타는 바로 옆에 갔지만 조금도 겁나지 않는다.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기까지 했다. 그래도 가만히 있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순한 동물인 것 같다.
우리 팀은 모두 5명이다. 내가 선두의 낙타를 탔다. 주저앉아 있던 낙타가 벌떡 일어날 때 좀 놀랐다. 이곳의 낙타는 모두 쌍봉낙타이다. 그래서 자리도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나무틀에다 붙은 안장에 올라앉게 된다. 안장이 자꾸 왼쪽으로 기울어진다. 사막의 언덕을 향해 출발한다. 기분이 최고다. 이리비아의 로렌스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실크로드를 지나는 상단의 대장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왜 상단의 일꾼이 아니고 대장이냐고? 상단에서는 대장이나 간부밖에 낙타를 타지 못한다. 낙타 한 마리에 실을 수 있는 상품의 가격이 얼마인데 일꾼들에게 낙타를 타도록 허용하겠는가? 짐꾼들은 모두 낙타를 끌고 간다.
낙타에 오르니 상당히 높다. 그리고 낙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많이 흔들린다. 이전에 몽골에서 말을 타본 적이 있는데, 그보다 훨씬 많이 흔들린다. 아마 다리가 길어 보폭이 커서 그런 모양이다. 옛날 사막을 오가는 상단에서 걷는 사람이야 물론 힘들었겠지만 낙타를 타고 가는 것도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낙타그룹은 모래 언덕으로 올라갔다. 모래 언덕 위를 좁은 길을 걸어가는데, 아래쪽으로 모래 비탈이 아주 급하다. 낙타가 비탈길 아래로 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다가, 그동안 얼마나 이 길을 많이 걸었는데 그런 실수를 할까 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 일행은 거의 한 시간에 걸쳐 모래 언덕 몇 개를 크게 한 바퀴 돈 후 귀환하였다. 끝난 후 낙타가 주저앉을 때는 더 놀랐다.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 정도면 130위안의 티켓값이 아깝지 않다.
중국 도시의 시내 도심에는 전통이 오랜 기차역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고속철도망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고속철 역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거의가 기존 역을 고속철 역사로 활용하였지만, 중국은 도시 외곽에 새로운 기차역을 건설한 것 같다. 고속철로 인해 폭증하는 승객을 기존 역사로는 감당이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번 여행에서 철도를 많이 이용하면서 우리나라와는 여러 면에서 차이를 발견하였다.
첫째, 고속철의 경우 역사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번 여행에서 이용한 역사 중 인구 20만의 둔황역이 서울역 정도의 규모였고, 나머지는 모두 서울역보다 몇 배는 컸다. 이 때문에 승객들이 편안하게 역사를 이용할 수 있었다.
둘째, 보안 검색이 엄격하고 기차를 타는 절차가 복잡하다. 먼저 역사에 들어가기 위해 신분증 검사와 짐 보안검사를 받아야 한다. 역사에 들어가서도 플랫폼에 자유로이 들어갈 수 없고 개찰시간을 기다려 들어가야 한다. 이때 신분증이 티켓을 대신한다. 개찰은 대개 열차 출발시간 10~15분 전에 시작한다. 촉박한 시간으로 인해 승객으로서는 아주 불편하다.
셋째, 기차 탑승구와 플랫폼 높이가 거의 같아 캐리어를 그대로 끌고 기차에 오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기차의 높이가 플랫폼보다 높아 차에 오를 때 캐리어를 들어야 한다. 이에 비해 중국은 그대로 끌고 기차를 탈 수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중국 승객들은 캐리어를 많이 들고 다녀 배려를 한 것 같다.
넷째, 우리나라는 역사 출입구가 함께 있는데, 중국 역사는 출구와 입구가 분리되어 있다. 이 때문에 출입 승객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게 동선이 효율화되어 있다.
다섯째, 버스, 지하철, 택시 등 연결 교통수단이 역사 지하를 통해 효과적으로 연결된다. 이 때문에 승객들이 일기에 관계없이 편리하게 연결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고속철 역사들이 모두 새로 지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여섯째, 도시 외곽의 고속철 역사 주위에는 대규모의 신도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층 비즈니스 빌딩,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수없이 들어서고 있다. 첨단적인 도로망과 주위의 풍부한 도시숲이 인상적이었다. 도시의 중심기능이 고속철 역사 주위로 이동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