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5a) 칭다오에서 둔황까지- 중국 횡단여행 (47)
다시 호수 옆 길을 따라 걸으니 무지무지하게 크고 웅장한 중국 전통건물이 나온다. 그 건물은 흰색 화강암으로 된 높은 계단 위에 우뚝 서 있기에 더욱 그 웅장함이 돋보있다. 건물 위에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위쪽에는 "자운루"(紫雲樓), 아래쪽에는 "대당부용원"이라고 쓰여있다. 건물의 이름의 자운루인 것 같다. 자운루 좌우 옆에는 역시 화강암으로 만든 각각 두 개씩의 정자가 서있다. 자운루나 부속 정자 모두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자운루는 대당부용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서 부용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당나라 황궁의 위엄과 당나라 시대의 번영을 상징하는 주전각(主殿閣)이라 한다. 부용원은 원래 당나라 시대 이곳 부용원에 실제로 존재했던 건물로, 황제가 연회를 베풀고 백성들과 즐기며 호수의 경치를 감상하던 누각이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당나라 건축 양식으로 재현한 것이라 한다.
자운루로 올라갔다. 상당한 높이가 되기 때문에 대당부용원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참 아름다운 테마공원이다. 그동안 중국에서 경험한 몇 개 테마공원은 좀 엉성하고 싸구려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대당부용원은 다르다. 앞으로 많은 세월이 지나면 이 대당부용원은 시안의 새로운 문화유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자운루 내부에는 거대한 공간이 있는 것 같다. 그 안에서 예술공연 연습을 하는지 중국 전통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완전히 밀폐되어 있다. 한 바퀴를 돌면서 열려있는 창이라도 없나 생각하고 찾아보았지만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쪽 문 근처에서 방금 연습을 하다 나온 듯 중국 전통복장을 한 젊은이 몇몇이 난간에 앉아 쉬고 있다.
자운루를 지나니 호수 옆으로 상가 건물들이 보인다. 이곳에는 상가 건물들도 호수의 경치와 어울리게 당나라 스타일의 건축되어 있다. 수양버들이 늘어선 사이로 들어선 몇 개의 상가 건물은 문화재의 일부인 듯 오히려 호수의 경치를 더해준다.
이곳을 지나니 제법 큰 바위 구조물이 보인다. 마치 미국의 러시모어 산의 큰 바위 대통령 조각을 축소해 놓은 듯한 인공 석상들인데, 새겨진 인물들은 모두 당 시대의 시인들이다. 이 테마 지역의 이름은 당시원(唐詩苑)으로서, 당시와 관련한 여러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우선 석상에 조각되어 있는 인물은 이백, 두보, 백거이, 왕유, 이상은 등이라 한다. 이백과 두보의 별명은 시선(詩仙)고 시성(詩聖)이란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백거이는 시마(詩魔)란 좀 무시무시한 별명이고, 융유는 시불(詩佛)이란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당시원 내에는 시비림(詩碑林)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엔 당나라 최고의 시인들의 유명한 시구가 새겨진 커다란 석비(石碑)들이 늘어서 있다. 시벽 근처에 시혼(詩魂)이란 비석과 함께 그 옆에는 술병을 든 시인의 청동 등신상이 서있는데, 아마 이백인 것 같다.
시혼을 지나니 길이 두 갈래로 나눠져 하나는 호수를 일주하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공원 뒤편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공원 뒤편 길을 선택했다. 뒤편길은 주로 수목으로 이루어졌으며 특별한 구조물이나 조형물은 설치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약간 따분하기도 한 길이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오른쪽 언덕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올라가니 바로 시혼과 연결되는 길이다.
좀 전에 앞에서 지났던 길은 시혼의 조각상을 중심으로 보는 곳이었고, 지금 이곳 뒤쪽에서 들어가는 길은 시벽(詩壁)이다. 두 곳은 서로 연결되어 시벽 지역을 통과하면 바로 석제 조각상 밑을 지나게 된다. 시벽은 석제를 이용하여 인공적으로 만든 계곡이다. 이곳의 석벽에는 수많은 당시들이 새겨져 있다. 시벽의 입구에는 먼저 "황악루"가 크게 새겨져 있다. 50년도 더 된 오래전 대학입시 준비를 하면서 많이 보았던 시이다.
시벽은 전체적으로 약간 굽은 부메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쪽 벽은 모두 바위이고 그 아래로는 작은 도랑물이 흐른다. 바위 벽면에는 수많은 당시들이 새겨져 있다. 일일이 세어본 것은 아니지만, 거의 수백 편은 될 것 같다. 물론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시이다.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돌 계곡이었지만 대당부용원의 최고 명승지라 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된다.
한편씩 읽어보지만 나의 한자 실력으로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래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략의 뜻은 통한다. 한편 한편 음미해보고 싶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없다. 조금 있으면 영락없이 집사람으로부터 빨리 오라는 전화가 올 것이다. 서둘러 당시원 지역을 다시 둘러보고 감상한다. 이백과 어깨동무를 하고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곳 당시원 구역을 보고 있노라면 대학동창 친구 하나가 떠오른다. 얼마 전부터 "이철성의 시공(時空) 여행"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술과 함께 떠나는 한시 여행"이라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여기서는 이백과 두보를 중심으로 당나라 시인들의 인생과 시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 지금은 이백과 두보를 마치고 소동파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독자수는 많지 않지만,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나도 새로운 콘텐츠가 올라올 때마다 감상하는데, 아주 괜찮은 내용이다. 자극적인 내용이 판을 치는 유튜브 세계에서 세상을 관조하며 표표히 살아온 옛 시인들의 시를 듣고, 인간으로서 그들의 겪은 영광과 고난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콘텐츠이다. 페친들께서도 아래의 링크를 통해 꼭 한번 들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잠시나마 삶을 관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그 친구에게 이곳을 한 번 보여주고 싶다.
https://youtu.be/1lWjuRHjQ6o?si=hCjJRzTEd-07E0Hn
(춤추는 분수)
자운루 앞으로 오니 분수가 부용호의 분수가 물을 뿜고 있다. 자운루 쪽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소리에 맞추어 분수가 춤을 춘다. 격렬한 멜로니가 흘러나오면 격렬하게 조용한 멜로니가 흘러나오면 은은하게, 그리고 부드러운 음악에는 분수가 너울너울 춤을 춘다. 노래하는 분수는 몇 번 본 적 있지만 춤추는 분수는 처음이다.
예상대로 집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제 어느덧 해도 지려 한다. 셀카로 이백과 함께 어깨동무를 한 사진을 찍고 입구 쪽으로 서둘렀다. 이곳 시혼 지구는 아주 이곳 부용원의 최고의 장소가 아닐까 생각한다.